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범죄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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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 안전이 다시 큰 관심사가 되고 있다. 최근 일어난 제주와 통영의 살인 사건 때문이다. 피해자가 어떤 사람인지,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많은 사람이 걱정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이제 막 휴가철이 시작되었으니 안전을 위협할 환경은 더 많아졌다. 낯선 곳, 일상이 아닌 삶은 불안을 부른다.   
 
그러나 이번 사건 역시 관심이 오래 갈 것 같지는 않다. 처음 일어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끔찍한 사건도 꽤 있었지만, 관심과 대책은 그 때뿐이었다. 
 
물론, 대책은 여러 모양으로 조금씩 진화했겠지만 효과는 잘 모르겠다. 2011년판 범죄백서를 근거로 판단한 것이 그렇다. 
 
2001년에서 2010년 사이 인구 10만명당 강력범죄 발생건수가 31.4에서 54.4로 계속 늘어났다. 특히 강간사건은 거의 두 배로 급증했다.      
인구가 늘었고, 범죄통계가 신고율에 따라 달라진다? 그걸 고려해도 마찬가지다. 여러 차례 다짐한 것 같지만 범죄예방에 성공했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  
 
범죄를 예방하고 사람들의 안전을 보호하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사회적 목표이다. 그러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고서는 이런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매번 그렇지만, 또 다시 냄비 끓듯 여론 몰이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시작한 동기는 달랐지만 대대적으로 ‘주폭’ 단속을 한다는 것 역시 잘 따져보고 반성으로 삼을 일이다.    
 
(여러 번 보아온 대로) 이미 온갖 처방이 난무하는데 ‘범죄학’에 해당하는 또 다른 훈수를 보태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범죄와 안전을 시민의 일반적인 관심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범죄와 건강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범죄가 공중보건 문제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서 출발하자. 곧바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범죄가 건강을 해치는 중요한 원인이라는 사실이다. 
 
극단적인 결과인 사망과 손상은 다시 말할 것도 없다. 경찰청 통계로는 2010년에만 1,251명이 살인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 폭력 발생은 30만 건에 가깝다. 죽고 다치는 것이 이 정도면 중요한 ‘건강’ 문제가 아니고 무엇이랴.  
 
이런 종류의 건강 손상은 일시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폭력과 강간 피해자의 당사자 또는 가까운 사람들이 어떤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가를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평생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아울러 간접적인 건강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범죄 발생은 사회적으로 스트레스와 불안, 행동변화를 유발하고 이는 건강을 해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2007년 영국의 스태포드 박사 연구팀이 미국공중보건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이 이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연구에서는 범죄사건을 많이 걱정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우울증을 나타낼 가능성이 1.93배에 이르렀다. 
 
건강효과는 정신 영역을 넘어서도 나타난다. 이 연구에서는 범죄 피해를 많이 걱정하는 사람들이 운동을 덜 하고, 친구를 덜 만나며, 사회활동에도 덜 참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체건강과 ‘사회적 건강’도 함께 나빠지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까지 범죄가 건강에 직접, 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했지만, 이와는 반대 방향의 인과관계도 중요하다. 건강이 범죄 발생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을 말한다. 정신질환이나 약물 중독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의학적으로는 약물 중독도 정신질환에 속한다지만 여기서는 구분하자).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이 범죄율이 높은가 아닌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한국에서도 꽤 오래 전에 이 문제를 두고 논란이 있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에 비해 알콜 중독이 범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2009년 경찰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는 5대 강력 범죄의 28.8%가 술에 취한 사람이 저지른 것으로 되어 있다. 미국의 한 민간기관이 그 동안의 연구를 정리한 결과에서도 폭력과 연관된 범죄의 40%는 알콜이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범죄의 원인이 되는 양상에서는 조금 다르지만,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은 정신질환이든 알콜 중독이든 마찬가지다. 이들 질병은 범죄의 원인이 될 수 있지만, 또한 치료를 하거나 관리할 수 있는 원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경우 건강정책이 범죄예방 대책과 다르지 않다. 정신질환자나 알콜 중독자가 건강을 회복하고 적절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곧 범죄를 줄일 수 있을 방법이 된다. 
 
건강과 범죄의 세 번째 연관관계는 이 둘이 부분적으로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란 점이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가난이 이 두 가지 문제의 공통 원인으로 작용한다.   
 
2011년 범죄백서에는 소년 범죄자의 생활정도별 분포가 나와 있다. 2006-2010년 사이에 소년 범죄자의 생활수준은 ‘하류’가 전체의 60.5-62.4%를 차지한다. 짐작대로(!) ‘상류’는 0.5%에도 미치지 않는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말한 것이므로, 가난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새삼 되풀이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결국 범죄예방과 건강정책은 ‘탈빈곤’이라는 한 가지 과제이자 정책에서 만난다. 
 
마지막으로, 건강과 범죄라는 두 가지 문제 모두 ‘인구집단’ 전략이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전략이란 역학자 제프리 로즈가 ‘예방의학의 전략’(한울, 2010년)에서 말한 ‘일탈’보다 ‘평균’을 이동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고위험군은 ‘일탈’이라기보다 분리되지 않는 연속 분포의 한 끝 (출처: 예방의학의 전략)>
 
살인, 알콜 중독, 고혈압과 같은 현상은 전체 분포에서 극단값을 갖는, 말하자면 일종의 일탈 같은 것이다. 일탈은 ‘일반’ 또는 ‘정상’과 완전히 분리된 것이라기보다는 연속적인 분포의 한 쪽 끝을 차지한다. 생물학적 현상에도 사회적 현상에도 이러한 분포와 일탈의 관계는 비슷하다.  
 
이 분포는 전체 분포의 평균치가 바뀌는 것에 따라 이동한다. 예를 들어 전체 인구의 혈압 평균치가 낮아지면 분포가 이동하고, 전체적으로 고혈압에 해당하는 사람이 줄어든다. 
 
로즈는 고혈압인 사람을 골라서 해결하고자 하는 전략을 ‘고위험군’ 전략이라고 하고, 전체 집단의 평균혈압을 낮추려고 하는 전략을 ‘인구집단’ 전략이라고 불렀다. 그는 인구집단 전략이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고혈압이 대표적이다. 전체 인구의 평균 혈압이 3% 낮아지면 고혈압 때문에 생기는 문제의 25%를 줄일 수 있다. 로즈는 (단순화해서 말하면) 고혈압 환자(고위험군)를 찾아내서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평균 혈압(인구집단)을 낮추는 전략을 옹호한다. 
 
또 한 가지, 전체 분포를 그냥 두고 일탈을 줄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살인을 예로 들자면, 범죄를 저지를 고위험군을 격리하는 것으로는 새로운 고위험군을 막을 수 없다. 로즈의 표현으로는 다양성을 지향하는 힘이 원상을 회복시키기 때문이다. 
 
죽임, 지역사회 사고, 성폭행, 고혈압, 알콜 중독,…. 어느 것 가릴 필요 없이 사람들이 만드는 분포를 반영하는 일탈 현상이다. 여기는 인구집단 전략과 고위험군 전략을 모두 쓸 수 있다. 
 
우리 사회에는 고위험군 전략이 훨씬 더 익숙하다. ‘잠재적’ 범죄자를 특별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정밀한 건강검진을 통해 질병의 위험이 높은 사람을 찾아낸다는 것도 같다.    
 
인구집단 전략에 기초하면, 분포(그리고 평균치) 자체를 옮겨야 일탈이 줄어든다. 적용할 수 있는 예는 많다. 성의 상품화와 성차별이 줄어야 성과 관련된 범죄율이 낮아질 수 있다. 같은 이유로, 평균 음주량이 줄어야 알콜 중독도 적어질 것이다.      
        
이러한 인구집단 전략은 범죄 예방과 건강정책에 모두 적용된다. 목표는 서로 다르지만 사실상 같은 정책도 있을 수 있다. 건강의 시각으로 범죄를 다시 해석하고 재구성해야 할 또 다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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