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개헌 작업에 속도를 내는 모양이다. 제헌절(바로 오늘이다!)을 활용하는 홍보 활동인지는 모르나 국민대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본격적으로 여론 수렴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일정도 내놓았다. “대통령이 내년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인 6월 13일에 개헌 국민투표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힌 만큼, 이번 제헌절을 기점으로 개헌 논의가 본격 추진돼야 한다.” (기사 바로가기)
개헌특위가 제시한 ‘국민참여형’ 개헌 논의의 방법과 일정은 이렇다.
△ 부산, 광주, 대구, 대전 등에서 국민대토론회 개최(8월말∼9월말, 11회)
△ 누구나 개헌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는 국민개헌 자유발언대 설치·운영(9월∼)
△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개헌국민대표 5,000명을 선발해 주요 쟁점을 숙의·토론하는 개헌국민대표 원탁토론(10월, 4회)
△ 직접 의견을 내기 어려운 국민을 위해 온라인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할 수 있는 홈페이지 개설.
개헌을 논의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과 부합하는 만큼(<서리풀 논평> 2017년 7월 3일, 바로가기, 우리는 국회 개헌특위의 이런 활동을 환영하고 지지한다. 이것만으로 ‘시민 참여’가 충분하다 할 수 없으나, 또 다른 주체들이 다양한 과정을 통해 보완하고 키워 갈 일이다.
일반 시민이 참여하여 무엇을 다룰 것인가? 건강권을 포함한 기본권 강화가 중요하다는 주장은 되풀이하지 않는다. 바로 2주 전 <서리풀 논평>에 기본권이 핵심이라는 우리 주장의 논거를 밝혀 놓았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다만, 최근 여론조사 결과 한 가지는 보태는 것이 좋겠다. 바로 며칠 전 국회의장실이 발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93.9%가 헌법상 기본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응답했다(보도자료 바로가기). 조사의 오차범위를 생각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기본권 강화를 바란다는 뜻이다.
어떤 기본권인가에 대한 응답 결과도 참고하자. “신설하거나 강화해야 할 기본권으로는 안전권(31.3%), 생명권(21.0%), 환경권(16.8%), 건강권·보건권(12.8%) 순이었다. 한편 응답자의 72.0%는 헌법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시하는 것에 찬성했다.”
오늘 우리는 새 헌법이 지향해야 할 방향 한 가지를 더 말하려 한다. 많은 사람이 주장하지만 좀처럼 힘이 붙지 않는 것, 바로 지방 분권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일정대로 된다면) 내년 6월 만들어질 새로운 헌법은 반드시 ‘지방분권형’이어야 한다.
원칙에 대해서는 전문가와 일반인 모두 이론이 없다. 앞서 말한 국회의장실의 여론 조사에서도 지방분권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이었다. 세부 제도와 정책 수준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해하고 동의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방향’은 분명하다.
“성ㆍ연령ㆍ지역ㆍ이념성향에 상관없이 모든 계층에서 대통령 권한 분산과 지방자치단체 권한 강화에 대한 열망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거나 견제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률이 79.8%에 달했고, 중앙정부의 권한과 재원을 지방자치단체로 분산해야 한다는 응답률도 79.6%를 기록했다. 자치입법권 신설에 대해 응답자의 72.0%가, 자치재정권 신설에 대해 77.2%가 찬성했다.”
지방분권은 단지 선언과 지향, 추세의 문제에 끝나지 않고, 주민의 삶이 얼마나 안전하고 행복한가와 직결된다. 대표적 사례 한 가지. 잊을 수 없는 보건이자 안전 문제, 그리고 중앙정부의 지리멸렬함이 드러났던 메르스 사태에서 이른바 ‘2할 자치’의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메르스 사태를 겪었던 염태영 수원시장을 말을 들어보자.
“메르스 대란을 겪으면서 자치와 분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절실하게 느꼈다….자치단체장이 일을 하려고 해도 이러한 불신 속에 실질적인 재정과 조직의 분권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무늬만 지방자치인 셈이다….중앙정부의 권한과 책임을 과감하게 지방으로 이양해 현장중심의 대응력을 높이지 않는다면 메르스와 같은 대란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사 바로가기)
메르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보건만큼 제대로 된 지방자치가 필요한 영역도 드물다. 지역별로 노인 인구 비율이 크게 다르고 중요한 질병 종류도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어 손상은 시군구별로 발생률이 7배 이상 차이가 난다(기사 바로가기). 울산과 대구 사이에, 서울 영등포구와 장수군 사이에, 중점을 두어야 할 보건사업이 같을 수 없다.
어떤 지방자치가 진정한 지방분권형인가? 모두가 헌법에 담겨야 할 것은 아니지만, 지방분권을 확대하기 위해 다루어야 할 것은 한둘이 아니다. 국세와 지방세 배분, 복지 재정 담당의 주체, 교육 자치와 자치경찰제, 주민 참여(주민발의, 주민소환, 주민투표제, 주민참여 예산제 등) 등이 모두 논쟁과 결정의 대상이다.
개헌이 이 모든 과제를 명시하지 못하고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나, 개헌은 또한 지방분권에 부합하는 모든 제도와 정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앞서 인용한 그 수원시장이 말하는 개헌의 방향.
“생활정치,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지방분권형 개헌이 필요하다….지방분권형 개헌을 통해 법이 못하게 하는 것만 빼고는 다 지방에 맡기도록 바꿔야 한다….중앙정부는 국방, 외교 등 중앙정부 단위의 큰 사업만 하고 이런 것 외에는 다 지방정부에 맡겨두는 것이 비용측면, 효율측면, 민주주의측면 등 모든 부분에서 더 우월하고 월등한 경쟁력을 가지 수 있다.” (기사 바로가기)
너무 급진적이라고 말할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비현실적이다, 시기상조다, 토대가 약하다, 비판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경기도와 경상남도가 사정이 다르고, 인천과 광주가 형편이 같을 수 없으니, 왜 그렇지 않겠는가. 핵심 중의 핵심인 재정에 이르면 마치 서로 다른 나라나 되는 것처럼 이질적이다. 구체적인 방법에 들어가면 더 나눠진다.
우리는 그 모든 이견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나, 개헌의 방향이 지방분권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양보하기 어렵다. 나빠질 대로 나빠진 지역 간 불평등과 비수도권 지역의 ‘식민지화’를 생각하면 더 그렇다. 어느 지역에 살거나 골고루 삶의 질이 나아지고 기본권이 보장되는, 그 가능성을 담보하는 개헌 작업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관심은 다시 개헌의 ‘과정’으로 돌아온다. 개헌 시점이 채 일 년도 남지 않았는데 지방분권 논의가 지지부진하다는 것이 안타깝다. 단지 정부와 정치권에만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지방분권형 감염병 관리체계나 각 지역에 맞는 분권형 보건정책을 논의해야, 그리고 요구해야, 지방분권형 개헌 논의가 힘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도 시민 참여가 중요하다. 지방분권에 핵심 이해관계가 걸린 당사자는 많지 않다. 국회의원이, 지방 토호와 지역 유지가, 지역의 고위관료가 정말 지방분권을 원할까? 힘은 주민으로부터, 시민으로부터, ‘밑’(기초)에서 나온다. 더 늦기 전에 지방분권을 논의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