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인공관절과 할머니들의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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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 연구通] <엄마의 봄날>은 과연 할머니의 희망일까?

 

류한소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며칠 전 영암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같은 마을 주민 14명이 사망하거나 크게 다치는 비극적 사건이 벌어졌다. 희생자는 대부분 ‘손주 용돈이나 주려고’ 밭일 아르바이트를 다녀오던 60~80대 할머니들이었다(☞관련 기사 : 바쁜 영농철 ‘3무’ 버스…오늘도 아슬아슬 달린다).

이 소식을 접하고 엉뚱하게도 몇 년 전 일이 떠올랐다. 지방 소도시에 살고 계신 어머니 수술 상담을 위해 인근 관절척추 전문병원에 전화를 걸었던 적이 있다. 진료 후 수술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냐는 물음에 상담사(?)는 요즘에는 농번기가 아니라 병원이 조금 여유 있다고 했다. 원장님께 시골에 빨리 일하러 가야 된다고 얘기하면 수술 일정이 빨리 잡힐 수 있다는 친절한 팁까지 알려주었다. 얼마 후 어머니는 그 병원에서 인공관절 수술을 받으셨다. 다인실 병실에서 동료 할머니들과 금방 친해져 있는 어머니를 보면서 필자는 그 병원 전체가 할머니들만의 공간 같다는 생각을 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17년 진료비 통계지표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사이에서 입원 진료가 가장 많았던 질병에 무릎관절증이 5위(전년 대비 요양 급여 12.7% 증가), 요추 및 골반의 골절이 7위(전년 대비 요양 급여 13.5% 증가)를 차지했다. 몇 년 사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관절척추 전문병원과 인공관절 치환술의 증가도 한 몫 했으리라. 관절 치료의 마지막 단계라 불리는 인공관절 수술은 환자들의 삶의 질을 나아지게도 하지만, 재수술이나 수술 부위 감염 같은 부작용도 있다. 따라서 무조건 ‘다다익선’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최근 국제학술지 <생명윤리에 대한 여성주의적 접근>에 실린 호주 맥쿼리 대학 로저스 교수팀의 논문은 체내 이식 장치 시술 경과가 나쁜 것은 환자 개인에게 비극일 뿐 아니라, 그러한 피해가 특정한 인종, 계급, 젠더에 집중된다면 이는 더 넓은 사회적 불평등 문제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신체에 이식하는 몇몇 장치들이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 주목했다(☞논문 바로 가기 : Hips, Knees, and Hernia Mesh: When Does Gender Matter in Surgery?).

존슨앤존슨의 자회사인 드퓨(DePuy)의 ASR 인공고관절에 대한 세계적 리콜 조치는(☞공지 바로 가기) 금속 대 금속 고관절 치환술(metal-on-metal hip prostheses)에 대한 광범위한 우려를 낳았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그런데 기존 연구들에 따르면 인공고관절에 대한 재수술 비율이 여성에게서 남성보다 2배 이상 많았다고 한다. 왜 이러한 불평등이 발생하는 것일까?

연구팀은 우선 의료 기기의 개발, 임상 시험과 승인 과정에서 체계적 젠더 편향이 있음을 지적했다. 대표적인 것이 임상 연구에서 여성 참여자의 과소 대표성이다.

미국식품의약품안전청(FDA)은 1977~1993년 동안 “가임기 여성”을 임상시험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여성의 재생산 능력을 보호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심장병과 암은 여성에게도 심각한 문제인데 여성을 배제한 것은 결국 여성을 재생산 주체로만 간주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1993년 이후 FDA는 이러한 피험자 젠더 불균형에 대한 시정 조치들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연구팀은 여전히 여성이 임상연구에서 배제되고 있으며, 이는 여성에게 불평등한 건강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흔히 사용되는 ICD(삽입형 심실제세동기)의 승인 당시, 여성 참여자의 숫자는 ICD가 여성에게 효과적이라는 탄탄한 근거를 지지하기에는 부족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연구팀은 FDA를 비롯한 규제 당국의 시정 조치가 있다 해도, 여성이 이미 배제된 과거의 임상연구 데이터를 근거로 의료기기를 승인하는 경우, 건강 피해의 불평등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는 의료기기의 승인과정의 특성과 관계있다. 약물과 달리 의료기기는 이미 승인되어 시장에 출시된 기기들과 유사성이 있는 경우 신속처리 절차에 의해 승인된다. 이는 많은 의료기기 회사들이 체내 이식장치를 시장에 출시하는 데 유효성과 안정성을 평가한 새로운 임상 데이터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FDA를 비롯하여 전 세계 규제 당국에 의해 승인받은 드퓨의 ASR 고관절이 바로 이러한 경우였다. ASR 고관절 제품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FDA은 이미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던 95개 다른 제품들과의 유사성을 근거로 이를 승인했다. 그런데 FDA의 인공고관절 제품 승인의 ‘계보’를 따라가 보면 그 끝에는 1976년 이전에 승인되고 이미 오래 전에 단종된 세 가지 제품들만이 남는다. 즉 체내에 이식되는 인공고관절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근거가 몇 십 년 전의 임상시험 결과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연구팀은 여성이 체내 의료기기 이식에서 불평등한 피해를 보는 이유의 기저에 사회문화적, 경제적 요인이 있다고 주장한다. 은밀하고 공공연한 성차별주의가 존재하는 의료교육기관과 병원의 문화도 그 중 하나이다. 특히 ‘의사-환자’의 가능한 성별 조합 중 진료와 수술 상담에서 환자 중심성이 가장 낮은 조합이 ‘남자 의사-여성 환자’라는 선행 연구를 언급하며, 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수직적이고 단정적인 소통 방식은 여성 환자들의 수술 결정 과정과 결과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더불어 저자들은 정상성(typicality)을 가진 남성의 몸과 일탈(deviance)로서의 여성의 몸이라는 대비에도 주목한다. 임상 연구에서 여성이 과소 대표되는 것은 임산부나 태아에 대한 우려뿐 아니라 여성의 몸이 다루기 힘들고 예측가능하지 않아서 결과의 신뢰성을 저해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도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 배제는 전임상 동물 실험에서도 일어난다. 예를 들어, 연구자들은 발정 주기로 인한 변이를 최소화하거나 X 염색체뿐 아니라 Y염색체를 연구할 수 있다는 장점을 들어 수컷 모델을 선호한다. 심장병 연구의 경우, 암컷 쥐는 호르몬의 영향이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연구의 타당성을 높이기 위해 수컷 쥐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특정 젠더 편향의 연구들이 “타당성”을 주장하려면 어떻게 시험약이 여성의 재생산 주기의 변동성과 상호작용하는지, 여성들에게서 나타나는 심장병의 특징이 어떻게 그들의 호르몬에 의해 보호되는지 등을 알기 위해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 또한 “타당한” 이유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저자들은 어떤 젠더가 “정상적” 또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가는 결국 어떤 종류의 연구가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지와 연결된다고 주장한다. 특정한 중재에 대해 “사람에게 처음으로 시행한” 연구들은 주로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여성 피험자를 과소 대표한 연구들은 명망 있고 많이 인용되는 학술지에서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중요하고 독창적인’ 연구는 돈 문제와도 뗄 수 없다. 의료기기 회사는 기껏해야 이전에 나온 연구결과를 뒷받침하거나 아무리 나빠도 잠재적 시장을 제한하는 정도에 그칠 연구에 대해 투자할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당 의료기기가 환자의 젠더에 관한 특정한 제한 없이 규제 당국에 의해 승인된다면, 굳이 의료기기 회사는 추후 특정한 젠더를 대상으로 하는 시험에 돈을 쓰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의료기기 회사들이 항상 여성을 연구에서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유방 보형물처럼 여성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기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경우에서 젠더 강조는 여성 건강에 대한 우려를 반영하기보다 ‘특별히 여성을 위해 개발된’ 운운하는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이는 앞서 언급했듯 ‘비정상’의 신체로서 임상연구에서 간과된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문화적 규범을 되풀이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정형외과 산업은 여성의 무릎이 남성과 해부학적으로 다르다는 것에 착안하여 ‘여성형’ 무릎 인공관절 치환술에 상당한 관심을 보여왔다. 현재로서는 여성 환자들이 ‘여성형’이 아닌 ‘표준적’ 인공관절을 이식했다고 해서 남성보다 더 나쁜 결과를 보인다는 근거는 없다고 한다. 이 ‘여성형’ 인공관절 또한 FDA의 신속처리절차를 통해 임상시험 없이 승인되었기 때문에 정말로 여성 건강에 더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근거 또한 없다.

병원과 제휴를 맺어 농촌의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인공관절 치환술 등 수술을 해주며 병원 홍보를 하는 방송 프로그램의 제목이 <엄마의 봄날>이다. 사람 사는 모습이야 다양하겠지만 이 프로그램의 포맷은 별다른 변주 없이 진행된다. 한평생 일을 한 시골의 고령 여성이 등장하고, 어쩌면 그녀를 방치하거나 그녀의 닳아버린 관절에 기여했을 가족들이 등장하고, 그리고 남자 ‘의느님’이 나타나 그녀들을 고쳐준다는 것이다. 순박하고 씩씩한 그녀들을 보면서, 손주들 용돈을 벌기 위해 새벽부터 미니버스를 타고 다른 동네로 일을 나갔다는 할머니들이 다시 떠올랐다. 그 분들의 관절이라고 달랐을까.

인공관절 수술이 과연 이들의 삶에 봄날을 가져다 줄 수 있을지, 보건의료서비스와 기술에 대한 여성주의적 분석이 필요하다.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금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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