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부정부패는 시민의 정신건강을 좀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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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 연구통] 부정부패는 시민의 정신건강을 좀 먹는다

 

양 준 용 (시민건강증진연구소 회원)

 

지난 대통령 선거를 지배했던 강력한 프레임 중 하나는 ‘적폐청산’이었다. 한국인들이 소위 ‘사회지도층’의 부정부패에 얼마나 이골이 났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각에서 ‘김영란 법’에 대한 불편을 호소하고 있음에도, 오히려 부패 감시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사회적으로 만연한 부정부패는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직접적으로는 개인이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의료자원의 적절한 분배를 왜곡할 수 있다. 예컨대 힘 있는 사람 때문에 진료 대기 순서에서 밀려나거나 의사-제약사의 부적절한 관계 때문에 특정 약물을 처방받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를 넘어서 사회적으로 부정이 만연한 상황 자체가 개인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도 있다. 비선실세 부모만 있으면 대학입시 쯤은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을 때, 취업에 실패한 자신의 무능함을 탓했는데 알고 보니 공채 합격자의 95%가 연줄 때문이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누구라도 분노와 허탈감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UN 지속가능위원회가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 세계행복보고서는 부패인식을 행복감의 핵심요인으로 포함하고 있다.

 

올해 초 네덜란드 틸버그 대학 반 드루젠 교수가 국제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 Social Science & Medicine>에 발표한 논문은 시민들의 부패인식이 행복감을 넘어 우울과도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논문 바로가기: And justice for all: Examining corruption as a contextual source of mental illness). 저자는 2006년, 2012년, 2014년 세 차례의 유럽사회조사 자료를 이용하여 24개 유럽 국가에 거주하는 약 10만 명을 대상으로 분석을 시행했다. 동일한 자료를 이용하여, 처음에는 조사 시기별로 횡단면 분석을 통해 국가, 개인 수준의 요인들이 개인의 우울증상에 미치는 효과를 확인하고, 이어서 국가별로 반복 측정된 점을 고려한 고정효과 모형을 통해 앞서의 결과와 비교하였다. 이 때 국가 수준의 영향 요인 변수로는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발표하는 부패지수(CPI)를 사용했고, 경제발전 수준을 나타내는 국내총생산(GDP), 그리고 공산주의 체제 경험 여부를 포함시켰다. 또한 개인 수준에서 우울 증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로 성별, 학력, 출생 시기, 거주지, 취업 여부 (특히 공공부문 종사 여부), 자녀양육여부, 혼인 상태, 종교, 경제적 어려움 등을 고려했다.

 

 

분석 결과 조사된 모든 해에서 사람들이 인식하는 사회 부패 수준과 우울 점수의 평균은 비례하는 양상을 보였다(그림 참조). 또한 각 국가에서 조사된 변수들의 평균을 이용하여 3개년도 자료를 시간 순으로 놓고 거시적 차원에서 종단면 분석을 실시한 경우에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저자는 부정부패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이 특정 집단에서 더욱 두드러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추가분석도 시행했다. 그 결과, 여성이거나 종교가 있거나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경우 부패지수와 우울감의 관계가 더욱 또렷해졌다.

저자는 부정부패가 우울로 연결되는 경로를 크게 세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부정부패는 개인이 사회적·물질적 자원에 접근하는 경로를 가로막는다. 이는 일종의 맥락적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 둘째, 부정부패는 개인이 무력감을 느끼게 하고 문제해결에서의 자신감을 떨어뜨린다. 사람을 비관에 빠뜨리며 스트레스 대처 역량을 갉아먹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정부패는 분노와 절망의 원인이 되어 부정적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부정적 정서는 행복감을 낮추고 우울감을 높이는 가장 직접적 요인 중 하나이다.

소개한 논문은 유럽의 상황을 다루고 있지만, 이 세 가지 설명은 한국사회에도 잘 들어맞는다. 한국에서 동일한 분석이 이루어진 적은 없지만, 비슷한 상황을 짐작케 하는 몇몇 단서들이 있다. 앞서 언급한 세계행복보고서 2017년 판에서 한국은 55위라는 저조한 성적을 보였다. 특히 부패인식 점수에서 1등인 노르웨이의 0.32점에 비해 그 20%에 불과한 0.06점을 획득했다 (UN 지속가능위원회 세계행복보고서 2017 참조). 여러 요인들을 고려한 정밀한 분석이 아니기에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생애 선택의 자유가 낮은 점과 더불어 높은 수준의 부패인식은 한국이 우리보다 경제 수준이 낮은 남미 국가들, 혹은 경제위기를 겪은 국가들에 비해서도 행복감이 더 낮은 이유가 되고 있다. 국내 통계청의 발표에 의하면 한국인의 우울감은 여러 비교대상 국가들 중에서도 단연 높다. 이는 아마도 이러한 요인으로 일부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기사 바로가기: 한국인 정신건강 ‘빨간불’…우울감 경험률 주요국 중 ‘최고’).

오늘 소개한 논문 한 편으로 원인-결과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현재까지의 이론적·경험적 연구들은 부정부패가 대중의 건강을 좀먹을 수 있다는 데 점차 수렴하고 있다. 공정한 규칙이 사라지고 부정부패와 검은 연줄로 사회가 돌아가는데 나 혼자 행복하고 스트레스가 사라질 리는 만무하다. 내가 했던 노력은 모두 헛수고이고 노력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자괴감은 물론, 심지어 내가 부정에 연루되었을 때조차 남들도 다 그런데 나만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는 억울함이 우리를 지배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누구나 정직한 노력과 공정한 절차 대신 부정한 방법에 기대지 않을 수 없다. 그야말로 악순환이다. 우리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서라도,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는 필수적이다.

 

* 서지정보

van Deurzen, I. (2017). And justice for all: Examining corruption as a contextual source of mental illness. Social Science & Medicine, 173, 26-34.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금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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