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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사회를 넘어 ‘건강한 노화’ 사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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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 연구通] 사회적 관계의 악화는 노인들의 정신건강을 위협한다.

 

민동후 (시민건강증진연구소 회원)

 

최근 행정안전부에서 발표한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만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를 넘는 ‘고령 사회’에 접어들었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노령화가 진행 중이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여, 지난 대선에서도 치매 국가 책임제를 비롯한 노인 관련 정책이 큰 관심사로 부각되었다. 각종 언론 지면에서는 ‘100세 시대’를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고령화는 이제 너무나 익숙한 ‘관용어’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과연 늘어난 노인 인구, 늘어난 수명만큼 노년기 삶의 질도 높아졌을까? 안타깝게도 대답은 ‘아니오’다. 2015년에 OECD가 발간한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빈곤률은 49.6%로 OECD 회원국들 중 가장 높다(참고 자료 바로 가기). 노인 자살률이 그토록 높은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6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연령이 높아질수록 자살을 선택하는 노인의 비율은 점점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노년기 삶의 질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경제적 요인, 빈곤만이 노년기 삶의 질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홍콩대학교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 Social Science & Medicine>에 발표한 논문은 노인 자살 문제에서 ‘사회적 관계’가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확인했다 (논문 바로가기). 이전에도 사회적 관계와 자살 간의 연관성을 살펴보는 연구논문들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논문마다 사회적 관계를 측정하는 방식이 달랐고, 사회적 관계가 자살 생각에 미치는 효과 크기도 다양하게 나타났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관계가 정말로 자살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렇다면 그 효과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종합적으로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연구진은 이러한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 2000년부터 2016년까지 전 세계에서 발표된 관련 논문 총 7,471편을 검토하고, 그 중 질적 평가 기준에 부합하면서 사회적 관계가 자살 생각에 미치는 효과를 수치로 제시한 31편의 논문을 종합했다.

연구진은 각 논문들이 변수로 사용한 사회적 관계를 크게 ‘구조적’ 관계와 ‘기능적’ 관계로 구분했다. 구조적 관계는 사회적 관계의 양이나 종류와 관련되며, 사회 연결망이 좋지 못한 경우, 사회적 접촉의 양이 적거나 지역사회 참여가 적은 상태 등을 포함한다. 반면 기능적 관계는 사회적 관계의 질을 나타낸다. 여기에는 외로움을 느끼거나 사회적 지지를 적게 받는 상태 등이 포함된다.

분석 결과 각 요소별로 자살생각에 미치는 효과 크기는 달랐지만, 전체적으로 종합했을 때 사회적 관계가 나쁜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자살 생각 위험이 유의하게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점은 구조적 관계에 비해 기능적 관계와 자살생각 사이의 연관성이 더욱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이는 노인의 정신 건강에 사회적 관계의 양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그러한 사회적 관계가 얼마나 양질이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연구팀은 사회적 관계가 자살 생각에 미치는 효과 크기를 변화시키는 요인들에 대해서도 검토했다. 그 결과 연구 대상 집단의 문화적 특징, 국가의 경제적 수준 등 사회적 맥락에 의해 사회적 관계의 영향력이 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러한 분석 결과를 토대로, 노년기의 사회적 관계가 자살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며, 특히 사회적 지지나 외로움 같은 사회적 관계의 질과 주관적 요소들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회적 지지의 경우 자살 생각 같은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노인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행복감 같은 긍정적 감정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노인 자살 예방을 위한 효과적 기전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 논문은 중국 사회를 중심으로 논지를 전개하고 있지만, 한국 상황에도 잘 들어맞는다. 우리는 자살 문제를 대할 때, 개인의 고통에 초점을 맞추거나 아니면 자살 예방을 위한 제도와 정책의 미진함을 지적하곤 한다. 물론 이 두 가지 요인을 개선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자살 문제, 꼭 자살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노년기 정신건강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조건만큼이나 사회적 관계와 그 질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이 때 사회적 관계란 비단 가족과 친구 같은 주변 인간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요즘 한국 사회에는 소위 ‘~충’으로 표현되는 혐오와 비하가 심각하다. 노인 역시 혐오와 비하의 손쉬운 표적이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그리고 이러한 부정적 시선은 그 자체로 노인의 정신건강에 해를 끼칠 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단절시키는 데에도 기여한다. 상호 존중과 관계성의 회복이야말로 ‘건강한 노화’ 사회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다.

 

* 서지정보

Chang, Q., Chan, C.H., & Yip, P.S. (2017). A meta-analytic review on social relationships and suicidal ideation among older adults.. Social Science & Medicine, 191, 65-76.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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