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재정 덜 쓰고, 국민 건강 지키는 비결?
[서리풀 연구통通] 의료 이외의 복지도 건강에 도움 된다
전 세계적으로 의료비가 빠르게 늘어나는 중이다. 새로운 의료기술 도입, 인구 고령화,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 증가 등이 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현재 경향대로 의료비 상승이 지속된다면 21세기 중반 무렵 그 비용을 더는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라 경고하기도 했다(☞관련 자료 : 보건의료체계 재정의 지속가능성).
한국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향후의 재정 추계, 비용 증가 요인 심층 분석 등 여러 가지 연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렇다 할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어떻게 해야 우리는 건강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의료비 지출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을까?
최근 <캐나다 의사협회지(Canadian Medical Association Journal)>에 더턴(Dutton)을 비롯한 4명의 공공정책 연구자들이 게재한 논문은 이와 관련한 실마리를 보여준다(☞관련 자료 : 캐나다 주정부의 사회복지 및 보건의료 지출이 건강결과에 미치는 영향). 그동안의 논의가 주로 건강보험이나 보건의료체계 안에서의 지출 효율화에 초점을 맞췄던 것과 달리 이 연구는 보건의료 영역을 넘어 사회복지를 아우르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연구진은 우선 건강을 위한 정부 지출이 협소한 “보건의료”에만 한정되는 것부터가 잘못이라고 보았다. 이들은 교육, 고용, 소득, 주거 등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들(social determinants of health)”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복지지출도 중요한 건강지출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정부가 건강을 의식적으로 염두에 두고 사회복지 부문에 투자하지는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여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진은 캐나다 주(province) 정부들이 보건의료 대비 사회복지에 투자하는 예산 수준이 주민의 건강과 관련 있는지 파악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9개 주 정부의 지난 30년 동안 (1981~2011년) 재정 지출 자료를 수집하고, 회피 가능한 사망률, 평균수명, 영아사망률 등의 건강지표를 측정했다. 그리고 선형회귀분석을 통해 이들의 연관성을 검토했다.
분석 결과, 보건의료 지출 1달러 대비 사회복지 지출이 1센트 (즉, 1달러의 1/100) 증가할 때마다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건강 향상이 관찰되었다. 예컨대 회피 가능한 사망률은 0.1% 감소했고 평균수명은 0.01% 늘어났다. 영아사망률은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관련성을 보이지 않았다. 원화로 환산해보면 대략 보건의료 지출 천 원 당 사회복지 지출이 십 원 늘어날 때마다 건강 수준 향상이 가능한 셈이다. 즉, 보건의료 대비 사회복지 지출이 소폭으로만 증가해도 건강 결과가 나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하여 다른 여러 나라들에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비슷한 연구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지난 1월 <미국예방의학지>에는 OECD 20개 국가를 대상으로 교육과 근로무능력(incapacity)에 대한 정부지출 확대가 평균 수명 향상과 관련 있다는 논문이 실렸다(☞관련 자료 : 고소득 국가들의 사회정책지출과 기대 수명).
사회복지 지출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해 연구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사회복지 부문에 대한 지출(즉,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 보건의료 대비 사회복지 지출 등) 증가는 평균수명, 영아 사망률, 비만, 심근경색 등 건강지표들의 유의미한 개선을 가져오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은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정부가 건강을 위한 지출을 의료에 한정하지 않고 사회복지부문으로 전환, 확대할 때 재원의 지속가능성과 건강 향상 모두를 도모할 수 있다고 말이다. 물론 의료비는 질병의 치료와 예방에서 필수적인 지출이다. 그러나 그에 투입되는 비용이 한없이 늘어난다고 해서 반드시 그만큼의 건강향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반면 사회정책과 사업들에 대한 지출은 좀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인구집단의 건강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위험요인 분포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보다 효과적인 투자일 수 있다.
급증하는 보건의료비에 대한 획기적 돌파구가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연구 결과가 갖는 의미는 크다. 왜냐하면 현재 제안되고 있는 재정절감 방안들은 건강결과에 대한 고려 없이 주로 비용 절감 가능성에만 초점을 두는 반면, 이 연구는 인구집단의 건강수준을 향상시키면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복지지출은 개선의 여지가 큰 영역이기도 하다. 연구진이 분석 대상으로 삼았던 30여 년 동안 캐나다 주 정부의 재정지출 추이를 살펴보면, 1인당 평균 보건의료비 지출은 약 2배 정도 늘어났으나(2000달러 → 4000달러), 사회복지 지출은 그 증가폭이 매우 미미했다 (770달러 → 970달러)했다 (그림1 참조).
그림 1.
한국은 어떨까. “통계로 보는 사회보장 2016″에 따르면 2012년 한국의 공공사회지출(Public Social Expenditure; 노령, 유족, 근로 무능력, 보건, 가족, 적극적 노동시장 프로그램, 실업, 주거, 기타로 구성됨) 수준은 GDP의 10.4%로 OECD 30개 회원국 중 꼴찌였다. 참고로 OECD 평균은 21.0%였다. 또한 지출 구조를 세분하여 살펴보면, 보건부문(건강보험, 의료급여, 노인장기요양보험, 산재보험 포함)이 전체 공공사회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2.8%로 OECD 평균(29.1%)보다 훨씬 높았다 (그림 2 참조). 즉, 전체 공공사회지출 수준이 낮을 뿐 아니라 그나마도 보건의료 부문에 집중되어 있어, 나머지 사회복지 부문에 대한 지출은 매우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2.
수천만 원을 웃도는 고가의 의약품과 의료기술의 비용 대비 효과가 미미하다는 점이 끊임없이 논란인 상황에서 (☞관련 기사 : 비싼 항암제가 다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과연 정말로 돈을 써야 할 곳에 쓰고 있는지 검토해 보아야 한다. 이러한 검토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보건의료 내에서의 자원 분배”는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공적 지출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보건의료를 넘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부문을 아우르는 자원의 분배 결정에 주목해야 한다.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금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