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부동산에서 삶으로, 상품에서 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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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1%가 영향을 받을까 말까 한 ‘종부세’로 온 나라가 들썩인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변화는 예전의 ‘세금 폭탄’ 선동이 잘 먹히지 않는다는 것 정도. “나도 그 폭탄 좀 맞아보자”는 반응이 종부세의 계급성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더 내는 세금이 겨우 몇 만 원부터 몇 십만 원이냐는 한탄은 느리게나마 집단 이성이 발전한다는 신호가 아닐까 싶다.

“집 한 채 가진 사람이 무슨 죄인이냐”라는 논리는 전제부터 잘못되었다. 세금을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부를 축적하는 기반이 된 공유재에 사용료를 문다고 해야 정확하다. 도로와 지하철, 학교, 문화시설 덕분에 좋은 생활환경을 누리고 재산까지 늘었으면. 당연히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아파트 관리비만 연 500만 원 이상 내는 사람들이 소득이 없어 종부세 부담을 운운하는 것은 코미디거나 선동이다.

 

원론적으로는 이번 보유세 인상조차 턱없이 부족하다. 부동산 가격 안정이나 조세 부담 능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조세의 기본 원리 중 하나 형평성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성격이 비슷한 재산세, 자동차세, 법인세 등과 비교해보라. 소나타의 자동차세가 50만 원쯤 된다는데, 15억, 20억 하는 집에 부과되는 재산세와 종부세는? 이번 효과와 무관하게 부동산 보유세는 어떤 식으로든 정상화해야 한다.

 

보유세와 부동산 가격 안정으로 충분할까? 이 아수라장이 정리되어도 말끔하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입만 열면 수요-공급의 시장 원리를 말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예감한다. 아, 이들에게 집과 부동산은 상품이고 곧 시장이구나.

먼저 시장에 대한 오해. 일찍이 칼 폴라니가 설파했듯, ‘자기조정 시장’ 같은 것은 없다. 서울과 수도권 주택 시장은 더하다. 수요와 비교하여 공급이 모자라서 집값이 오른다는 소리는 의도를 가진 요설에 지나지 않는다. 수도권의 괜찮은 집에 대한 수요와 수요자는 5천만 국민 모두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서울 부동산을 시장이라니, 수요와 공급의 원리라니.

집 가격은 ‘자기실현적 예언’을 따르는 것이기도 하다. 값이 오른다고 예측하면 사는 쪽은 급하게 가격을 더 부르고 파는 쪽은 팔기를 미룬다. 공급은 줄고 수요는 점점 더 많아지니 가격은 스스로 예언한 대로 더 오르기 마련이다. 이런 판에 공급 확대라는 시장원리가 가당키나 한가.

 

지금 상품으로서의 주택과 부동산을 완전하게 부인할 도리는 없다. 모든 경제활동 참가자의 현실이 그렇다. 늘 전세와 월세 동향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고, ‘내 집’을 마련하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재산과 상품으로의 집은 퇴직과 실직, 창업, 노후의 삶과도 밀접하며, 때로 그 경제(그리고 삶)는 세대를 넘어 전승되기에 이른다.

이런 현실을 인정하지만, 상품화와 탈상품화가 뒤섞여 있는 것이 또 다른 현실이다. 의료가 상품이 된 지 오래지만, 따뜻하게 환자를 돌보고 공감하는 것은 아직 상품 영역 바깥에 있다. 메르스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이 상품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비용을 받는다 생각하면 지금과 같은 진료는 불가능하다. 헌혈과 장기기증까지 가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상품이지만 또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돌아가는 것이 현실의 삶이고 사회이다.

가격으로 끝나지 않으면 이 복잡하고 뿌리 깊은 문제의 실마리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집과 부동산의 가격을 넘어 (초월적으로) 탈상품화가 기본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권 세력과 정부는 이를 ‘근본적’ ‘장기적’ ‘점진적’ 과제라면서 외면하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금 그 먼 길을 서둘러 출발해야 한다.

 

몇몇 이유 가운데 첫 번째는 정책의 실용과 효과 때문이다. 시장과 상품 논리에 의존하는 한, 그린벨트까지 풀어 더 많이 공급하고 한편으로 수요를 억제한다고 해서 효과를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노무현 정부 때 그리고 이번의 부동산 가격 파동이 교훈이다. 정권을 흔들 또 다른 부동산 가격 폭등(또는 폭락) 스캔들이 언제라도 생길 수 있다.

 

둘째 이유는 집에 대한 많은 정책이 소수에게만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99% 사람들, 이 수치가 지나치다면 ‘대부분’ 사람들이라고 해도 좋을 이들에게 집은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했다. 상품이 생산되고 거래되는 시장은 이미 작동하지 않는다. 절대다수에게는 제집이나 남 집이나 집 가격과 재산 크기가 ‘그림의 떡’을 넘지 못한다.

상품이 아닌데도 상품인 것처럼 또는 작동하지 않는 시장을 완전한 시장인 것처럼 접근하면, 필시 시장은 실패하고 나아가 왜곡과 부작용이 따른다. 일부 소수를 규제하겠다는 정책이 (아무 책임이 없는) 다수에게 피해를 주는 결과가 최악의 시나리오다. 아주 작은 부동산 시장 때문에 금리를 인상한다 치자(국무총리의 주장대로). 여유 자금은 다른 투자처를 찾고 대출은 줄어 부동산 가격이 안정될까, 아니면 소액 전세 대출이 더 큰 고통을 받을까?

 

셋째 이유가 가장 중요하다. 한국적 상황을 고려해도 많은 사람에게 이제 집은 상품이 아니라 생활환경 또는 조건이 되었다. 환경이자 조건으로 삶의 질, 웰빙,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 이는 반드시 복지 그리고 권리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집은 실물의 주택으로부터 ‘삶터’로,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주거 안정성은 구구하게 말을 보탤 필요가 없다. 길어봐야 2년마다 어디서 살까 걱정해야 하면 이에 무슨 삶의 질과 품위를 따질 계제가 아니다.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닌 것이, 생활 조건의 불안정성이 몸과 마음에 직접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정설이다.

눈에 보이고 감각할 수 있는 주거 환경이 미치는 영향은 어떤가? 집을 재산과 상품으로 보는 한 주거의 이런 기능에는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부엌과 화장실, 조명, 환기 따위를 따지기도 힘에 부치면, 당사자는 아마도 개인 프라이버시, 가족 관계, 정서적 측면을 사치라 생각할 것이다. 그래도 고통은 현존하고 점증한다.

환경에서 유래하는 고통은 꼭 몸에 새겨져 드러나야 포착되고 이해되는 것일까? 건강과 질병은 고통이 드디어 몸으로 드러나는 방식 가운데 하나, 주거는 가장 중요한 ‘건강결정요인’ 중 하나다. 예를 들어, 전직 미국 보건부 고위관료이자 현직 하버드 보건대학원 교수 한 사람은 “의학적으로 볼 때 적절한 집(주거)은 예방주사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기사 바로가기). 주거 조건과 환경이 어떤지에 따라 더 잘 살기도 하며 병들 수도 있다는 뜻이다.

상품으로서의 성격을 줄이고 탈상품화에 이를 방법에 대해서는 여기서 다루지 않으려 한다. 이미 여러 가지 제안이 있거니와, 우리는 무슨 구체적 정책이나 아이디어보다는 집과 주거를 보는 기본 시각과 가치 부여가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집을 재산과 상품으로 보는 시각이 내면화한 현실도 부인하지 못한다 했으니, 작은 한 걸음 두 걸음이 꾸준히 축적되어야 함을 인정한다. 예를 들어, 확산 또는 낙수(트리클다운) 효과 때문이라도 일부 지역과 대상에 대한 가격 안정 정책은 더 강화되어야 한다. 늘어난 세금을 전가하지 않도록 전·월세 가격 상승을 통제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격 정책도 ‘기본권으로서의 주거’라는 큰 틀과 정렬되고 조화해야 함을 강조한다. 아울러 대상자별로 과제별로 주거 복지의 전망을 세우는 일이 시급하다. 예를 들어 노인, 청년층, 장애인, 빈곤 가구 등의 건강한 주거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괜찮은 공공임대주택을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 99%를 위한 건강하고 안전한 주거, 품위 있는 삶터, 그를 위한 집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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