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논평] 북한 주민에게 고통을 주는 길밖에 없나?
“적어도 북에 대한 원유공급을 중단하는 것이 부득이한 만큼 러시아도 적극 협조해 달라”, “원유중단이 북한의 병원 등 민간에 대한 피해를 입힐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기사 바로가기). 잠시, 어느 것이 누구 말인가 혼란스럽다.
문재인 대통령이 원유공급 중단을 요청하고,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민간이 피해를 본다며 반대했다. 병원이 등장한 것이 정확하면서도 비현실적이다. 국제정치의 논리가 아니면 요구도 여기에 대한 반응도 설명하기 어렵다. 이제 ‘이중 사고’(조지 오웰, <1984년>)도 따로 훈련을 받아야 할 지경인가.
북핵 문제를 둘러싼 긴장이 높아지면서 북한에 대한 압박과 제재 요구가 거세다. 국내, 국제 모두 북한을 고립시켜 무릎을 꿇리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가장 강한 힘을 가진 미국이 앞장서 월요일(11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추진한다고 하니, 어느 쪽이든 곧 결정될 것이다. 미국이 준비한 결의안은 대북 석유 수출과 섬유 수입을 금지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한다.
외통수가 될지는 더 두고 볼 일, 북한을 ‘봉쇄’하는 것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강하다. 안보리 결의만 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하거나 시큰둥하니 미국 뜻만 따를 수 없다. 말로는 더 강하게, 실제로는 과거와 비슷하게 결론이 날 공산도 있다.
오늘 우리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 그 방법으로 거론되는 초강력 제재, 특히 북한 봉쇄에 관심을 둔다. 많은 이들이 더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주장하지만, 그것이 몰고 올 효과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부수적 피해’가 나타나는가?
경제 제재가 정말 효과가 있는 압박 방법인지는 다른 분야 전문가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미국이 강요한 경제 제재는 성공보다 실패 사례가 더 많다. 문순보가 2010년 <국제전략>이라는 학술지에 낸 논문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논문 바로가기).
“204개의 제재 사례들을 분석한…제재 대상국에 대한 경제적 제재들은 부분적으로만 효과를 거뒀거나 약 34%만이 제재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들은 제재의 적용 이전에 특정 국가가 제재 대상국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기보다 선린관계를 맺어왔을 때 해당국에 대한 제재가 성공을 거둘 확률이 높다고 분석했다.”
비슷한 연구와 분석을 많지만, 경제 제재가 생각만큼 효과가 없는 것은 분명하다. 2016년 영국의 언론인 사이먼 젠킨스가 <가디언> 신문에서 주장한 것이 역사적 경험의 결론에 해당한다(기사 바로가기).
“쿠바, 이란, 미얀마, 남아프리카공화국, 이라크, 세르비아, 리비아, 시리아 등에 경제 제재가 시행되었다. 거의 대부분 사례에서 역효과를 낳았고, 내부적으로는 제재 대상 정권과 그들을 정책을 강화하는 쪽으로 작용했다. 이라크, 세르비아, 리비아에 대한 실패는 폭력과 전쟁을 불러왔다.”
한반도에서는 다를 것이라고? 지금까지 경과만 봐도 대북 경제 제재는 (무엇을 바랐든)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더 강력한 제재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는 제재를 강화할 수 있고 그것이 효과를 보일 것이라는 명확한 근거를 들은 적이 없다.
여기서 북한을 압박하는 다른 선택지, 예를 들어 군사적, 외교적 해법 같은 것은 가타부타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까지 나온 사드 배치, 한미 동맹 강화, 핵무장, 중국을 통한 북한 압박 등이 효과가 있을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옥쇄’까지 각오한 것처럼 보이는 북한에 무력시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소박하거나 맹목적인 전면 봉쇄 전략을 반대한다. 근거가 없고 효과를 확신할 수 없는 데 비해, 근거 있는 역효과(부작용, 부수적 피해)는 명확하다. 단언하지만, 집권층에는 별 충격이 없으면서 일반 주민의 삶은 완전히 파괴될 것이다.
하나하나 언급할 필요도 없다. 삶과 생활의 파괴는 몸에 새겨져 건강 악화와 생명 파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보건과 의료가 무너질 터이니 그나마 방어와 완화도 작용하기 어렵다. 단지 예상이 아니라 풍부한 역사적 사례와 근거가 있으니, 몇 가지만 언급해도 그 과정과 결과를 이해할 수 있다.
“쿠바는 (건강 영역에서) 여러 가지를 성취했지만, 미국의 제재(엠바고)가 중요한 장애 요인으로 작용해 영아사망률과 모성사망률을 더 낮추지 못했다” (엠네스티 보고서 바로가기). 지구 반대편, 이라크에서 경제 제재 때문에 죽은 사망자 수는 미국과 이라크 전쟁에서 죽은 사람보다 더 많다(논문 바로가기).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북한의 보건 사정은 재앙으로 발전할지 모른다. 북한은 1990년대 후반에 벌어졌던 ‘고난의 행군’도 서슴지 않을 것이고, 이는 인구와 생명 전체를 직접 타격할 것이다. 대북 강경론자들이 말하는 경제 제재의 속셈이 설마 여기까지 이른다고는, 차마 믿고 싶지 않다.
국제 정치와 정세, 평화와 안보의 냉혹함을 몰라서 몇몇 생명을 거론한다고? 현실에서 그런 전략이 가능한지와 상관없이, 초강력 제재와 전면 봉쇄는 윤리와 정의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마침 세계적인 보건 학술지 <랜싯(Lancet)>의 편집장 리처드 호튼이 북한 전면 봉쇄를 반대하는 글을 썼다(9월 9일, 논평 바로가기).
“이런 목조르기 전략은 정치적으로 잘못되었고 도덕적으로는 비인도적이다. 김정은을 벌하는 것과 2천 5백만 북한 주민을 벌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정치체로서의 북한은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이기도 하다. 서구 지도자들이 한 국민 국가를 악마로 만들기 쉬우나, 이미 고통 상태에 있는 주민들을 악마로 만드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그사이 북한 주민의 열악한 건강 상태를 개선하려는 국제적 노력과 협력이 여러 경로로 진행되었다고 말한 뒤, 그는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한 마디로, 독재자와 극소수 권력층이 아닌 북한 주민의 목을 조르지 말라는 것.
“(보건에 대해서는) 모자보건에 대한 접근성, 식량의 불안정성, 자연재해에 대한 취약성, 대기 오염, 담배 규제, 필수 구명용품(life-saving commodity)의 절대 부족, 허술한 병원간 의뢰체계 등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다….지금 북한을 둘러싼 논의에 이런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국제 차원의 안전보장과 국내 차원의 인간보장 사이에 균형을 잡는 일에 계속 실패하면, 이는 북한 주민을 파멸로 이끄는 배신이다.”
우리는 긴장된 정세와 갈등 관계를 해소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방법이 준수하고 고수해야 할 원칙을 가다듬으려 한다. 간단하고 명료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평화가 유지되어야 하며, 남북한 주민의 안녕과 복지, 생명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어야 한다.
당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책 당국자, 분야 전문가, 정치인에게 이를 묻는다. 핵무기, 사드, 전술핵 배치, 한미 동맹, 그 무엇이든 마찬가지다. 그것이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 목표와 가치는 무엇인가? 당신들의 제안은 이런 목표와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가?
목표와 가치가 분명하면 복잡한 현실과 방법이 단순해질 수 있다. 우리는 지난 9월 6일 이남주가 주장한 방안에 대체로 동의한다. “비핵화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는 대화 제안은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현실을 명확하게 인정하고 북한이 현재의 폭주를 멈출 수 있는 제안을 갖고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기사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