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규제완화’를 규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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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경북 구미시에서 불산 가스 누출사고가 생겨 단번에 전국적 관심사가 되었다. 듣도 보도 못한 ‘불산’이 도대체 무엇이며, 다들 그렇게 무서운 것인가 불안이 크다.      
 
이미 여러 명의 사상자가 생겼고, 수천 명 주민이 진료를 받았다. 나중에라도 심장이나 뼈에 이상이 올 수 있다고 하니,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그 뿐인가, 경제적 피해도 엄청나다. 
 
뜬금없지만, 바로 며칠 전 미국에서 생긴 약화 사고가 자꾸 겹쳐 보인다. 곰팡이에 오염된 주사를 맞아 60명 이상이 뇌척수막염에 걸리고, 그 중 일곱 명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누가 주사를 맞았는지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 찾느라 바쁘다. 그러나 구미든 미국이든 대책이라 할 때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많다. 
 
이미 입은 피해를 본래대로 되돌릴 수는 없다. 건강 피해 역시 마찬가지다. 역학조사를 하고 장기간 꼼꼼히 살피는 것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일단 문제가 생겼다면 사고 이전으로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뒤늦게라고 외양간을 제대로 고쳐야 한다. 구미와 미국에서 생긴 사고의 경로는 닮은 것이 많다. 정부의 초기 조치가 부실했다는 것은 조금 다르지만, 해당 업체가 정부의 관리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었다는 것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 같다. 
 
관리감독이 소홀했고 모니터링이나 조사대상에서도 빠졌다는 것이 지금까지 밝혀진 실상이다. 법률의 미비를 따지는 것도 두 나라가 다르지 않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그보다 더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미국의 약화사고를 두고는 뉴욕타임스 신문이 이미 감독을 비롯한 정부의 규제 실패를 원인으로 의심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사로 다른 모습으로 생긴 사건이지만, 그 뿌리에서 규제완화라는 강고한 ‘시대정신’(?)을 꺼낸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그러나 구미 사건의 근원을 규제완화에서 찾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추론이다.   
 
현재 한국에는 행정규제기본법이 있어 “규제를 신설 또는 강화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규제개혁위원회에 규제심사를 요청”해야 한다. 중앙 차원의 규제개혁위원회뿐 아니라 어떤 부처에는 아예 규제‘완화’위원회가 있다. 
 
그 뿐인가 한창 때는 부처별로 규제완화를 추진한 성적을 매겨 발표했고, 백서를 내기도 했다. 전봇대 뽑기로 표현한 것이 몇 년 되지도 않았다. 
 
아무리 영혼이 있어도 이런 분위기에서야 꼭 필요한 규제도 풀린다. 막상 필요해도 새로 시작하기는 더 어렵다. 규제의 공백이 넓어지는 것이다.    
 
규제완화의 동기와 동력은 뻔하다. 경제 활성화, 투자 촉진, 부패 방지, 부담경감 등 겉으로는 중립적인 또는 ‘전국민적’ 이유를 내세운다. 그러나 실상 과실은 일부에게만 돌아간다.    
 
기계적으로 따라붙는 또 하나의 사족이 있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직결되는 규제는 더욱 강화한다는 다짐이다. 그러나 이 역시 대부분 공염불로 끝난다. 실적을 보고받고 백서를 만드는 데야 어떤 공무원인들 당할 재간이 없다. 
 
2011년 장원기 교수가 발표한 연구결과를 보면 이런 실상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산업안전보건 분야의 규제를 분석한 결과, 1998년에서 2002년 사이에 규제가 강화된 것은 41건인데 비해 완화된 것이 91건으로 두 배 이상 많았다. 2008년 한 해 동안은 강화가 2건, 완화가 9건이었다.
1992년 규제완화 초창기에도 비슷했다.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공장의 산업안전관리자, 보건관리자, 영양사, 조리사를 두는 기준을 낮추었다. 대기, 수질, 소음, 진동 등의 배출시설 설치허가를 간소화한다는 내용도 보인다.  
 
규제를 없애거나 줄여서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면 무엇이 문제가 되랴. 그러나 규제완화의 결과는 많은 경우 “이익의 사유화, 부담의 사회화”라는 신자유주의적 원리를 따른다. 피해가 일부 계층에 집중되고, 특히 건강과 안전은 더욱 취약하다. 
 
아주대 팀이 2010년 발표한 연구결과는 건강과 안전에 악영향이 미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1997-8년 경제위기와 더불어 산업안전보건의 규제를 완화한 결과는 생각 이상으로 뚜렷하다. 정부는 특별법을 만들면서까지 규제를 줄였다. 안전에 필요한 검사를 줄이고, 안전과 보건의 의무교육을 면제했으며, 전문인력을 고용하는 의무를 느슨하게 풀었다. 그 결과, 1997년까지 빠르게 줄어들던 산재가 이후 거의 변화가 없을 정도로 정체한다 (아래 그림). 
 

건강과 관련된 규제는 흔히 노동건강 분야가 거론되지만, 보건과 의료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의료광고와 의약품의 수퍼 판매, 고가의료장비 도입 등은 이미 완화된 규제이다. 영리병원, 외국인 환자 유치, 민간 의료보험 등은 현재진행형이다. 
 
규제 하나 하나는 시민의 건강과 뗄 수 없이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물론, 작고 큰 것이 있고, 서로 성격이 달라서 싸잡아 이야기할 수 없다. 실제 없애야 하는 규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규제가 얼마나 필요하고 잘 작동하는가 하는 분석에 초점을 맞출 일이 아니다. 핵심은 규제완화의 정치경제가 불평등 구조를 기초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구조 안에서 이익과 피해가 이중적으로 불평등하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이제 규제를 근본적으로 다시 정의해야 한다. 우선, 규제에 붙어 있는 익숙한 이데올로기, 우리도 모르는 사이 가지고 있는 인식을 해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규제완화는 특히 경제적 규제가 관료의 자기 이익, 비효율, 독점, 부정부패 등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는다. 관공서의 번잡하고 까다로운 업무처리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두 손 들어 반기리라.
 
그러나 규제를 줄이고 없애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적다. 흔히 해답이라고 생각하는 시장 원리는 또 다른 병폐를 낳는다. 규제완화의 맹신이 불러온 금융위기를 잊기에는 아직 이르다.   
 
관료주의적 통제의 병폐는 규제 완화가 아니라 ‘민주적’ 통제로 풀어야 한다. 규제를 관료의 것이 아니라 시민의 것으로, 그리고 공공의 통제로 전환해야 하는 것이다. 
 
말 많은 방송과 통신을 관료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문제라고 해서 시장에 그냥 넘길 수는 없다. 공공성을 지향하는 시민의 민주적 참여가 더 바람직한 통제 방법일 수 있다. 
 
환경이나 건강, 안전 같은 것들을 위한 규제는 더욱 강화하는 것이 맞다. 이명박 정부 들어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풀린 규제나 아예 규제할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 많다. 
 
심지어 별로 이견이 없는 금연 정책조차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 정부에서는 재(再)규제(re-regulation)가 필요하다. 이 역시 사회적 통제라고 해도 좋다.      
 
다시 구미의 불행한 사건으로 돌아가자. 규제를 완화한 것이든 아예 시작도 못한 것이든, 문제의 근본은 규제를 보는 시각에 있다. 앞으로 나올 대책을 예측하자면 관리 강화, 엄격한 감독과 처벌, 비상시 행동지침과 같은 식이 될 것이 뻔하다. 
 
그러나 관료적 통제와 시장을 시계추처럼 왕복할 일이 아니다. 규제를 사회적 통제로 전환해야 한다. 시민과 주민이 참여하고, 통제의 대상과 방법은 더욱 민주적으로 정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졸지에 건강 피해, 경제적 피해를 당한 많은 주민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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