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새해, 공부와 실천을 결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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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적인 새해 인사는 생략한다. 새로운 희망이 넘치는 것도 아니니, 새 정부 출범을 기대하던 작년 이맘때보다 오히려 못하다. 일상은 여전하고, 어려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며, 갑자기 들이닥친 유토피아 같은 것도 없다.

 

새로움이 없다 해서 사태를 영 비관하는 것도 아니다. 힘들고 어려운 것, 잘 풀리지 않는 것, 해답을 찾기 어려운 것들은,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마치 ‘디폴트’ 같은 것이다. 단 한 번도 그냥 쉬운 것은 없었으며, 괜한 기대를 하고 괜히 좌절하는 쪽이야말로 우리 자신이었다.

 

스스로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고 지금을 특별한 때로 오해하지만 않으면, 새해는 낙관이나 비관해야 할 때가 아니라 다시 살피고 갱신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새롭지 않지만 다만 새로워지는 때, 희망을 결의하고 새로운 출발을 각오해야 하는 때라 하겠다.

 

조건과 맥락조차 무시할 수는 없으니 판단은 필요하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2018년 또한 삶은 녹록하지 않을 것이다. 먼저, 경제는 쉽게 좋아지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적어도 발전국가 시기의 눈으로 본 경제는 여전히 ‘위기’를 벗어나지 못한다.

 

 

무엇이 위기인가? 위기는 어떻게 정의하고 해석하는지에 따라 대응이 달라지는, 지극히 정치적이고 사회적이며 문화적인 것이다. ‘정통’ 또는 ‘주류’ 위기 담론으로 치면, 1997~8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낙관할 때가 한 번도 없었다. ‘위기론’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통치술의 하나가 되었을 정도다(구글과 아마존, 삼성에 이르는 대기업도 늘 ‘위기’를 먹고 산다!).

 

그 때문인가, 2018년 세계 경제의 전망은 비교적 괜찮다는데 한국 경제는 협박에 가까울 정도로 비관 일색이다. 위기론을 중심으로 경제계와 정치 권력, 언론, 지식 권력이 똘똘 뭉친 느낌이라고 할까(기사 바로가기1, 바로가기2). 심지어 곧 닥칠 위기에 잘 대비하지 못할 것 같아 진짜 위기라는, 신종 장기 위기론도 있다(기사 바로가기). 정치가 위기의 근원이라는 분석도 판에 박은 듯 똑 같다.

 

우리가 생각하는 위기는 좀 다르다. 2018년, 총량 지표로서 경제성장률이나 수출은 좀 나아질지 모르지만, 특히 보통 사람들의 일자리와 소득, 가계는 크게 좋아질 것 같지 않다. 1:99라 표현하든 1:9라 표현하든, 9와 99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삶은 점점 더 어렵다. 올해뿐 아니라 늘 그랬으니, 사실은 만성적 위기다.

 

더불어, 경제와 위기론을 대하는 정부의 관점과 방법이 새로운 위기다. 정권 교체를 계기로 그나마 기획자 노릇을 하며 ‘소득주도 성장’을 주창하던 새 정부는 어느새 ‘혁신성장’으로 돌아선 듯하다(기사 바로가기). 두 방향이 서로 보완적이거나 동전의 양면이라는 소리는 그야말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벌써 권력 투쟁에서 밀린 결과인가, 아주 약간 떨리던 경제의 나침반은 다시 성장이라는 ‘정북(正北)’을 가리키며 원상을 회복했다. 장담하지만, 2018년 경제 정책 또한 1970년대 이후의 패러다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채 후퇴할 공산이 크다.

 

서비스 산업이나 규제 완화가 다시 등장하는, 제주도 영리병원은 달라진 것이 없는, 보수 또는 수구의 원인을 따질 생각은 없다. 문제는 새 정부가 내세우던 새 정책들이 주저앉을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사실이다. 최저임금과 비정규직 전환은 물론이고 재벌 개혁과 조세, 사회정책에 이르기까지 보수화할 공산이 크다. 재정 문제에 걸리면 문재인 케어와 치매 국가책임제도 허울만 남지 않을까?

 

우리는 이 사태가 정말 위기라고 생각한다. 유례없이 심한 불평등이 돌이킬 수 없는 구조로 굳어지는 때에 약간의 새로운 시도도 좌절하는 것. 헤게모니를 쥔 기존 정치+경제 권력이 총공세를 펴고 작은 개혁조차 뒤로 밀리는 사태가 위기다.

 

주로 경제를 말했지만, 남북관계, 정치 개혁, 권력 기구 개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미 충분히 보지 않았는가. 무엇 한 가지 쉬운 것이 없다. 국제 정세가 발목을 잡는가 하면, 국내에서는 수없이 많은 당사자가 자신의 이해관계를 지키려고 온 힘을 다한다. 2018년도 뼈대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자주 분명하게 눈에 띄는 곳은 국회지만, 우리 사회의 권력관계와 권력화한 욕망을 대변하는 곳이 어디 그뿐이랴. 경제, 언론, 지식, 문화 등 모든 곳의 지형은 좀 더 나은 사회, 즉 평화, 사회정의, 형평의 원리가 관철되는 공동체로 밀고 가기에는 역부족이다.

 

이것이 새해 다시 출발하는 데서 확인하는 현재의 ‘재고’ 상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작년과 비교하여 달라진 것은 대통령과 정권, 단 한 가지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강변할 수는 없지만, 근본과 구조를 흔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시각화하면 열위의 이미지 때문에도 ‘밑으로부터’라는 표현은 쓰지 않으려 한다. 그보다는 튼튼한 바탕과 디딤돌이라 하는 편이 낫다. ‘기초’라는 말도 나쁘지 않다.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겠으나, 2018년 닥칠(또는 이미 닥친) 위기를 돌파할 유력한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바닥을 다지는 일이다.

 

1월 1일 아침에 <서리풀 논평>을 성원하는 독자들에게 새해 복 받으시라는 소리 대신, 바탕을 튼튼히 하는 일을 희망으로 삼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그러고 보니 2017년 새해를 시작할 때 다짐한 바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논평 바로가기, 프레시안 바로가기, 라포르시안 바로가기).

 

“새로운 모임이 더 많이 만들어지고, 있던 조직은 더 커지기를 바란다. 꼭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른바 ‘약한 결속’이 너른 기반을 가지면 때로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중략)…정치적 관심을 시작하고 지속하는 것, 삶과 생활에 기초하여 새로움을 말하고 요구하는 것, 그리고 통로와 매개를 만들고 조직하는 것, 이 모두는 멀리 보고 이 시대에 녹아들어야 할 일이다.”

 

실천을 뒷받침하는 공부 또한 거창하거나 대단한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큰 이론이나 분석을 외우고 동원하는 것뿐 아니라 새로 익히고 깊게 생각하는 것, 그리고 의논하는 것이 모두 공부가 아닌가. 가정, 직장, 학교, 지역사회 어느 곳이든, 좋은 공부와 실천이 불길처럼 일어나는 한 해가 되면 좋겠다.

 

공부와 일거리는 차고 넘친다. 청년 실업과 빈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바람직한 문재인 케어, 개헌, 노인 빈곤을 어떻게 할 것인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성차별적 임금 격차,…나와는 상관없는 주제가 아니라, 조금만 들어가면 바로 (사회학자 기든스가 말하는 의미에서) ‘생활 정치’의 공간, 재료, 목표다.

 

마침 중간 점검의 계기도 있다. 6월의 지방선거는 각자의 삶터에서 공부하고 실천하는 것을 실험하고 시험할 중요한 기회다. 같이 치르기로 되어 있는 개헌도 기회이긴 마찬가지다. 평범한 사람들이 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어떠해야 하는지, 공부와 실천의 주제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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