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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연구통通] ‘안아키’, 단지 ‘반反지성주의’만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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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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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키’, 단지 ‘反지성주의’만 문제일까?

[서리풀 연구通] 기존 보건의료가 해결 못하는 필요에 주목해야

김새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원

 

 

요 며칠 인터넷 상에서는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안아키)’ 카페에 대한 비판이 뜨거웠다. 그 때문에 카페는 폐쇄되었지만, 이를 운영했던 한의사는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전국민이 수두파티를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로 다시금 논란에 불을 지폈다. 대한의사협회까지 나서 그가 주장하는 자연치유가 비과학적이며 건강과 안전을 위협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고(☞관련 기사 : 의사·한의사들 ‘안아키’ 비판에 “의료계도 반성해야”), 대한한의사협회 역시 그를 협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고 회원 자격을 정지하겠다고 했다(☞관련 기사 : 한의사협회, 안아키 김효진 한의사 회원자격 정지키로).
자연치유의 상징인 백신 거부는 한국만의 특이한 현상은 아니다. 2016년 67개국 조사에서 백신 안전성을 의심한다는 응답자가 가장 많았던 프랑스의 경우 그 비중이 41%에 달했다 (☞관련 연구 : The State of Vaccine Confidence 2016: Global Insights Through a 67-Country Survey). 그러다보니 필수예방접종 거부로 인한 감염병 유행위험은 전 세계적 공중보건 문제가 되다. 그에 따른 법률적 대응도 강화되고 있다. 디즈니랜드에 방문한 백신미접종 어린이들에게 발생했던 ‘2014년 디즈니랜드 홍역 사태’ 이후 캘리포니아 주는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백신접종 규제법을 도입했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도 아동의 필수예방접종을 의무화하거나, 비접종자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왜 사람들은 백신을 거부하고 의학적 개입의 부작용과 위험에 대해 불안해하며, 검증되지도 않은 번거롭고 어려워 보이는 치료법에 매달리는 걸까?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의 메건 모란 (Meghan Bridgid Moran) 교수팀은 근래 미국에서 예방접종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유발하는 주요 정보들이 인터넷을 통해 유통된다는 것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2016년 예방접종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홈페이지, 블로그, SNS 등에 게시된 자료들의 내용분석(content analysis) 결과를 국제학술지 <보건의료 커뮤니케이션 저널>에 발표했다. (☞관련 자료 : What makes anti-vaccine websites persuasive? A content analysis of techniques used by anti-vaccine websites to engender anti-vaccine sentiment)

 

연구진은 이러한 사이트들에 게시된 자료의 내용의 타당성뿐 아니라 이들이 구사하고 있는 설득력 있는 의사소통 전략에 주목했다. 백신반대 사이트들이 구사하는 전형적 의사소통 전략은 이러하다. 우선 자신의 아이가 예방접종 후 어떻게 아팠는지 ‘서사적 사례’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의사’나 ‘박사’ 같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소개하는데, 대개는 주류 학계에서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의견들이다. 또한 과학적 권위를 가진 논문이나 책을 인용하여 백신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데, 이들은 대개 부적절하거나 선택적으로 재구성된 것들이다. 백신 옹호자들의 신뢰도를 깎아내리는 주장들도 빈번했다. 의사, 제약회사, 정부, 혹은 서양의학 전반에 대한 불신을 자극하며, 이들이 순전히 돈벌이를 위해 백신을 옹호한다거나, 면역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는 논리이다. 그러면서 많은 경우 위험한 백신 대신 건강, 식생, 육아 방법의 개선을 대안으로 제시하는데, 대체의학적 치료, 유기농 식품 섭취, 모유수유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흔히 개인의 자유와 독립적/개인적 선택, 자연주의, 총체적이고 자연스러운 삶에 대한 강조 등을 중요한 가치로 제시했다.

연구진은 이러한 내용분석 결과를 토대로 어떤 의사소통을 통해 백신거부 운동에 대항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지 제안했다.

첫째, 백신을 반대하는 태도는 단편적 지식이나 판단이 아니라 소속된 집단의 사회적 규범, 건강 문화와 관련이 있다. 더 나아가 이런 태도는 삶의 가치나 이념과 결부되어 있기에 예방접종의 중요성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준거집단에 따라 메시지의 수용 범위를 고려하여 대화를 진행해야 한다.

둘째,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기 위해 백신을 거부하겠다는 이들에게는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는 건강’을 위해서 백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자유임을 설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허술한 백신 옹호 논리를 반박함으로써 백신 반대를 설득력 있게 주장하는 전략을 뒤집어, 백신 거부 논리의 부정확함을 일찌감치 전달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산전 진찰을 위해 방문한 임산부에게 “예방접종이 효과가 없다거나 위험하다는 주장들이 있는데 그것은 이러저러해서 옳지 않다”고 의료진이 미리 설명해 줌으로써 앞으로 접할 수 있는 백신거부 주장에 포섭되지 않도록 ‘예방’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아키의 경우는 어땠을까? 많은 이들이 ‘안아키 현상’의 원인으로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의료, 냉담하고 무성의한 의사에 대한 불신을 지적했다. 과학의 불확실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과학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반(反)지성주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처럼 미지의 유해물질에 노출되어도 그 피해를 온전히 개인이 예방하고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대한 불안, 아이 돌봄의 책임을 고스란히 엄마에게만 전가시키는 사회적 압박 또한 중요한 문제로 지적되었다 (☞관련 기사 : 자본주의 사회에서 건강한 육아를 위해 필요한 것).
우리는 안아키를 예외적 일탈로 보고 ‘안아키스트’나 ‘맘닥터’로 활동했던 이들을 ‘에코힙스터’라며 비난하는 것에 반대한다. 또한 이 모든 것을 누군가의 돈벌이에 속아 넘어간 ‘호갱질’로 설명하는 냉소에도 반대한다. 비록 이들이 가진 잘못된 지식과 믿음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들의 노력과 간절함, 진정성에 대해서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권위적 의학에 대한 ‘거부’로 나타나는 이들의 저항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의료화된 기술, 상업화된 의료에 온전히 순응하지 않고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더 건강한 삶을 살고, 아이를 키우겠다는 의지 자체는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안아키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왜 자연주의 육아가 부모들의 관심사가 되었는지, 현재의 보건의료체계와 사회가 충족시키지 못하는 필요(needs)는 과연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아야 한다.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위해 전문가에게 결정을 위탁하지 않고 스스로 답을 찾고자 하는 이들의 갈증을 풀어줄 주체는 ‘시장’이나 ‘과학 사기꾼’ 외에 없는 것일까?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서지정보
● Larson, H. J., de Figueiredo, A., Xiahong, Z., Schulz, W. S., Verger, P., Johnston, I. G., … & Jones, N. S. (2016). The state of vaccine confidence 2016: global insights through a 67-country survey. EBioMedicine, 12, 295-301.
● Moran, M. B., Lucas, M., Everhart, K., Morgan, A., & Prickett, E. (2016). What makes anti-vaccine websites persuasive? A content analysis of techniques used by anti-vaccine websites to engender anti-vaccine sentiment. Journal of Communication in Healthcare, 9(3), 151-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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