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런던 그렌펠타워 참사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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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일은 사건, 선거, 그도 아니면 한국 관련 뉴스만 단편적으로 다루는 한국 언론도 런던의 대형 화재에는 좀 더 관심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14일 런던에서 일어난 큰불은 피해 규모와 사고 원인, 정부의 대처가 모두 뉴스거리가 되었다. 아무래도 한국 상황이 겹쳐 보이는 것은 아닐까?

 

우선, 피해 규모가 크다. 6월 18일 현재 사망자가 최소 58명으로 추정되고,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런던에서 일어난 화재로는 최악이라고 한다. 막연히 ‘선진국’으로 알던 영국, 그것도 수도 한복판에서 이런 큰 사고가 난 것이 놀랍다.

 

사고에 대한 대처도 말이 많다. 영국 정부는 불나고 12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내각회의를 소집할 정도로 늑장을 부렸고, 총리는 사고가 난 지 33시간 만에 현장을 찾았다. 그나마 피해 주민은 얼굴도 보지 않은 채 떠났다고 한다.

 

총리가 현장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만, 총리의 행동은 영국(또는 잉글랜드)이라는 국가가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잘 보여준다. 앞으로 어떻게 피해를 수습하고 어떤 대책을 내는지 유심히 볼 일이다. 한국 사람들이 어떤 ‘기시감’을 느끼고 일부 한국 언론이 ‘세월호 참사’를 불러내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화재 원인에 이르면 더 익숙한 풍경을 만난다. 외국 언론들은 그렌펠타워 참사의 직접적 원인으로 엉터리 리모델링 공사를 지목했다. 불에 약한 싸구려 재료를 외장재로 써서 불을 걷잡을 수 없이 키웠다니, 한국인에게 이런 스토리는 너무 익숙하지 않은가?

 

 

그다음도 마찬가지, 리모델링에 모든 책임을 돌릴 수 없다, 뭐 한 가지라도 제대로 작동하면 사고가 나더라도 참사가 되는 일은 드문 법, 이 아파트는 모든 단계에서, 전체적으로 화재에 취약한 상태였다. 낡은 서민 아파트라 스프링클러와 화재경보 시스템, 비상 출입구 같은 기본 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참사를 부를 만한 맥락과 조건이 충분했던 셈이다.

 

이제는 ‘인재’가 등장할 차례. 화재 대비 태세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사실을 알면서도 관리자가 별 조치를 하지 않았다니, 사고와 위험의 권력 관계는 영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파트 소유주인 구청과 관리회사가 주민의 민원을 계속 무시했다니, 노골적으로 ‘한국형’이다.

 

더 심층 구조까지 가야 진짜 원인이 드러난다. 현지에서는 이미 보수당 정부의 위기로 비화하고, 한국에서도 한 신문의 기사가 이 문제를 짚었다. 한 마디로, 지금 영국의 사회경제체제, 그리고 이에 책임이 있는 정치가 참사의 근본 원인이라는 진단이다.

 

“그렌펠타워 같은 공공임대주택을 ‘사회주택’이라는 이름으로 과거 대규모로 공급했으나, 관리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상당 부분을 민간에 팔았다. 그렌펠타워처럼 관리기구를 만들어 넘긴 단지들도 있다. 민영화와 함께 집값은 치솟았고, 열악한 주거환경에 내몰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옛 사회주택들은 방치됐다….(중략)…2011년 소방관료협회 등의 조사에서 이미 공공주택 4채 중 3채가 화재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바로가기)

 

영국에서 주택은 전통적으로 국가가 공급하고 국가가 소유하는 사회적 재화였다. 1970년대 말에는 인구의 40%가 지방정부가 소유하고 관리하는 지자체 공공주택에 거주할 정도였으나, 이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확대에 발맞추어 주택은 극단적으로 상품화되었다(필립 로스코 지음. 홍기빈 옮김. <차가운 계산기>, 열린책들 펴냄).

 

결론적으로 이번 사태는 사고나 행정, 또는 주택 건설의 문제가 아니라 ‘엄청난 정치적 비극’이라 해야 정확하다(바로가기). <자코뱅> 잡지에 이 글을 쓴 포스터(Dawn Foster)가 주장한 이 참사의 교훈은 분명하다. “적절한 주거는 특권이 아니라 권리이며, 집은 우리 가족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 보호해야 한다.”

 

이제 우리에게 이 사건이 무엇인가를 물을 차례다. “1974년 신축돼 2015년 리모델링 된 24층 아파트”에만 초점을 맞추면 우리가 할 일은 기술과 행정에 그친다. 싸구려 재료를 쓰지 않고 화재 예방 시설을 다시 손보는 것. 그리고 (여기서도!) 매뉴얼을 만드는 것 등등. 안타깝게도, 한국 정부와 사회는 이 수준을 넘는 것 같지 않다.

 

“국민안전처가 영국 런던에서 발생한 고층 아파트 화재를 계기로 국내 30층 이상 고층건축물에 대한 긴급 안전점검에 나선다. 안전처는 전국 30층 이상 고층 건축물 3,226곳의 화재 예방을 위해 관계부처 합동 점검을 실시한다고 15일 밝혔다. 소방시설, 피난ㆍ방화설비, 건축외장재, 가스ㆍ전기설비 등이 법규에 맞게 갖춰지거나 운영되고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필 예정이다.” (기사 바로가기)

 

기술과 화재 대책은 이 정도로 잘 아는 것인 만큼, 그렌펠타워 참사가 정치경제 구조의 산물이라는 대목에서 더 큰 교훈을 얻어야 하지 않을까? 주거를 둘러싼 현상과 그 원인, 그리고 현상에 대한 대처까지, 그렌펠타워 참사는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사례다. 구체적 양상만 다를 뿐, 비슷한 구조와 힘이 작용하여 비슷한 결과를 빚어낼 수 있다.

 

우선 구조적 원인부터. 한국의 사회경제체제와 시장경제에서 집이 어떻게 상품화, 자본화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경로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구조와 시간과 경험이 축적되면서 집과 주거가, 또한 집을 소유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었는지도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주거 빈곤과 불평등, 비용 부담과 사회적 낭비는 용인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주거복지의 관점에서는 한국 곳곳에 작은 그렌펠타워들이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홈페이지에 적어 놓은 내용을 참고하면, 주거복지는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이자, 국민 모두가 “부담 가능한 비용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주거환경“을 누리는 것을 뜻한다(바로가기).

 

한국인의 민원도 그렌펠타워 주민들의 민원과 같은 차원이다. 수많은 ‘하우스푸어’의 경험, 그리고 주거 불안과 불만. 통계로도 확인되지만, 청년들의 주거 빈곤은 그냥 심각한 정도를 넘는다. “2015년 기준 청년 가구 주거빈곤율(6.4%)에 비해 청년 1인 가구의 평균 주거빈곤율(14.8%)은 두 배 이상 높다. 주거비 부담(월소득 대비 임대료가 20% 이상)만 보면 전체 청년가구(2.3%) 대비 청년 1인 가구의 부담 비율(10.8%)이 5배 이상이다.”(바로가기)

 

거기 같은 대형 참사는 없지 않겠느냐고 묻는 것은 주거 빈곤과 주거 불안이 초래하는 결과에 대한 관심이다. 주거복지와 대형 참사가 직접 연결될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다. 주거 여건의 특성 때문에 눈에 보이지만 않을 뿐, 매일 ‘저강도’로 생명이 손상되고 훼손되는 것은 참사와 얼마나 다를 것인가?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과 ‘부담 가능한 비용’은 모두 생명, 건강, 안전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그렌펠타워와 다른 점은, 집단이 아니라 개인으로, 한꺼번에 그런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계속해서, 큰 사고가 아니라 조금씩 쌓여서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한 가지 차이가 있기는 하다. 시장 원리가 늘 그렇지만, 사고와 생명 훼손이 분산되면 책임까지 개인화한다. 개인화는 또한 눈에 잘 띄지 않는 ‘비가시화’이기도 하다. 잘 보이지도 않는 각자의 원룸과 옥탑방에서 따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국정 책임자와 집권당에 따질 수 없고 나를 책망해야 한다.

 

그렌펠타워 참사에서 배울 것은 분명하다. 원인에서 결과에 이르는 전체 과정에서 생명과 건강, 그리고 복지를 기초로 주거의 원리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 집과 주거는 시세, 부동산, 부채, 주택청약저축, 전세와 월세, 투기, 위장전입 문제 그 이상이다. 데스몬드 매튜의 말대로, “”생명과 집은 워낙 불가분의 관계라서, 하나가 없는 다른 하나를 생각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쫓겨난 사람들>, 황성원 옮김, 동녘 펴냄).

 

집과 생명을 나눌 수 없다면, 포스터가 주장한 말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다. “적절한 주거는 특권이 아니라 권리이며, 집은 우리 가족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 보호해야 한다.” ‘주거복지’의 관점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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