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어린이의 건강 불평등과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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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린이날은 선물과 놀이공원으로 시끌벅적했다. 모습은 제각기 달랐지만, 집집마다 부모들은 꽤 많은 지출을 했을 것이다. 그 때문이겠지만 어린이날이 5월 소비지출 증가에 기여할 것이라는 전망도 매년 비슷하다. 상품화의 위력이 못내 씁쓸하다.     
 
구색을 맞추느라 성적 스트레스, 안전, 행복지수 같은 건강 ‘문제’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희귀난치성질환 환자를 비추거나 연예인이 어린이 환자를 위문하는 행사 같은 것은 너무 익숙해서 질릴 정도이다. 그러고 보면, 건강의 외피를 쓰고 상품화되는 것은 아닐까 의심스럽다. 성적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건강이 중요하고 그래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단다. 이런 식이면 단순한 의심수준을 넘는다.  
 
그래도, 온갖 상품으로 어린이날을 소비하는 것에 비하면, 이런 모양으로라도 문제를 드러내는 편이 낫기는 하다. 만들어진 허상(하버마스 식으로 이야기하면 ‘식민지’가 된 생활세계)에 작지만 틈을 내기 때문이다. 물론 한계를 넘기는 어렵다. 애타는 사연이나 미담이 된 문제는 에피소드는 될지언정 그 뿌리가 사회구조에 닿는다는 사실은 감춘다.  
 
단편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문제의 핵심에는 일차적으로 불평등이 있다. 건강도 그렇지만, 한국의 어린이가 경험하는 불평등의 양상은 다양하고 범위가 넓다. 때맞추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발표한 조사자료를 보면, 토요일 점심을 혼자 먹는 초등학생이 27.9%, 굶는 학생이 3.2%였다. 이 결과를 적용하면 전국적으로 10만 명 이상의 초등학생이 점심을 굶는 셈이다. 아직도(!) 그렇다. 
 
건강 측면에서도 어린이가 겪는 불평등은 심각하다. 성장과 발달, 정신과 사회적 건강, 건강관련 행동, 질병과 사망, 모든 면에서 어린이의 건강 불평등은 일관되게 나타난다. 한 가지 예로, 고소득층 초등학생들은 약 80%가 행복하거나 매우 행복하다고 했지만, 저소득층은 50%가 행복하지 않거나 전혀 행복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또한, 2006년 이후에 수행된 여러 연구를 보면, – 연구방법은 각기 다르지만 – 어린이의 사회경제적 위치(부모의 학력이나 직업, 거주지의 수준 등)가 낮을수록 사망수준이 높다. 
 
불평등 현상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사회구조에서 비롯되고, 그 핵심에는 어린이의 빈곤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2011년 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아동(0-17세)빈곤율은 10.3%에 이르고 특히 한부모 가정은 20%를 넘는다(실업상태 23.1%, 근로상태 19.7%). 간단한 수치지만, 빈곤, 가족구조, 노동은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또한 빈곤에서 불평등에 이르는 경로를 쉽게 짐작하게 한다. 빈곤, 실업과 비정규 노동, 가정폭력, 가족 해체, 어린이의 보호와 교육, 주거와 위생환경, 문화생활… 원인과 결과를 가릴 수 없이 빈곤에서 불평등에 이르는 경로를 구성한다. 
     
현실에서 경험하는 어린이의 빈곤과 불평등은 일차적으로 개인적 감성과 도덕에 호소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하철에서 도움을 청하는 어린 손을 쉽게 뿌리치지 못하는 이유가 아마도 그런 것일까. 그러나 어린이의 빈곤과 불평등은 대표적인 권리 침해에 해당한다. 현대 국가에서 권리는 대개 국가를 전제로 하는 것이니, 빈곤과 불평등 역시 개인의 차원을 넘는 사회적 의제이다. 특히, 1989년 유엔 총회가 아동권리협약을 채택한 이후, 어린이의 빈곤과 불평등은 국제적 규범이자 보편적 권리를 침해하는 중대한 문제가 되었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다음과 같은 아동권리협약의 조항들이 빈곤 또는 건강 불평등과 직접 관련된 것들이다.    
 
– 차별받지 않을 권리(2조)
– 어린이의 이익을 가장 우선에 둘 의무(3조)
– 생존과 발달의 권리(6조)
– 장애를 가진 어린이가 존중을 받고 자립하여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특별한 보호와 교육을 받을 권리(23조)
– 가능한 가장 높은 수준의 건강을 누리고 보건의료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24조)
–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발달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27조)
– 평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28조)   
– 건강과 발달에 해가 되는 유해한 노동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32조)
– 마약 등의 약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33조)
– 성 착취와 성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34조) 
 
언뜻 보더라도 현실에서 이런 권리를 모두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인권학자 프레드만(Fredman)의 주장대로, 의무를 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권리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아동권리협약의 조항 하나하는 우리 사회에서 중대한 인권 침해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일깨우는 것과 함께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하는 것도 제시한다. 
 
한국에서 어린이를 권리의 주체로 보는 시각은 익숙하지 않다. 권리에 초점을 두고 어린이의 건강 문제에 접근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어린이의 권리는 이제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인권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어린이의 권리 충족을 위한 핵심 과제에 건강 불평등이 포함된다는 것에도 크게 이견이 없을 것이다. 어린이의 건강 증진을 위해 권리에 기초한(rights-based) 또는 인권에 기초한(human rights-based)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 참고한 자료
– 김명희 외. 아동기의 건강불평등: 사회적 결정요인을 중심으로. 보건복지포럼. 2011년 6월호.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주5일수업제 토요일 어린이 생활실태와 의식조사 결과. 2012. 
http://tinyurl.com/6n5aup3
– 유엔아동권리협약(http://www2.ohchr.org/english/law/crc.htm)
– OECD. Child Poverty Data. 2011 (http://www.oecd.org/dataoecd/52/43/4192955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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