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기고문

프레시안 서평: 캐런 메싱의 <보이지 않는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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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12일 프레시안 북세션에 실린 우리 연구소 상임연구원의 서평입니다.

링크: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88616

 


과학자는 왜 현장 노동자에게 공감하지 못하는가?

[프레시안 books] 캐런 메싱의 <보이지 않는 고통>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이주연 연구원

 

노동자 건강을 연구하는 학계에 갓 발을 들인 나는 지난 한 해 많은 동료 노동자들을 만났다. 조선 산업 불황의 한가운데에 있는 물량팀 노동자,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다 결핵에 감염된 미등록 신분의 이주노동자, 생계를 위해 불안정 노동을 전전하는 청년들을 만났다. 이들에게 작업 현장은 자아 실현의 장이기보다는 사고를 당하고 목숨을 잃는 위험한 공간이었다.

노동 현장에 찾아온 낯선 연구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들이 나에게 쉽지 않은 대화를 허락해준 것은 아마도 자신과 동료들의 상황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책임감을 무겁게 느꼈고 조금이라도 나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나보다 앞서 노동자의 건강과 권리를 위해 노력했던 선배 학자와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찾아다녔다.

그때 읽게 된 책이 캐나다 과학자 캐런 매싱의 <보이지 않는 고통>이다. 인간공학을 연구한 캐런 매싱은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일하는 서비스직 여성 저임금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한 평생 고군분투했다. 이 책은 만성적인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파리 기차역의 청소노동자, 감염 예방법에 대해 전혀 배우지 못하는 병원 청소노동자, 하루 종일 서서 일해야만 하는 백화점 계산원들이 일터에서 겪는 고통과 차별에 대해 이야기 한다.

30년 전 캐나다와 프랑스의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은 조금의 위화감도 없이 오늘날 우리 사회 노동자의 모습과 맞닿아 있었다.

캐런 메싱은 “가장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건강 상태를 개선하지 못하는 것은 고용주, 과학자, 정책 결정권자가 “노동자의 입장에서 역지사지 하려는 의지나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것이 그녀가 설명하는 ‘공감 격차(empathy gap)’이다. 특히 과학자들이 실제 현장에서 작업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모르기 때문에 열악한 노동 환경의 건강 영향을 부적절하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캐나다만큼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노동자 건강에 관한 국가적 자료가 구축되고 연구가 제도권에 자리잡아갈수록 역설적으로 ‘현장’의 필요성이 사라지고 있다. 공공기관들이 수집하는 대규모 2차 자료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연구자들이 현장에 직접 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을 반복적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현장을 꼼꼼하게 둘러보지 않더라도 논문을 쓰는데 아무런 기술적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노동자 건강’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사람에 대해 탐구하는 많은 학문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현장이 궁금하고 노동자들을 만나고 싶은 젊은 연구자의 경우, 그런 기회를 얻는 것이 더욱 어렵다. 이런 기회조차도 현장 활동가들과 네트워크가 있고 오랜 시간 연구를 해온 소수의 학자들에게만 제한되어 있다. 노동자 건강을 연구하기 위해 갓 학계에 발을 들인 연구자들에게는 현장의 노동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와 이를 장려하는 학계 분위기, 현장 네트워크를 쌓아가고 이들과 소통하는 역량을 기를 수 있는 시간, 그리고 선배 연구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현장 연구가 가능하다는 생각 그 자체–에 대한 심리적/물리적 간극을 스스로의 힘으로 좁히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캐런 메싱이 말한 ‘공감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현장과의 접점을 확대시키는 기회가 더욱 풍부해지고 또 제도화되어야 한다.

선배 연구자인 캐런 메싱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더불어 ‘공감 격차’라는 진단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개별 연구자들이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해 ‘공감’만 한다면 상황이 나아질 수 있을까?

캐런 메싱은 취약 계층을 둘러싼 많은 이슈들에 대해 ‘공감’을 문제의 원인이자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공감은 서로 다른 경험 세계를 가진 사람들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고, 중요한 가치를 위해 행동할 수 있게 한다. 우리는 돕고 싶은 대상이 생겼을 때 그의 고통을 더 잘 사유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공감은 대개 ‘특정 개인’의 고통에 집중하기 마련이고, 다수의 얼굴 없는 집단에 대해 공감을 이끌어내기란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특정 개인에 대한 공감의 열기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작년 여름 스마트폰 부품 제조업체에서 일하다 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을 잃은 여섯 명의 청년 노동자들의 사연에 많은 시민들이 공감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러나 이런 공감이 위험 작업에 종사하는 불안정 노동자 집단 전체에 대한 공감으로 발전하기는 쉽지 않았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캐런 메싱이 지적하듯, 사람들은 자신과 사회경제적 배경이 유사한 사람들에게 더 잘 공감하고, 배경이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는 놀랍도록 무심하다. 최근 5년 동안 이주노동자 511명이 산재로 사망하고, 그보다 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다치고 병에 들었지만, 외딴 농촌의 비닐하우스에서 착취, 차별당하는 ‘타자’에게 우리 사회는 ‘덜’ 공감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과학자, 시민, 정책 결정자의 ‘공감’을 강조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정의의 원칙에 기반한 도덕적 통찰력에 따라 옳고 그름에 관한 윤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들이 공감 받지 못해도 그들의 고통은 여전히 실재한다. 이점에서 우리는 공감 격차를 좁히는 노력뿐만 아니라 실재하는 고통을 고통으로 인지하고 행동할 수 있는 지성의 힘을 길러야 한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캐런 메싱은 자신이 출판한 많은 논문이 ‘노동자들의 삶을 실제로 더 낫게 만든 것 같지는 않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하지만 캐런 메싱의 연구는 연구자뿐 아니라 동료 시민들이 개별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열악한 노동환경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부당한 사회적 힘에 맞서 함께 싸울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이처럼 노동자의 건강을 연구하는 학자의 역할은 목소리를 갖기 힘든 당사자들을 대리하여 자신의 발언권을 강화하기보다는, 이들과 연대하여 이들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조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 분야의 연구자, 특히 나와 같은 초보 연구자들, 그리고 과학기술 정책을 만들고 연구개발을 기획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현장이 없는 연구는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이들 사이에서 공유될 때 비로소 연구가 동료인간의 삶이 실제로 더 나아지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보이지 않는 고통>.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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