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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움’은 병원에만? 당신 옆자리도 활활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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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움’은 병원에만? 당신 옆자리도 활활 타고 있다

[서리풀 연구통通] 죽음 부르는 ‘일터 괴롭힘’

 

이오 (시민건강증진연구소 회원)

 

지난 연말, 간호사들이 강요에 의해 집단적으로 선정적 장기자랑을 해야 했던 일이 세간에 알려졌다. 그 후 간호사들이 경험하는 인권 침해, 부당노동행위 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병원장이 사과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설 연휴를 앞두고 서울 대형 종합병원의 신입간호사가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소위 ‘태움’이라는 간호사 조직의 고유한 문화 때문인지, 개인의 성향 때문인지, 혹은 다른 구조적 요인이 있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관련 기사 : 서울 대형병원 간호사 숨진 채 발견…남자친구 “‘태움’ 있었다”·병원 “없었다” , “병원 관둔다던 애가 왜 죽었나” 아산병원 간호사 유족 분노), 자세한 경위는 현재 조사 중이라고 한다.

 

‘태움’ 문화가 간호사들 사이에 만연해 있다고는 하지만, 일터 괴롭힘 자체는 결코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2월 13일 국회에서 열린 국가인권위원회의 ‘직장 내 괴롭힘 실태 파악 및 개선방안 모색 토론회’는 일터 괴롭힘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흔한’ 문제인지 보여준다. 이는 2017년 8~9월 동안 1년 이상의 직장 경험이 있는 만 20~64세 성인 임금근로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 포함)를 대상으로 일터 괴롭힘 피해와 대응 경험, 일터 괴롭힘에 대한 인식과 직장의 태도 등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조사 응답자 1506명 중 46.5%가 월 1회 이상 일터 괴롭힘으로 인한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응답자의 39.0%는 개인적 괴롭힘을, 5.6%는 집단적 괴롭힘 피해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괴롭힘 피해가 알려지고 나서도, 일터 내의 상담자나 고충처리절차 관련자, 피해자의 직속상관 중 40.3%가 이를 은폐하거나 오히려 가해자를 보호하려고 했다고 점이다. 괴롭힘 피해자의 60.3%는 특별한 대처를 하지 않았는데, 대처해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것 같아서(43.8%), 또는 대처했다가 직장 내 관계가 어려워질 것 같아서(29.3%)라는 응답이 가장 흔했다. 집단적 괴롭힘 피해자의 87.1%, 개인적 괴롭힘 피해자 중 77.5%는 괴롭힘 때문에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부정적 영향이 있었다고 응답했다. 특히 거의 매일 피해를 경험한다는 이들의 경우, 최근 1년 동안 자살을 생각하거나 시도했다는 응답이 각각 33.3%, 10.6%나 되었다. (☞관련 자료 : 인권위․국회, 직장 내 괴롭힘 개선방안 토론회 13일 개최)

 

이렇게 만연해 있고, 또 심각한 피해를 야기하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도대체 어떤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최근 <한국심리학회지>에 발표된 최소영 등의 논문은 남녀 사무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개인적 요인과 조직 분위기가 직장 내 괴롭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고 있다(☞관련 자료 바로 가기).

 

직장 내 괴롭힘, 즉 일터 괴롭힘은 ‘개인을 괴롭히고 공격하고 사회적으로 배제시키고, 개인의 업무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행동이 반복적이고 주기적이고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관련 자료 바로 가기), 이 논문에서는 이를 ‘힘의 불균형 관계에서 점차 악화되는 과정’으로 설명했다.

연구진은 서울과 경기 지역에 소재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사무직 종사자 23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을 통해 일터 괴롭힘 피해의 심각성, 개인의 분노 특성과 사회적 회피 특성, 조직의 의사소통 분위기와 긍정적 조직 사회 분위기를 조사했다. 일터 괴롭힘 경험은 성별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선행연구들을 고려하여 남성과 여성을 분리하여 자료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남성의 16.5%와 여성의 13.0%가 거의 매일 한 가지 이상의 일터 괴롭힘 피해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 1회 이상 일터 괴롭힘 피해를 경험했다는 이들은 남성 응답자의 60%, 여성응답자의 46.6%나 되었다.

남성의 경우, 개인의 분노 성향이 클수록, 직장 분위기가 나쁠수록 일터 괴롭힘 피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과 조직 요인을 함께 살펴보았을 때, 사회적 회피 성향이 강한 남성들은 일터의 의사소통 분위기가 좋은 경우에 오히려 일터 괴롭힘 피해가 컸고, 분노 성향이 큰 남성들은 일터의 사회적 분위기가 나쁠 때 일터 괴롭힘 피해가 컸다.

여성의 경우, 분노 성향이 강할수록, 조직의 의사소통 분위기가 나쁠수록, 조직의 사회적 분위기가 나쁠수록 일터 괴롭힘의 피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남녀를 불문하고, 사회적 회피 성향은 일터 괴롭힘 피해에 직접적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정리해보면, 남성은 개인적 성향 요인과 조직적 요인이 상호작용하여 일터 괴롭힘 피해에 영향을 미쳤지만, 여성은 이 두 가지가 각각 일터 괴롭힘 피해에 영향을 미쳤으며, 둘 중 조직적 요인의 영향력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에 기초하여 성별에 따른 개입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성의 경우에는 개인적 요인과 조직적 요인의 상호 연관성에 초점을 두고, 여성의 경우에는 개인적 특성보다 조직적 요인에 더 중점을 둔 중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때 개인적 중재에는 분노 성향을 감소시키기 위한 이완 기법, 분노를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자기주장훈련 등의 포함된다. 조직적 중재로는 수평적, 수직적 의사소통이 모두 원활할 수 있도록 개방적인 조직 분위기를 구축하는 것과 직장 내 파벌을 줄이고 경쟁을 줄이는 환경을 만들어 긍정적인 조직 분위기를 구축하는 전략을 강조했다.

 

일터 괴롭힘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관심을 얻고 있다. 일종의 위기이자 기회인 셈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를 보면, 일터 괴롭힘은 몇몇 이상한 개인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일탈적 행위가 아니라, 개인의 성향은 물론 조직의 문화, 구조, 특히 열악한 노동 조건 문제가 뒤얽혀 나타나는 사회적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진단이 이러하다면, 그 해결 방법 또한 그에 걸맞아야 한다. 일터 괴롭힘 문제에서 가해자 색출과 처벌에만 관심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그러한 행동을 가능하게 한 구조적, 제도적 요인에 개입하여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는 것이 필요하다.

 

* 서지정보

최소영, 전희선, 이승연. (2017). 남녀 사무직 직장인의 특성분노, 사회적 회피, 직장 내 괴롭힘 피해 간 관계. 한국심리학회지: 문화 및 사회문제, 23(1), 53-74. (바로가기)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금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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