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성 평등이 건강 사회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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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박육아, 여성 건강권은 어디로?

[서리풀 연구통] 성 평등이 건강 사회로 이끈다

조효진 시민건강증진연구소 회원

 

직장에서 퇴근할 때에는 ‘먼저 가서 미안하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갈 때는 ‘늦게 와서 미안하다’, 아이에게는 ‘늦게 데리러 와서 미안하다’…’미안하다, 죄송하다’라는 말을 9년 동안 입에 달고 버틸 줄 알아야 맞벌이 부부를 할 수 있다는 신문 기사 제목이 워킹맘들의 씁쓸한 현실을 보여 준다(☞관련 기사: 맞벌이 부부의 자격…죄송·미안 입에 달고 9년 버텨라). 한국 사회의 많은 엄마들은 만성적 시간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2014년)에 따르면 직장인 기혼 여성은 아이 씻기기, 재우기, 놀아주기 등 자녀 돌봄에 하루 평균 33.4분을 쓰고, 식사준비, 청소, 설거지 같은 가사노동에 쓰는 174.9분을 쓴다. 하루 평균 208.3분, 즉 3시간 반 정도를 돌봄과 집안일에 할애하는 셈이다. 평균 72.2분을 쓰는 남편에 비하면 약 세 배에 달한다(☞관련 자료: 돌봄·가사노동, 일하는 아내 하루 208분…무직 남편은 72분).

 

이러한 부담 때문일까? 많은 연구들이 어린 자녀를 양육하는 연령대 여성들의 건강검진 참여율이 낮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그리고 최근 국제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 Social Science & Medicine>에 발표된 일본 동경대학교 보건대학 아네자키(Hisataka Anezaki)와 하시모토(Hideki Hashimoto) 연구팀의 논문은 이러한 의심이 틀리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관련 자료: Time cost of child rearing and its effect on women’s uptake of free health checkups in Japan). 연구팀은 자녀양육 부담이 여성에게 편중된 일본의 사회적 환경을 고려하여 여성이 경험하는 자녀양육의 ‘시간 비용’을 추정하고, 이것이 여성의 건강검진 참가율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분석에는 2010년 일본 4개 지역에서 조사한 25~50세 여성 4357명의 자료를 활용했다.

 

우선 연구팀이 활용한 ‘시간 비용’이라는 개념을 살펴보자. 이전의 연구들은 여성들이 경험하는 시간 부담을 자녀수로 측정함으로써, 자녀가 많을수록 양육 부담이 일률적으로 커진다고 보았다. 반면 연구는 시간 비용(time cost)이라는 개념을 활용하여 자녀 양육에 대한 시간부담을 금전적 가치로 환산했다. 이는 하루 24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서 노동시장 참여와 자녀양육 역할이 서로 상충하는 ‘시간 수요'(time demands)를 낳는다고 전제한다.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연구팀은 자녀양육이 차지하는 상대적인 시간 부담 정도를 해당 여성이 자녀를 돌보는 대신 노동시장에 참여한다면 받을 수 있는 임금 수준을 고려하여 추정했다.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대신 자녀양육에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은 자녀양육의 시간 비용 또는 부담이 노동시장 참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임금보다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석 결과, 여성들이 경험하는 자녀양육에 대한 시간 비용은 자녀의 연령이 어릴수록, 그리고 동거하는 가족이 없는 경우에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자녀 양육의 강도가 높을수록, 그리고 도움을 구할 곳이 없을수록 어쩔 수 없이 노동시장 참여를 포기하고 양육에 전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반영한다. 0~3세 자녀를 돌보는데 드는 시간 비용은 시간 당 16.9 달러로 나타났으며, 4~5세 자녀 돌봄에 대한 시간 비용은 시간당 15.0 달러였다. 자녀를 돌봐줄 수 있는 조부모가 동거하는 경우에는 자녀양육에 대한 시간 비용이 작았고, 엄마의 노동시장 참여율도 높았다.

 

이렇게 자녀양육에 대한 시간비용을 고려하여 25~50세 여성들의 건강검진 참여율을 분석한 결과, 자녀양육의 시간 비용이 큰 사람들일수록 건강검진 참여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테면, 자녀가 없는 여성의 건강검진 참여율은 61.7%인 반면, 0~3세 자녀를 양육하는 여성은 54.2%, 4~5세 자녀를 양육하는 여성의 경우 58.6%였다. 이러한 결과는 자녀양육에 대한 시간 부담이 클수록 여성이 자신의 건강에 투자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은 어린 자녀를 돌보는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OECD 회원국들 중에서 낮은 편에 속하며 노동시장에서 성별 임금격차도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이러한 사회구조적 환경으로 인해 자녀양육에 관한 시간비용 부담이 여성에게 편중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건강검진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한다고 해도, 자녀양육 부담이 여성에게 편중되어 있는 사회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이러한 건강검진 제도의 기대 효과를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경험하는 현실 또한 일본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이러한 연구결과가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관련 기사: 한국 맞벌이 비중 OECD 평균의 절반 수준···남성 장시간 노동과 가사분담 저조가 원인).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자원에의 접근성’은 기회의 평등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가정과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적 문화와 관행은 성 불평등한 시간배분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건강하게 살기 위한 자원 접근에서의 성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여성 건강의 문제는 성차별적 사회구조, 문화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우리 사회 전반의 성 평등 수준을 높이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영역에서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성 평등한 사회, 이는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는 중요한 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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