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무사히 치렀다고 안심할 일 아니다
[서리풀 연구통] 아동의 삶에 새겨진 지진의 상흔
올해도 어김없이 11월 15일 ‘수능 한파’가 예고돼 있었다. 그런데 이날 저녁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졌다. 오후 늦게 포항에 일어난 지진 탓에 수능이 일주일 연기된 것이다. 그야말로 초유의 수능 연기 ‘사태’였다. 급작스런 결정에 모두들 놀랐지만, 지진이라는 재난 상황에 처한 포항 지역 수험생들을 생각하면서 많은 이들이 정부의 결정에 박수를 보냈다. 다행히 큰 탈 없이 수능이 끝났다. 학생들이 무사히 수능을 끝냈으니 이제 걱정은 다 내려놓아도 되는 것일까?
지난 주 ‘서리풀 연구통'(☞바로 가기 : 재난 이후 ‘연대’가 노인 인지기능 저하 막는다)은 재난 발생 시 노인 돌봄과 관련한 사회적 연대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늘 소개할 논문은 지진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미치는 장기적 건강영향을 다루고 있다.
올해 초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발표된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 대학교 리버 교수의 논문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어린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했다(☞바로 가기). 저자는 후쿠시마 지역을 중심으로 지진 피해가 있었던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의 초등학생, 중학생 약 1004명을 세 집단으로 구분하여 정신건강 상태를 비교했다.
첫째 집단은 지진 때문에 후쿠시마 해안가에서 고리야마 지역으로 옮겨간 어린이들로, 이 지역은 지진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후쿠시마보다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던 곳이다. 둘째, 원래부터 고리야마 지역에서 살았던 어린이들, 셋째, 지진 피해가 거의 없었던 먼 지역에 살고 있는 어린이 집단이다. 이들의 부모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어린이가 겪고 있는 정신적 어려움(행동 문제, 주의력 결핍, 정서적 증상, 또래 문제, 친사회적 행동)을 평가하고, 지진/쓰나미/방사능 유출과 관련한 부모의 트라우마 경험, 어린이들이 이를 목격했는지 여부 등을 측정했다.
분석 결과, 후쿠시마 해안가에서 고리야마 지역으로 옮겨간 어린이들의 정신적 어려움 정도가 가장 컸고, 정신 건강 수준이 비정상 범주에 속하는 경우도 제일 많았다(20%). 이들 아동의 부모 역시 트라우마 경험율이 높았다. 그에 비해 원래 고리야마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었거나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던 어린이들 중 정신 건강이 비정상 범주에 속하는 경우는 각각 14%와 7%였고, 부모의 트라우마 경험율도 낮았다. 특히 부모의 트라우마는 아동의 정신건강과 유의한 상관성을 보였고, 이는 어린이 정신건강에 대한 재난의 부정적 효과가 부모의 상태를 통해 간접적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짐작케 했다.
동일본 대지진은 손상과 질병이라는 직접적 피해뿐 아니라 어린이들에게 사회적 차별과 낙인, 트라우마 같은 2차 피해를 가져왔다. 어린이들은 지진 때문에 가족과 헤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되었으며, ‘방사능 누출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따돌림을 겪기도 했다(☞바로 가기).
포항 지역 청소년들이 무사히 수능을 잘 치러낸 것이 다행이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 결코 안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작년과 올해 잇따른 자연재해를 경험한 지역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심리적, 정신적 건강에 문제는 없는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어린이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 서지정보
Lieber, M. (2017). “Assessing the Mental Health Impact of the 2011 Great Japan Earthquake, Tsunami, and Radiation Disaster on Elementary and Middle School Children in the Fukushima Prefecture of Japan.” PLOS ONE 12(1): e017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