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올 여름이 덥다고 난리다. 실제 기온이 더 높을 수도, 그냥 더 덥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덥다는 것은 어차피 주관이 섞였고 상대적인 것이다.
그러나 수치만 보면 올 더위가 유난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서울의 7월 평균기온이 지난 10년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열대야가 연일 신기록을 세운다니 평균이란 말을 믿기는 어렵다.
물론 겨우 10년을 두고 기온 변화를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 이 분야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은 100년, 200년 간격의 변화이다. 그 사이 지구의 온도는 0.5도에서 1.5도 정도 오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 사람의 감각으로는 1도 정도의 기온 변화에는 대체로 대범하다(!). 아열대 기후가 되었느니 또는 명태가 없어졌느니 하는 뉴스를 재미 삼지만, 그것이 무슨 큰 문젠가 하는 생각이 더 큰 것 같다.
사실 기후변화라는 말은 이제 낯설지 않다. 정부문서나 언론에도 점점 더 자주 등장하고, 연구소나 대학에서 발표하는 이 분야 연구도 훨씬 많아졌다. 말로나마 걱정하는 소리를 더 많이 듣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기후변화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인정받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일부 전문가와 환경에 관심이 큰 사람들만 관심을 기울이는, 말하자면 비주류 의제의 신세라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기후변화를 보는 한국 사회의 시각은 국제적인 분위기와 비교하면 영 뜨뜻미지근하다. 강 건너 불구경 분위기라고나 할까. 정치와 정책도 ‘녹색성장’ 담론이 압도하는 수준이다.
물론 전세계적으로 기후변화를 둘러싼 논쟁이 복잡하고 격렬하다는 것은 여전하다. 지구 온난화가 ‘사실’인지부터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에 이르기까지, 명확하게 결론이 내려진 것이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하지만 기후변화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은 점점 더 찾기 어렵다.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에도 대부분 나라가 동의한다.
기후변화는 지금 세대가 당면한 대표적인 해결과제, 그것도 역사에서 비슷한 예를 찾기 힘든 전지구적 도전임을 부인할 수 없다. 문제의 발생부터 해결에 이르기까지 개별 국가의 범위를 훌쩍 넘어서는 것은 물론, 시간이라는 차원도 100년, 200년을 쉽게 넘나든다.
기후변화가 우리 시대의 핵심과제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당연히 건강도 포함된다. 이 둘을 연결시키는 것이 항상 쉬운 일은 아니지만 피해가기도 어렵다.
우선 기후변화가 건강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요즘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폭염 피해가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기온이 올라가면 열 피해도 당연히 늘어난다(2012년 5월 21일 서리풀 논평 참고).
<2012년 8월 6일 아침 기상청 홈페이지 – 한반도 거의 전역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져 있다>
물론 이런 변화는 장기적으로 서서히 일어나기 때문에 사람들도 변화에 어느 정도 적응한다. 그러나 변화와 적응 사이에 간격이 있으면, 그리고 간격이 클수록,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기온처럼 직접적인 것은 아니지만 건강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나 매개물이 바뀔 수도 있다. 그 결과로 생기는 피해가 적지 않은데, 전염병이나 기생충 같은 병이 여기에 해당한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뎅기열’이라는 병이 대표적이다. 모기가 옮기는 이 병은 본래 열대지방에서 흔하다. 말라리아만큼은 아니지만 세계적으로도 중요하다.
이 병이 기후변화 때문에 위험 지역이 훨씬 더 넓어지고 위험에 노출된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2002년 뉴질랜드와 호주 연구팀이 분석한 결과로는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게 되는 사람들 수가 어마어마하다. 2085년까지 기후변화 때문에 뎅기열의 위험에 추가로 노출될 것으로 예상된 사람이 세계인구의 15%(15억 명)를 넘는다.
앞의 변화들보다는 조금 더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도 있다. 공기와 물, 농산물 생산 같은 것이다. 기후변화에 따라 이런 요소가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은 뻔하다. 아프리카와 남부 아시아, 그리고 남반구에 해당하는 대부분 국가에서 농산물 생산이 많게는 절반 넘게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물 부족과 식량의 부족이 건강에 어떤 문제를 불러올 것인지는 굳이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전염병을 비롯한 여러 질병과 영양부족의 위험이 크게 증가한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기후변화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먼 미래에나 나타날 하나의 ‘가능성’이 아니다. 이미 세계 여러 지역에서 전에 볼 수 없던 질병이 새롭게 나타나고, 식량생산과 이로 인한 영양 문제도 현재진행형이다. 미국 중부의 극심한 가뭄으로 지난 7월 말 국제 옥수수 가격이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는 소식은 단지 경제나 산업의 문제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사실, 기후변화 때문에 생기는 건강피해가 계층과 집단에 따라 차별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한국에서도 조만간 뎅기열이 유행하고 말라리아가 더 늘어날지 모른다. 식량 가격이 폭등하는 바람에 영양 부족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위험에 빠지고 병에 걸리지는 않는다. 위험의 정도와 대응의 능력도 다르다. 기후변화의 건강 피해도 예외 없이 불평등의 메커니즘을 거친 후에야 나타나기 때문이다.
불평등 구조는 기후변화에서 건강 피해에 이르는 전체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전형적으로 이 과정은 기후변화의 발생 -> 기후변화에 노출 -> 취약한 사람에서 피해 발생 -> 회복이나 장애의 순서를 거친다.
우선, 기후변화는 불평등하게 시작되고 진행된다. 특히 발생과 피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중적으로 불평등한 구조 속에 있다. 원인은 주로 선진국이 제공하는 반면, 피해는 방글라데시 같은 가난한 나라에서 더 크게 나타나는 것이다.
방글라데시는 해수면이 1미터 올라가면 전국토의 17%가 수몰될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수인성 전염병이 많은 곳인데, 인구밀집과 홍수 증가로 수인성 전염병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한 나라 안에서도 비슷한 불평등이 작동한다. 한국에서도 에너지를 소비하는 수준이 계층에 따라 다르다는 것은 명확하다. 2005년 현재 소득을 열 개 계층으로 나누어보면 최고 소득계층이 지출하는 광열비가 최하 계층의 두 배에 가깝다(통계청 자료).
이와 같은 원인과 결과를 묶는 이중적 불평등은 낯설지 않다. 이익은 개인이 독점하고 피해는 사회화하는 신자유주의의 원리가 기후변화에도 변함없이 관철된다고 할 수 있다.
기후변화에 얼마나 노출되는가 하는 점에서도 평등하지 못하다. 예를 들어 꼭 같이 기온이 올라도 모든 사람이 꼭 같이 높은 온도와 씨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냉방으로 대처할 수 있는 쪽과 쪽방에 사는 빈곤층이 어떻게 다른가는 뻔하다. 방글라데시에서도 홍수나 더러운 물과는 전혀 상관없는 계층이 있다.
설사 꼭 같은 정도로 노출되더라도 노인, 어린이, 빈곤층, 환자 등 취약계층이 더 큰 피해를 본다. 같은 고온에서도, 비슷하게 오염된 공기를 마셔도, 어떤 사람은 더 쉽게 병에 걸리고 또 죽는다. 이른바 취약성의 불평등이다.
건강문제가 생기고 난 다음에 해결하는 능력도 사람에 따라 계층에 따라 고르지 못하다. 보건의료 서비스 불평등의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이미 익숙하다. 이전의 논평에서도 여러 번 말했기 때문에 더 보태지 않는다.
건강 불평등을 줄이는 것은 당연히 이들 단계 모두를 포함해야 한다. 차원이 조금은 다른 발생과 진행 단계는 논외로 하자. 그러나 노출, 취약성, 해결의 세 단계에서는 형평이라는 것이 중요한 관점과 과제가 되어야 마땅하다.
이 여름의 폭염이 기후변화의 직접적 결과인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더위 때문에 이미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 그 중에서도 쪽방 주민과 농민, 일용직 노동자 등이 더 많은 피해를 입었다.
앞으로 기후변화는 더욱 심각한 건강피해를 더 자주 불러올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대비하지 않으면 피해는 취약계층에 집중될 것이 분명하다.
정부 차원에서 기후변화의 건강피해에 대비하는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대책에는 ‘형평성’이라는 렌즈가 꼭 들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