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서리풀연구통] 환경 때문에 사망? 제도 때문에 사망!

1,032회 조회됨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반면 건강과 사회건강 불평등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에서 매주 목요일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환경 때문에 사망? 제도 때문에 사망!

[서리풀 연구通] 생명을 앗아간 잉글랜드 돌봄 체계의 실패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원
2017.07.08 12:26:46

 

 

우리는 자연재해나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건강 문제가 생기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1997~98년 경제위기 당시 실업률이 높았으니 자살률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고, 한파나 폭염이 닥치면 쇠약한 노인의 사망이 늘어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면밀히 검토를 해보면, 이것이 당연한 일은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 오늘 소개할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돌링 교수팀의 연구는 이런 익숙한 믿음에 의문을 제기한다 (☞논문 바로가기).

영국의 잉글랜드와 웨일즈 지방에서는 지난 2014~15년 겨울, 특히 2015년 1월에 사망률이 치솟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사망자 숫자는 그 전해 같은 기간보다 약 1만2000명이 더 많았고, 노인들이 상당수를 차지했다. 이는 2차 대전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이었다. 지난 30년 간 (가끔 변동이 있기는 했지만) 사망률이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였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은 특별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원인 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건 당연했다 (☞관련 글 바로 가기). 이후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가설들이 제기되었다. 런던 위생·열대의학 대학원과 옥스퍼드 대학 지리·환경 대학원의 공동연구진은 그러한 가설들을 검토하여 영국왕립의학회 학술지에 잠정적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이 살펴본 가설은 다음의 네 가지였다. 첫째, 실제 사망률이 증가한 것이 아니라 자료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둘째, 자연재해나 극심한 기상 상태 같은 환경 쇼크 때문에 사망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셋째, 공중보건 당국은 독감 유행이 사망률 증가의 주요 원인이라는 설명을 제기했다. 넷째, 보건의료-돌봄 체계의 만연한 실패 문제가 주요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우선 자료 문제를 생각해보자. 건강하지 않은 이들이 급격하게 유입되면 사망률 계산 시 분모에 비해 분자의 크기가 갑자기 커져서 사망률이 높아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대부분의 사망 증가는 노인에게서 일어났고, 이들이 이민자일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영국에 들어오는 이주민들의 대다수는 젊고 건강한 이들이며, 그러다보니 이주 생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원래 주민보다 더 건강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를 ‘건강 이주민 효과’라고 부른다. 게다가 이주민이 노인일 경우 국립보건서비스 (National Health Services, NHS) 이용을 위해 국가통계청에 등록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노인 이주민의 통계를 놓칠 가능성은 비교적 낮다. 실제 통계에서도 노인 인구의 급격한 유입은 관찰할 수 없었다. 은퇴 후 따뜻한 남유럽으로 이주했던 영국 노인들이 유럽연합 시민권을 잃게 되면서 고국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있지만, 자료에서는 아직 그러한 양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한편 2014년 연말에 사망 등록이 지연되었다가 2015년 1월에 한꺼번에 처리했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확인 결과 2014년 연말에 특별히 사망 등록이 줄어들었다는 근거는 챃을 수 없었다. 이러한 내용들을 종합할 때, 2014~15년의 사망 증가는 자료 문제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두 번째로 검토한 가설은 겨울철 한파로 인해 노인 사망률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2014년 9월부터 2015년 1월 사이 월 평균 기온은 오히려 2009~2014년을 웃돌았다. 따라서 이 또한 주요한 원인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셋째, 가장 유력한 가설은 독감 유행에 의해 사망이 급증했다는 것으로, 잉글랜드 공중보건 당국도 이를 지목했다. 이 때 유행한 독감 바이러스 균주가 특히 노인들에게 위험했다는 것인데, 실증 자료를 검토한 결과 치명률이 특별히 높지는 않았으며 똑같은 균주가 2008~2009년에도 유행했지만 특별한 사망률 증가는 없었다. 예년보다 백신의 효과가 덜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접종률 자체는 예년과 다르지 않았지만 바이러스 변이로 인해 효과성이 다소 떨어졌다는 점에서 이는 일부 타당한 설명이었다. 한편 공중보건당국은 요양시설에서 독감 집단 발병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노인 사망률이 급증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요양시설의 집단 발병 건수는 예년보다 많았다. 하지만 독감 관련 증상으로 인한 진료 자체는 2014~15년에 특별히 늘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특이한 점은, 독감 환자 수에 비해 사망자가 많았다는 점이다. 또한 과거에는 독감 유행 시 사망률이 반짝 증가했다가 곧바로 떨어지고는 했는데, 이번에는 유행이 지난 후에도 두 달 이상 사망률 증가가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유럽 다른 나라들의 독감 유행 상황이다. 당시 유럽연합 28개 국에서 독감과 관련하여 사망한 노인들의 숫자는 약 21만7000명으로 추산된다. 이는 예년보다 대규모인데, 국가별로 그 양상은 달랐다. 이를테면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의 경우 날씨는 훨씬 추웠지만 사망률 증가는 크지 않았으며, 에스토니아나 핀란드에서는 특별한 사망률 증가가 아예 관찰되지 않았다. 스웨덴의 경우, 독감 유행이 가장 심했던 단 2주 동안만 사망률 급증이 나타났고, 핀란드에서는 유행은 심했지만 예년과 다른 사망률 증가가 관찰되지 않았던 데 비해, 잉글랜드에서는 유행이 특별히 심각하지 않았음에도 11주 동안이나 사망률 증가가 지속되었다. 이들을 종합해보면, 독감 백신의 효과 저하와 요양시설에서의 유행이 일부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노인의 사망률 급증을 이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네 번째 가설은 보건의료, 돌봄 체계의 실패와 관련 있다. 2015년 1월, NHS 성과 지표들은 대부분 실적이 좋지 않았다. 구급차 출동이나 의사진료가 필요한 수준의 NHS 상담전화가 급증했으며, 구급차 출동 시간은 목표치에 미치지 못했고, 응급실 환자 수 자체가 늘어나지는 않았지만 응급실 진료와 입원 대기 시간은 심각하게 늘어났다. 진단에 걸리는 시간도 늘어났고, 비임상적 이유로 수술이 취소되는 경우도 급증했다. 돌봄 시설로의 전원이 매우 지연되면서, 병원 내 병상 부족이 심해졌으며 그에 따라 응급실 대기가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직원의 결근율은 올라간 반면, 후임이 임명되지 않아 공석의 숫자도 늘어났다.

 

연구진 스스로 밝혔다시피 이 분석 결과는 아직 잠정적인 것이지만, 2014~2015년의 노인 사망률 증가는 독감 유행이나 날씨, 자료 문제라기보다 보건의료 체계의 실패와 관련 있으며 특히 돌봄 체계의 실패가 이를 더욱 악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해석은 NHS 재정적 상황이 악화되고 있음을 고려하면 더 설득력이 있다. 2010년 보수당 집권 이후, NHS는 예산 축소로 인해 심각한 긴축에 시달려왔고, 사회복지 예산도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인구고령화에 따른 보건, 복지 서비스의 수요 증가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4~2015년에는 NHS 재정 적자가 처음으로 3억4900만 파운드를 넘어섰다. 2009년 이후 노인을 위한 돌봄 예산은 17% 감소했는데, 같은 기간 85세 이상 노인의 숫자는 9% 늘어났다. 현재의 돌봄 서비스 수준을 유지하려면 추가로 11억 파운드가 필요한데 정부는 예산증액을 거부했다. EU 탈퇴로 수입 의약품과 기자재 가격이 인상되고 보건의료와 돌봄 인력이 영국에서 빠져나갈 것을 고려하면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정부 위원회 조사에서도, 사회적 돌봄 예산 축소 때문에 응급의료 체계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노인들의 입원이 늘어나고, 2012~2016년 사이 이러한 사정 때문에 퇴원을 하지 못하는 사례가 70%나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요양시설의 병상 수는 2010년에서 2016년 사이 약 25만5000개에서 23만5000개로 6년 동안 거의 2만 개가 줄어들었다.

그러다보니 여름철은 전통적으로 병원이 다소 한가한 기간임에도 2016년 6~8월 동안 환자 10명 중 한 명이 응급실에서 4시간 이상을 대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2016~2017년 위기의 경고라고 볼 수 있었다. 연구진은 보건의료와 돌봄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증거들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이 ‘예외적’이라고 했던 2014~2015년 사태가 이제는 고정 패턴이 되어가고 있다면서 인력과 재정에 대한 시급한 개입을 촉구했다.

 

이러한 분석 결과와 경고는 한국 사회에도 들어맞는다. 우리는 흔히 폭염 때문에, 한파 때문에, 실업 때문에, 가난 때문에, 질병 때문에 사람들이 아프고 죽는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자연 환경 혹은 사회 환경 그 자체보다는, 그러한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과 제도가 실패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프고 죽게 되는 경우가 더욱 많다. 적절한 주거 환경이 갖춰진다면 폭염이나 한파 때문에 죽을 이유가 없고, 실업급여나 기초생활급여가 충분하다면 일자리를 잃었다고 혹은 가난하다고 자살에 이를 이유가 없다. 독감이 유행해도 보건의료체계가 잘 작동하고 양질의 노인 돌봄이 충분하다면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다. 진짜 중요한 문제는 저 너머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안의 인간보장 체계 안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서지정보

  • Hiam L, Dorling D, Harrison D, McKee M. What caused the spike in mortality in England and Wales in January 2015? Journal of the Royal Society of Medicine 2017;110(4):131-137
  • Hawkes N. Sharp spike in deaths in England and Wales needs investigating, says public health expert. BMJ 2016;252:i981

시민건강연구소 정기 후원을 하기 어려운 분들도 소액 결제로 일시 후원이 가능합니다.

추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