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국가예산 나누기, 이래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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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사이 국회에서(그리고 청와대에서) 벌어진 일.

 

“자유한국당 예결위 간사인 김도읍 의원도 통화에서 “의사, 간호사 인건비 지원과 수도권 헬기 한 대 도입 등을 위해 권역외상센터 예산을 212억 원 늘리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는 당초 내년 중증외상전문진료체계 구축 예산, 즉 권역외상센터 관련 예산을 올해보다 8.9%(39억2천만 원) 줄인 400억4천만 원으로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다. 지난해 다 쓰지 못한 관련 예산이 100억여 원에 달한 데 따른 편성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국종 센터장의 북한 병사 치료를 계기로 열악한 권역외상센터의 문제점이 드러났고, 예산마저 줄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권역외상센터 예산을 증액해야 한다는 국민적 목소리가 커졌다. 결국, 여야는 권력외상센터 예산 증액으로 화답했다.”(기사 바로가기)

 

한 언론은 이국종이 ‘활약’한 덕분이라 썼다.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 기사 제목을 뽑은 사람은 예산 결정 과정을 제법 잘 아는 사람이 틀림없다. 마케팅이든 인맥이든, 하다못해(?) 공무원 ‘빽’이라도 있어야 예산을 딸 수 있다니 ‘활약’이란 표현이 딱 맞다.

 

 

광주에서 발행되는 한 신문에 실린 이런 기사는 또 어떻게 봐야 할까? 시나 도 이름과 단체장 이름만 바꾸면 모든 광역자치단체가 하나도 다르지 않다.

 

“국회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 처리 시한(12월 2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오면서 윤장현 광주시장, 이재영 전남지사 권한대행, 시·도 주요 간부, 시장·군수 등이 국회에서 상주하며 예산의 추가 및 신규 반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기사 바로가기)

 

예산을 모르고 정치를 모르는 탓인지, 둘 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이고 결정이다. 외상센터 예산 중 ‘다 쓰지 못한’ 것이 100억 원이란 소리는 무엇이며, 행정부가 낸 예산안보다 212억 원이나 많은 예산을 이렇게 뚝딱 결정해도 되나? 광주에서 일하는 시장, 군수가 국회에서 상주하면서 누구를 만나고 무슨 일을 하나? 그렇게 하면 예산이 늘어나나? 무슨 예산이?

 

사례들은 정부예산 편성의 ‘현실정치’를 상징한다. 이 ‘현실’은 형식으로는 ‘전근대’이고 내용으로는 다양한 ‘클리엔텔리즘(clientelism)’이다. 지난주 어린이 환자운동을 하시는 분이 페이스북에 쓴 글도 결국 비슷한 이야기 아닌가 싶다.

 

심장병에 희귀병 가진 어린이가 그 군인처럼 휴전선을 넘어왔으면, 지금 어린이병원 논의를 하지 않겠느냐고. 예산이든 인력이든, 노이즈 마케팅이나 스캔들이 없고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 어떤 상황이 답답해서 그랬을 것이다. 어디 예산만 그런가, 모든 정책이 비슷하다는 사정은 답답함을 넘어 서글프다.

 

예산 철이라 하니, 다른 정책결정의 어지러움은 좀 미뤄두자. 민주주의와 현실 정치를 가장 크게 회의하는 때가 바로 요즘처럼 예산을 정하는 시기다. 지금은 결과를 보는 때지만, 사실은 누가 처음 안을 만드는지부터 최종 결정까지 다 문제다. 누가 참여하고 누가 의견을 내는지, 그 결정에 주권자와 납세자는 얼마나 참여하는지? 그들이 누구인지는 알 듯 말 듯 하지만, ‘그들’만의 잔치인 것은 틀림없다.

 

국회가 자주 나오지만 그 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따지고 보면 정말 중요한 때는 이미 지났다. 중요한 시작과 결정은 가을도 되기 전에 다 끝난다. 행정부, 그것도 예산부처가 다 정하고 연말에 국회에 올 때쯤은, 집으로 치면 벽지나 창문 유리 정도만 남는다. 국회의원들 몫은 남지만, 전체 예산으로 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서리풀 논평>은 이미 4년 전에 국가예산을 다루는 과정이 난맥에 가깝다고 비판하고, 예산에 작동하는 한 가지 특성을 ‘전문성 정치’라 표현했다(논평 바로가기). ‘예산’과 ‘국가재정’은 지표와 수치, 공식으로 표현되어 이해하기 어려운 일방적 결론으로 끝난다. 전문성의 명분 뒤에 숨어 예산은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 되고, 이는 다시 예산을 둘러싼 대중의 이해와 담론을 지배한다.

 

“이러니 보통 사람들이 평가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예를 들어 ‘재정 건전성’은 흔히 절대적 가치로 바뀌고, 우리는 자세한 내용도 모른 채 그 틀을 받아들여야 한다. 복지 재정 확대는 나라 말아먹을 소리가 되기 십상이다.”

 

공식적으로는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 제동장치가 있다. 국회는 물론이고 행정부 내에서도 층층으로 감시와 감사가 이루어진다. 공무원과 공기관 직원들이 오죽하면 ‘감사’ 때문에 일을 못 하겠다고 할까. 그 감사 대부분은 ‘회계’를 살피는 것, 때로 실무자가 돈을 물어내야 할 때도 있다.

 

냉소적으로 말하면, 그래봐야 다 소용없다. 그 촘촘한 감사는 좀처럼 실무자 수준을 넘지 못하고, 막상 중요한 결정은 ‘정치’와 ‘통치’ 때로는 ‘국가안보’라는 미명으로 깊이 숨는다. 요즘도 매일 새로 드러나는 권력기관의 ‘특별활동비’를 보라. 예산 당국과 국회의 서슬 퍼런 감시를 무사통과(!)한 것이다.

 

‘우리’ 시민도 예산이 아쉽다. 공공 보건의료 시설을 새로 지어야 하고 빈곤층 지원도 대폭 늘려야 한다. 예산이 좀 여유가 있으면, 제2의 메르스를 막을 공중보건 인력도 많이 늘리면 좋겠다. 그뿐인가, 이것저것 수많은 ‘민원’ 사항에 예산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미 늦었지만) 어디다 말할 데도 없는 것이다. ‘친한’ 국회의원도 예산담당 공무원도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혈연은 고사하고 알량한 학연과 지연도 찾기 어려우면? 힘든 사정에 피켓을 들거나 농성을 해도 아무 효과가 없다. 신문에 기사 한 줄 텔레비전에 뉴스 한 마디가 안 나오는데, ‘활약’은커녕 말썽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 예산에서 배제되지 않으려 어떻게든 ‘각축장’에 참여하려 애쓰는 것은 차마 할 일이 아니다. 아니, 처음부터 가망이 없는 게임이다. 권력관계가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인데, 그 안에서 승패를 가려봐야 역전은 불가능하다.

 

게임의 규칙을 바꿔야 한다. 우리는 2013년 <논평>을 통해 예산의 ‘정치화’와 ‘민주화’를 주장했다. 구체적 방법으로는 (1) 국회와 각급 지방의회를 압박하는 것, (2) 시민이 주도하는 예산감시 활동, (3) 주민참여예산제 활용을 제안했다.

 

큰 문제의식과 제안을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여전히 험한 길을 멀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으면 지루하고 힘든 단계를 거쳐야 다음 단계에 이른다. 다시 더 깊고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아도 내년은 지방정부와 의회를 다시 구성하는 선거가 있다. 헌법 개정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모든 정책과 사업의 기초 자원, 바로 예산과 그 결정과정을 정치의 한복판으로 밀어 올릴 기회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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