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난민 신청자의 건강권 제대로 보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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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 연구통] 난민 신청자 장기구금, 삶을 망가뜨린다

 

푸른 언덕(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지난 6월 20일은 세계난민의 날이었다. 매년 이 즈음이면 우리 사회의 난민실태를 돌아보는 언론보도가 줄을 잇기 마련이다. 세계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난민 인정율, 장기 구금된 난민신청자들(asylum seekers)의 인권침해 문제가 단골 주제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강제퇴거 명령을 받은 사람을 송환할 수 있을 때까지 보호시설에 보호’할 수 있도록 규정한 출입국관리법에 의해 사실상 무기한 구금이 허용되고 있다. ‘강제송환금지의 원칙’을 구실로 ‘자의적 구금 금지의 원칙’을 위배하고 있는 것이다.

 

난민 인정이나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지 못한 이들은 ‘외국인 보호소’에 구금된다. 난민신청절차에 회부조차 되지 못한 이들은 불회부 처분에 대한 취소 소송의 재판결과가 나올 때까지 공항의 ‘송환 대기실’에 머물게 된다. 이곳의 열악한 환경과 비인간적 처우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언론보도들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관련 기사 : ‘인권사각’ 청주 외국인 보호소, 가스총 협박에 폭행외국인보호소, 과연 이대로도 괜찮은가?인권위, 교도소보다 못한 외국인보호소 개선 권고).

 

특히 작년 11월 국정감사장에서는 송환대기실 근무자가 난민신청자를 향해 거친 욕설을 퍼붓는 충격적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바로 가기). 이는 우리사회에서 난민신청자들이 겪고 있는 인권침해의 민낯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우리 시민건강연구소가 다른 사회단체들과 함께 발표한 대통령 개헌안 논평(☞바로 가기)에서 밝혔듯, 모든 ‘사람’의 건강권이 차별 없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원칙에 난민 신청자들도 예외일 수 없다. 이들이 난민 신청 절차를 진행하는 중에, 구금 생활 중에, 또는 난민으로 인정받고 한국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정신적, 신체적 건강상의 피해를 줄이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장기 구금 과정에서 발생하는 건강권 침해 요소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우선 장기구금이 난민신청자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분석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가 없는 탓인지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이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다.

 

다행히 해외에서 이 주제를 다룬 연구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난민 신청자의 장기구금은 우울증이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같은 정신 질환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참고 문헌).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결과이다. 그런데 이러한 연구들조차도 주로 수량화된 척도를 활용한 단편적 분석결과를 제시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난민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충분한 표본 수를 확보하거나 정교한 연구 설계를 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어렵거나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구금된 환경 속에서 어떻게 ‘적응’해 가는지, 또 이때의 경험이 구금 이후의 ‘삶의 질’과 ‘정체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는 비교적 적은 편이다.

 

지난 2010년 국제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 (Social Science & Medicine)>에 실린 호주 연구팀의 논문은 이 주제를 다룬 몇 안 되는 질적 연구 중 하나이다.(☞바로 가기: The meaning and mental health consequences of long-term immigration detention for people seeking asylum)

 

연구팀은 호주 난민수용소에서 평균 3년 2개월 동안 구금되었다가 풀려난 17명의 성인 난민들을 연구 참여자로 모집했다. 이들과 대략 4년에 걸쳐 여러 차례 인터뷰를 진행하며 구금 당시와 이후의 정신적 경험을 조사했다.

 

또 ‘하버드 외상 설문’의 PTSD 지표(HTQ-PTSD)와 ‘홉킨스 증상 체크리스트-25′(HSCL-25) 같은 설문조사 도구들도 사용하여 현재 정신건강과 삶의 질 수준을 측정하였다.

 

연구팀은 연구 결과를 크게 ‘구금 당시의 정신적 경험’과 ‘구금 이후의 정신적 경험’, ‘현재의 정신건강’으로 구분해 제시했다. 먼저 구금 기간에 참여자들이 겪었던 정신적 경험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키워드로 집약될 수 있었다.

 

첫째, ‘감금과 박탈’이다. 모든 참여자들은 보호소가 사실상 ‘감옥’과 같았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하루 종일 작동하는 감시카메라의 시선과 함께 방 수색, 점호 등에 시달렸다. 또한 이들 모두는 불충분한 의료 서비스 때문에 좌절했다. 연구 참여자의 절반 이상은 보호소의 의사를 신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잠시도 혼자 있을 수 있는 사적 공간이 없었다는 것도 이들이 겪은 큰 불편함 중 하나였다.

 

둘째, ‘불의와 비(非)인도성’이다. 이들 모두는 정당한 이유 없이 범죄자 취급을 당했다. 비인간적 환경 속에서 이름이 아닌 숫자로 불리었으며, 모욕적이고 무례한 언사를 당하기 일쑤였다. 때로 수갑을 차거나 알몸 수색을 받아야 했고, 부당한 처우에 항의한 이들은 곤봉으로 가혹하게 구타당하고 독방으로 보내졌다. 또 대부분은 비자신청 절차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으며, 절반 가까이는 자신들이 기만당했다고 진술했다. 심지어 일부 보호소에서는 가족들을 분리시켜 구금하기도 하였다.

 

셋째, ‘고립과 관계단절’이다. 연구 참여자 대부분은 구금 기간 동안 외부와의 단절 속에서 고립감과 외로움에 시달렸다. 그나마 방문객, 지지자들과의 접촉은 이들이 삶의 의욕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큰 힘이 되었다.

 

넷째, ‘절망과 의욕 상실’이다. 이들은 구금 내내 언제 추방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떨어야 했고, 주변 사람들의 비자신청이 거부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점차 낙담해 갔다. 대다수가 심한 피로감과 활력 저하, 인지기능의 손상을 경험했다. 목표의식을 상실하고 수동적으로 바뀌었으며, 많은 이들이 자살충동에 시달렸다. 심지어 몇몇 이들은 자신이 미칠까봐 두려웠다고 털어놓았다. 이들 모두는 자신이 쉽게 초조해 하면서 인내심이 줄어들고 불신과 의심이 많은 성격으로 변해갔다고 진술했다.

 

한편 구금 이후의 정신적 경험은 다음의 세 가지 키워드로 설명되었다.

 

첫째, ‘불안정과 불의’이다. 이들은 구금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영주 비자를 발급받기 전까지 여전히 추방 위험에 처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국에 남아 있는 가족들의 안전과 생계를 걱정했다. 일부 참여자들은 자신과 달리 손쉽게 비자를 받고 가족과 재결합하는 이들을 보면서 불의를 느끼기도 했다. 또한 구금 기간 경제활동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아무런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것도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둘째, ‘관계의 어려움’이다. 연구 참여자 대부분은 사회적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낯선 이들과의 만남을 기피하고 혼자 조용히 있기를 선호했다. 몇몇 이들은 그나마 보호소에서 만났던 지지자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절반의 참여자들은 자신들이 환영받지 못하는 이방인이고, 현지인들로부터 거부당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또 어떤 사람을 신뢰해야 할지 분별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었다.

 

셋째, ‘자아관의 변화’이다. 이들이 가진 일시적 비자는 가족과의 재결합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 처한 본국의 부모와 자녀, 형제들을 구할 수 없다. 참여자 대부분은 가족의 보호자이자 부양자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죄책감과 무력감에 시달렸다. 이는 곧 돌이킬 수 없는 자아관의 변화를 초래했다. 오랜만에 가족과 재회한 이들 또한 가족과 친밀감을 회복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이들 모두는 자신의 사회적, 목표 지향적 활동능력이 떨어졌음을 깨달았다. 언어를 배우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일이 힘든 과제로 느껴졌다. 대부분은 자신의 삶을 새롭게 설계하는데 실패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연구팀은 설문조사 도구들을 이용해 측정한 이들의 현재 정신건강 상태를 제시했다. 연구 참여자들은 우울증과 불안, PTSD 증상과 함께 삶의 질 저하, 지속적인 집중력과 기억력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결과는 현재 참여자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 관계적 고통이 바로 장기구금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물론 후향적 조사방식으로 인해 참여자들의 기억이 다소 왜곡되거나 편향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 연구 참여자들이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남성들이었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한점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정신적 손상을 야기하는 장기구금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연구는 매우 의미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연구의 참여자들이 경험했던 호주 난민수용소의 환경은 한국과 많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법무부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외국인 보호소 내의 쇠창살을 없애기로 결정한 것을 보더라도(☞관련 기사 : 불법체류 외국인 보호시설 쇠창살 없앤다), 구금의 반인권적 실태는 호주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 보호소에 장기 구금되었던 난민신청자들 역시 이 연구에서와 비슷한 심각한 정신건강의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크다. 연구팀이 제언한 것처럼, 보상적 정의의 차원에서라도 이들의 건강이 회복될 수 있도록 충분한 치료와 지원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올해 난민의 날 분위기는 이런 말을 꺼내는 것조차 어렵게 만든다. 500여 명 이상의 예멘 출신 난민들이 제주도에 입국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매월 거액의 생활지원금을 받는다’, ‘성범죄가 급증한다’ 등의 가짜 뉴스들이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급기야 난민신청허가를 폐지하자는 청와대 청원이 제기되었다. 여기에 동의하는 사람이 순식간에 20만 명을 넘어섰다. 하필 난민의 날에 벌어진 일이다. 한국 사회 또한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더 나은 삶을 위해 혹은 그저 목숨을 구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으로 이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 최근까지도 한반도는 일촉즉발 전쟁의 위기에 놓이지 않았던가.

 

세계 어느 곳보다도 호혜성과 연대, 인도주의가 강력하게 작동해야 할 한반도에서 이토록 공공연한 차별과 배제라니,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세계 시민으로서, 한국 사회가 난민들의 인권, 특히 건강권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금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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