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영리병원과 원격의료가 혁신성장?
무려(!) 자칭 메이저 언론의 보도자료 받아쓰기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15일 영리병원 설립 허용, 원격의료 규제 개선 등 9건의 혁신 성장 규제 개혁 과제를 기획재정부에 건의했다고 17일 밝혔다….경총은 영리병원 설립, 원격의료 허용 등 부가가치가 높은 의료 산업에 대한 규제 개혁이 이뤄질 경우 18만7000~37만4000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했다.”
경총이 제안한 9건은 다음과 같다. ▲영리법인 설립 허용 ▲원격의료 규제 개선 ▲의사·간호사 인력 공급 확대 ▲인터넷 전문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완화 ▲프랜차이즈 산업 규제 개선 ▲산업과 경제의 디지털화에 따른 노동관계법 개정 ▲처방전 필요 없는 의약품을 판매하는 드럭스토어 산업 활성화 ▲5G 투자에 대한 지원 확대 ▲고령자에 대한 파견허용 업무 규제 폐지.
누가 이 말을 먼저 시작하나 기다렸는데, 경제부처가 아니라 경제 관련 연구소가 아니라 경총이다. 경총이 기획재정부에 건의하는 형식을 빌렸지만, 뻔히 한통속에다 미리 약속된 맞장구지 싶다. 정책 이론에서는 그들의 연결을 정책 커뮤니티라 부를 수 있겠지만, 현상적으로는 담합에 가깝다. 구조적으로는 그들 사이의 ‘동맹’이라 불러야 한다.
사정이 급한지 이번에는 시점이 가깝다. ‘혁신성장’을 부르짖는 경제부총리가 그 일주일 전에 한 말을 경총이 받은 것이다. 제1차 혁신성장 관계장관회의 겸 제8차 경제장관회의 자리에서 부총리가 한 말은 이렇다.
“혁신성장이 말로 그치지 않고 시장과 기업,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 등 구체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고 당부했다….이어 그는 “이해관계자의 대립이나 사회 이슈화로 혁신이 잘 안 되는 분야도 규제혁신 방안을 조속히 만들어 정부 의지를 확실히 보여주겠다”라며…” (관련 기사 바로 가기)
먼저, 경제권력의 안정성과 지속성에 감탄한다는(?) 말부터. 혁신성장이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게 혁신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재탕 삼탕이다. 굳이 찾자면 구호가 달라지긴 했으니, ‘창조경제’ 대신 ‘혁신성장’을 내세웠다. 참, 그전에는 ‘녹색성장’도 있었다.
지금 부총리가 강조하는 경제정책 기조는 2013년 11월 어느 자리에서 (지금은 감옥에 있는) 전임 대통령이 했던 말과 무엇이 다른가?
“창조경제 핵심인 융복합도 서비스산업의 규제가 풀릴 때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서비스산업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쟁점이 큰 사안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창의적 대안을 강구하고 소통과 타협을 통해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그때 그 대통령 발언용 원고를 만든 사람이 이번에는 경제부총리가 말한 원고를 쓴 것인가? 설마 그럴 리가, 하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그 관료 권력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틀림없다. 유추하자면 한국 경제를 운용한다는 권력 주류는 바뀌지 않았다.
경총이 거론한 규제개혁 대상 또한 달라질 리가 없다. 인터넷 전문은행이나 5G 등 새로운 맥락을 보탠 것을 빼면 몇십 년째 그대로다. 이 또한 경총 탓이 아니라 정부와 경제권력, 지식권력 모두를 포함한 ‘체제’가 온존·유지되기 때문이다.
체제 지속의 한 가지 예. 참여정부 시절 기획예산처 장관이 썼다는 ‘재정운용’에 대한 글은 몇몇 날짜만 지우면 지금 경제부총리가 말한 것이라 해도 알아차리기 어렵다(지금 정부에서 경제정책과 인사에 영향을 미친다고 여러 언론이 보도한 바로 그 사람이다).
“민간시장에서 다양한 서비스가 공급될 수 있도록 진입제한과 같은 각종 규제를 과감하게 철폐할 필요가 있다…. 의료서비스 개선을 위한 영리법인병원 설립 허용 등,…교육·의료·보육 등 사회서비스에 대한 대폭적 규제완화를 통해 소비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겉모양뿐 아니라 정책으로 자격 미달이라는 점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른바 ‘혁신성장론’이 실체가 없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았지만, 다시 봐도 속 빈 강정이다. 기획재정부가 공식적으로 말하는 내용을 살펴도 무엇을 새롭게 하겠다는 것인지 차이를 모르겠다.
제4차 산업혁명, 과학기술 혁신,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와 ‘기업가 정신’을 말하지만(기획재정부 블로그 바로 가기), 늘 듣던 이야기 아니면 새로운 유행이다. 슘페터가 도대체 언제 적 사람이며, 창조적 파괴가 어디 하루 이틀 된 이야기인가? 이 정도를 새롭다 하면서 혁신성장이라 강변하면, 그 원인은 무능력이거나 악의, 둘 중 하나다.
혁신성장이 규제완화로 귀결되는 것은, 그래서 필연이다. 서비스 산업, 의료, 영리화, 노동과 고용이 등장하는 것도 피할 수 없다. 혁신성장론이 정치적, 사회적 권력을 얻을수록 오래된 정책 아이디어(오래된 아이디어는 형용 모순이다!)가 다시 나오고 맹목적 부추김도 강해질 것이 뻔하다.
맥락은 조금 달라졌지만, 감히 장담한다. 지금과 같은 부분적, 소극적 ‘소득주도성장론’으로는 소득 불평등을 줄이기 어렵고, 그러면 혁신성장 또는 각종 다른 성장론이 그 보란 듯 목소리를 키울 것이다. 우리는 다시 기약 없이 그 옛날 성장모델로 돌아가야 한다.
이런 혁신성장은 틀렸고, 이런 방식이면 곤란하다. 경총이 나서 단번에 혁신성장의 요체로 격상시켜 놓은 것, 영리병원과 원격의료, 의약품 산업 활성화를 또 말해야 할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과연 성장이긴 한 것인지,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또 되풀이해야 할까?
이것을 밀어붙이는 쪽의 ‘전략’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직종이나 관련자의 이해 상충이나 갈등, 나아가 이념 문제로 몰고 가는 것. 병원이, 의사가, 약사가 손해를 볼까 봐 반대하고, 반시장적인 일부(!) 시민단체나 세력이 저항하는 것으로 프레임을 만든다. 규제철폐를 말하면서 소통과 타협, 윈윈과 같은 말을 붙이는 것은 이런 뜻이다.
우리는 경제권력 사이의 이해관계 변동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유일한 관심사는 누가 어떤 진보의 혜택을 누리고 누가 그것을 부담해야 하는지다. 영리병원을 활성화하고 원격의료를 확대하면, 누가 더 좋은 보건의료 서비스를 이용하고 누구의 건강이 나아지는가?
멀리 돌아 산업이 살고 커진다 치자. 영리병원과 원격의료로 산업이 커지고 생산이 증가하면, 그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어떤 일자리가 얼마나 많이 만들어지는가? 그 과정에서 필요한 돈은 누가 부담하는가? 자신이 있으면 ‘선동’하지 말고 근거를 내놓으라.
우리는 조금도 나아지지 못한 것인가? 거의 5년 전 <서리풀 논평>을 다시 꺼내야 하는 현실이 참으로 답답하다(서리플 논평 바로 가기).
“더 좋아지는 것이 있으면 국민들도 얼마든지 그럴 태세가 되어 있을 것이다. 더 건강해지거나, 더 인간적인 서비스를 받거나, 또는……..? 그러나 아무리 봐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의료 서비스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이유는 그보다는 더 많은 경제적 이익 쪽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경제적 이익을 다시 묻자. 이렇게 커진 ‘생산’ 또는 ‘이익’은 또 누구의 것인지. 아주 큰 자본과 대형 병원 빼고 나누어 가질 게 있을지.
“이익은 사유화, 부담은 사회화”라는 신자유주의의 논리가 관철되는 것이 서비스 산업 육성의 핵심이라고 하면 지나친 주장일까. 하지만, 다른 분야는 몰라도 의료 서비스만큼은 이런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지금 경제가 답답한 형편이어도 늘 하던 방식, 더 강한 시장과 더 느슨한 규제로 돌아가서는 답이 없다. 시장주의의 사이클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 처방이 실패하면, 시장론자 그리고 주류 경제권력은 다시 더 완전한 시장과 더 철저한 규제완화를 주장할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휩쓸려서도 곤란하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한, 따라서 그들이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지금 결코 답이 될 수 없다. 고통스럽더라도 참 대안을 모색하는 시기를 견뎌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