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성소수자 차별은 건강의 적이다
[서리풀 연구通] 성소수자의 의료 이용을 어렵게 하는 사회적 낙인
지난 5월, 아시아 최초로 대만이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다. 2001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지난 6월 말 독일에 이르기까지, 현재 전 세계적으로 20개가 넘는 국가에서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그에 비해 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의 결혼권 논의는 좀처럼 진전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군대 내 동성애자 색출, 처벌 사건(☞관련 자료 : 동성애자는 나라도 못지키는 나라…”국제 망신”)에서 드러나듯,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낙인은 여전히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사회적 차별과 낙인은 건강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동안 이루어진 국내외 여러 연구들에 의하면, 성소수자 집단은 건강과 의료이용에서 상당한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다. 이를테면 동성애 성정체성을 지닌 청소년들은 또래 청소년들보다 두 배 많이 자살을 시도하고(☞관련 자료 : Adolescent sexual orientation and suicide risk), 노인 LGBT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의 경우에도 다른 노인들에 비해 더 큰 사회적 고립과 필수 의료에 대한 접근 장벽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관련 자료 : The science of conducting research with LGBT older adults).
최근 <한국사회학>지에는 한국인 트랜스젠더들을 대상으로 사회적 낙인이 의료이용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논문이 실렸다(☞관련 자료 : 트랜스젠더의 의료적 트랜지션과 의료서비스 이용). 손인서 등 고려대학교 연구팀은 트랜스젠더 15명을 대상으로 의료적 트랜지션 과정에 대한 심층인터뷰를 수행했다. “의료적 트랜지션”이란,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 정체성에 부합하는 성별로 살아가기 위해 받는 의료적 조치로, 성전환 수술 뿐 아니라 호르몬 요법과 정신과 진단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연구 결과, 사회적 낙인은 트랜스젠더가 의료적 트랜지션의 필요성을 인지하는 과정, 의료서비스를 알아보는 과정, 그리고 이용하는 과정 전반에 걸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연구자들은 모든 트랜스젠더들이 의료적 트랜지션을 원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사회적, 제도적 압력으로 인해 필수적인 것이 되고 있음을 밝혀냈다. 자신의 성 정체성과 태생적 성별 사이의 괴리에 따른 ‘성별 위화감(gender dysphoria)’ 해소를 위해 반드시 의료적 처치가 뒤따라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연구 참여자들 중에는 수술을 받기보다 자신의 외모나 행동양식을 변화시키고 가꾸는 데 투자하는 것에 만족을 느낀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는 가족, 친구, 직장 상사 등으로부터 ‘인정’ 받기 위해서는 의료적 트랜지션이 필수적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나 법적 성별을 정정하고 (트랜스 여성의 경우) 병역을 면제 받으려면 성전환수술을 받았음을 증빙해야 한다. 이렇게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서, 의료적 트랜지션의 필요는 강제화되고 그 유형도 성전환수술로 단일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트랜스젠더들은 의료적 트랜지션을 받기 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알아보는 과정에서도 사회적 낙인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정부 보건당국이나 의학계는 의료적 트랜지션에 대한 공식 정보, 지침을 생산하지 않는다. 제도적 차별과 무관심이 중첩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랜스젠더들은 온라인에서 성소수자 공동체를 통해 정보를 찾고 공유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정보들 중에는 개인의 경험, 소문 등 불완전하거나 왜곡된 것이 많았다. 사회적 낙인 때문에 온라인 공동체는 정체를 온전히 드러내면서 활동하기 어렵고, 바로 이러한 점이 잘못된 정보의 수정을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트랜스젠더를 향한 사회적 낙인은 이들이 의료 제공자를 만나 의료적 트랜지션을 받는 임상현장에서도 작동하고 있었다.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의료제공자로부터 차별과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환자와 의료제공자 사이의 위계, (의료적 트랜지션을 시행할 수 있는 기관이 부족하다보니) 의료제공자의 독과점적 지위, 그리고 의료제공자의 영리 추구로 인해 임상 현장에서의 차별은 더욱 강화되고 있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들은 별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차별을 피하거나 맞설 방법이 없었다.
연구진은 트랜스젠더의 의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차별금지법 도입 같은 사회 전반의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의료 환경과 차별금지법은 직접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사회제도의 파급효과는 매우 크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주(state)에서 청소년 자살률이 그 전에 비해 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관련 자료 : Difference-in-Differences Analysis of the Association Between State Same-Sex Marriage Policies and Adolescent Suicide Attempts). 미국 정부의 국민건강기본계획이라 할 수 있는 “Healthy People 2020″의 목표치 중 하나가 청소년 자살률 10% 감소임을 감안한다면, 동성혼 합법화의 효과는 상당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 연구를 주도했던 존스홉킨스 대학의 라이프만(Raifman)은 동성결혼 법제화가 청소년 자살률 감소로 이어진 데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관련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관련 자료 : The Health Effects Of Legalizing Same-Sex Marriage).
청소년 성소수자들 대다수에게 결혼이 당장 시급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전통적 제도’에서 동등한 권리를 갖게 되고, 미디어의 관심과 함께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 가면서, 성소수자에 좀 더 포용적인 사회가 열릴 것이라는 희망이 생겨났으리라는 것이다. 또한 소수집단을 포용하는 방향으로의 사회변화는 비단 성소수자 청소년 뿐 아니라 다른 종류의 배제와 차별 상황에 놓여 있던 청소년들에게도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사회의 차별금지법 도입, 동성혼 법제화, 법적 개선 등의 제도적 변화는 매우 중요한 공중보건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이러한 제도의 변화는 그 혜택을 직접 받는 일부 집단을 넘어 전반적 차별 행태를 개선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차별과 낙인이 당연하지 않은 사회로의 이행은 성소수자 뿐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이들의 건강, 삶의 전망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국민건강증진 전략이다. 이러한 바람직한 변화를 한시도 뒤로 미룰 이유는 없다.
서지정보
- 손인서, 이혜민, 박주영, 김승섭. (2017) “트랜스젠더의 의료적 트랜지션과 의료서비스 이용 – 사회적 낙인과 의료적 주변화” 한국사회학 51(2): 155-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