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연구통通] ‘혼밥’은 공중보건의 문제다
식사는 ‘열량 보충’만이 아니다
류한소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영펠로우
몇 달 전, 법무부 장관이 익명의 제보를 받았다고 밝히면서 ‘밥 총무’의 역할이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다. 검찰의 ‘밥 총무’란 식사 시간이 되면 부서 내 부장검사나 선배 검사들의 참석 여부를 확인한 뒤 메뉴를 정해 식당을 예약하고 식사를 마치면 공금이나 갹출로 계산까지 담당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막내 검사가 맡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 어려움을 법무부 장관에게 호소한 것이다. 기사가 나온 뒤 ‘아니, 그게 왜 갑질이야? 같이 밥을 먹는 게 어때서?’라고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화를 나누며 오순도순 함께 밥을 먹는 모습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화목한 일상’ ‘돈독한 우정’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함께 혹은 혼자 식사하는지 여부는 단순히 라이프스타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국제학술지 <식욕(Appetite)>에 실린 다케다 교수 연구팀의 논문은 혼자 식사하는 것이 공중보건 이슈라고 지적한다(☞논문 바로 가기: Spatial, temporal, and health associations of eating alone: A cross-cultural analysis of young adults in urban Australia and Japan).
최근 식사 행위를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분석한 연구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대개 ‘함께 먹는 것’의 사회적 가치에 주목해왔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보자면,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보다는 혼자 식사하는 사람, 소위 ‘혼밥’ 족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동거 가구원이 적거나 혼자 사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으며, 가족이나 친구, 동료 사이에도 각자 유동적인 근무 스케줄 때문에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지고 있다.
그동안 보건 분야에서는 ‘혼밥’을 특정한 연령과 성별의 문제로 여겨왔다. 주로 노인과 어린이에 초점을 둔 연구들은 사회적 고립 등 혼자 식사하는 행위의 부정적 영향을 보고하고는 했다. 이들 집단의 공통점은 그들이 혼자 식사하는가의 여부가 그들을 누가 돌보는가에 달려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혼자 식사하는 남성 노인들과 그들의 부족한 영양 섭취는 한평생 그를 ‘먹여 살린’ 여성 가족의 부재와 관련 깊다. 다케다 교수 연구팀은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노인과 어린이에 비해 가족 돌봄의 영향이 덜하고, 생활방식 선택에서 사회적·문화적 영향에 민감한 청년층을 대상으로 ‘혼밥’과 관련한 의미를 조사했다. 연구팀은 2012~2013년 동안 호주와 일본에 거주하는 다양한 직업, 고용관계, 교육수준, 결혼상태, 생활수준, 가구 형태를 가진 20~40세 남녀 60명을 만나 자유 기술 질문과 심층 면접을 통해 혼자 또는 함께 식사하는 행위, 식습관, 라이프스타일 등을 파악했다.
심층면담의 내용들을 코딩한 결과 가장 많이 나온 항목은 ‘빠른’,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 ‘TV’, ‘외로움’, ‘휴식’, ‘독서’ 등이었다. ‘건강’, ‘외로움’, ‘독서’, ‘침묵’, ‘속 편한’, ‘지루한’ 등의 단어 빈도는 호주와 일본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혼자 식사하는 것을 사회적 행위와 연결시켰고, 긍정적이면서도 동시에 부정적 행위로 인식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혼자 먹으니 스트레스가 덜해서 좋지만, 또 혼자 먹으니 외로운 것이다. 또한 국가와 성별에 따라 ‘혼밥’의 맥락은 상당히 달랐다.
우선 혼자 식사하는 행위와 공간의 관련성을 살펴보자.
호주 청년들은 ‘혼밥’을 주로 혼자 집에서 요리를 해 먹는 행위와 연관 지었다. 특히 남성은 여성에 비해 가정에서 스스로를 위한 요리를 하는 것에 더 긍정적인 이미지를 부여하고 있었다. 그들은 혼자 식사하는 것이 다른 이들의 방해 없이 자신들이 먹고 싶거나 자신에게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음식을 만드는 기회로 여겼다. 호주 청년 남성들의 이러한 시각은, 그동안 주로 여성 대상이었던 요리 지식과 기술에 대한 학교 교육, 건강증진 캠페인이 남성에게로 확산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요리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중요한 생활 기술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반면 일본 청년들은 ‘혼밥’에 대해 집에서 먹는 것과 외식, 둘 다를 떠올리는 편이었다. 여기에서도 남녀 간 인식 차이가 있었다. 남성은 ‘혼밥’을 일상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반면, 여성은 일상으로부터의 탈피로 여겼다. 연구팀은 혼자 외식하는 것에 대한 일본과 호주의 다른 반응이 패스트푸드 환경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일본인 참여자들은 혼자 외식하는 장소로 국수 노점, 소고기 덮밥 가게, 기차역 카페 등을 들었는데 이런 식당들은 대개 혼자 식사하는 이들을 위한 곳이다. 서구의 패스트푸드가 자동차 문화에서 유래했다면 일본 패스트푸드는 기차 문화에서 유래했다. 1872년 기차 운행이 시작된 이래, 철도와 역 주변 패스트푸드 식당의 문화적 의미는 성별화되었으며 이는 전후(戰後) 일본의 남성 중심 직장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맥도날드나 카페 같은 “서구 스타일” 패스트푸드의 등장은 여성, 청년, 노인들에게 일종의 대안적 공간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1인 가구의 급속한 증가와 전업 여성 노동자의 증가는 일본 식품업계로 하여금 혼자 식사하는 이들에게 여러 선택지를 제공케 하는 결과를 낳았다.
다른 한편, 혼자 식사하는 것과 관련된 것은 시간이다.
‘밥 때’와 일상의 스케줄은 ‘혼밥’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선행 연구들은 삼시 세끼 중 아침을 혼자 먹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보았지만, 이 논문에서 일본 청년 남성들은 ‘혼밥’을 주로 저녁과 관련지어 생각했다. 연구팀은 이를 청년들이 가진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석했다. 가족이 함께 둘러 앉아 저녁을 먹는 따뜻한 이미지와 그들의 현재 가족생활, 아동기에 경험한 가족의 식사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일본의 전후 경제 성장은 도시 중산층의 급속한 성장을 가져왔다. 이는 남성 생계부양자와 여성 전업 주부라는 성별분리에 기초하고 있었었으며, 장시간 노동 문화는 남성 생계부양자들이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들에게 가족 식사란 전업주부 여성과 아동이 함께 저녁을 먹으면 남성 생계부양자가 늦은 밤에 돌아와 혼자 식사를 하는 모습이었다. 1990년대 버블 경제의 붕괴와 노동 시장의 유연화는 계약직 또는 교대근무직을 증가시켰는데 이러한 고용형태는 특히 청년 세대에서 두드러졌다. 이는 자연스레 청년들의 식습관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호주에서도 1980년대에 노동 시장의 탈규제화, 노동의 “유연화”가 시작되었지만, 가족들이 함께 식사할 기회가 늘어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각기 다른 “유연한” 근무 스케줄 때문에 가족들이 함께 식사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 연구에 참여한 일부 청년들은 ‘유연한’ 일자리에 종사하지만 ‘경직적’ 고용 상태에 있는 사람들만큼 오랜 시간을 일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모습으로 대표되는 서구 중산층 라이프스타일은 19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매스미디어와 학교 교육을 통해 증진되고 있다. 심지어 오늘날에는 가족과 함께 하는 식사가 국가 공중보건 의제가 되었다. 일본에서는 2011년부터 건강증진을 위한 음식과 영양교육 캠페인을 하면서 가족 동반 식사를 홍보했다. 그 캠페인에서 가족 식사의 이미지는 전후 핵가족과 전형적 성역할에 기대고 있을 뿐 아니라 비만과 만성질환 같은 건강 문제에 대한 만병통치약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사람들이 개인적 통제를 발휘할 수 없는 동반 식사의 경우,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만은 아니다. 왜 검찰의 ‘밥 총무’가 법무부 장관에게 제보까지 하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오히려 이 연구에 참여한 청년들은 몸에 별로 좋지 않지만 사람들과 함께 먹어야 하는 ‘사회적 식사’와 혼자 먹는 ‘건강한 식사’를 구분했다. 이러한 구분은 일본보다 호주 청년들에서 더 두드러졌다. 연구팀은 음식과 영양 섭취의 자기 규제에 집중하는 호주의 국민영양 정책을 반영하는 결과라고 해석했다. 호주가 건강한 식사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둔다면, 일본의 국민영양 정책은 그것을 가구에 둔다. 많은 수의 가구에서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지 못하고, 또 1인 가구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데도 말이다.
연구팀은 혼자 식사하는 사람이 건강한 음식을 섭취하든 그렇지 않든, 현재의 건강한 식습관에 대한 생의학적 개념화는 두 나라 모두에서 동반 식사보다는 혼자 먹는 사람들에 더 적합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공중보건 영양 프로그램들이 사회적이면서도 건강한 음식 섭취를 포괄할 수 있는 틀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억지로 여럿이 먹는 것도 괴롭지만, 혼자 먹는 것이 함께 먹는 것보다 건강할 수 있다는 연구팀의 주장이 한국사회에서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는 어렵다. 인스타그램 속 ‘#혼밥’은 결코 “혼자 밥을 먹는 것”의 동의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 속 ‘혼밥’이 다른 사람들의 압력에서 벗어나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라이프스타일이라면 ‘흙밥'(☞관련 기사 : 굶고 때우고 견디는 청년 ‘흙밥’ 보고서)으로 끼니를 때우는 빈곤 노인이나 흙수저 청년들, 어린이들의 먹는 행위는 절박한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우리가 밥을 먹는 행위가 단지 열량을 보충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 누구에게나 사회적이면서도 건강한 식사를 할 권리가 있다는 점이다. 새해에는 모든 이들이 함께 밥을 먹든 혼자 밥을 먹든, 건강한 밥을 마음 편히 먹을 일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금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