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평화를 원하면 의료 영리화를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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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넘게 이어온 분단체제가 거의 막바지에 이른 듯하다. 비핵화와 무관하게 남한과 북한은 새로운 관계에 들어섰다고 봐야 한다. 상호관계는 단지 ‘경계’ 밖의 외부에서만 벌어지는 변화가 아니라 내부를 바꾸고 새로 만드는 ‘자기생성적(autopoietic)’인 것이다.

새로운 남북관계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양쪽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체제’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보다 왕래가 자유로워지고 교역이 느는 것, 새로운 정치·군사·외교 관계를 수립하는 것, 나아가 경제협력을 확대하는 것은 ‘조치’와 ‘사업‘과 ’정책‘에서 출발하지만 거기에 머무를 수 없다.

모두 남북의 내부를 변화시키는 계기이자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남과 북, 서로의 관계는 물론이고 남과 북의 사회 자체가 변화한다. 남한이 남북한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만, 남북한 관계는 다시 남한에 영향을 미친다.

상호관계와 상호의존인 한, 진행 중인 과정 하나하나가 지금 그리고 미래의 전모를 바꿀 수 있다. 땅 고르기는 말할 것도 없고 주춧돌과 기둥, 나아가 벽돌 하나를 어떻게 쌓는지에 따라 집이 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상호관계의 원리에 대해서는 노파심 때문이라도 특히 한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남북이 새로 만들어가는 관계는 평화를 지향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겠으나, 공허한 허상을 좇기보다 반드시 생생한 현실에서 ‘사람을 살리는 것’에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두지 않으면 안 된다.

남북합의문에 명시된 다음과 같은 조항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도 ‘구체성으로서의 평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남북공동선언 전문 바로가기).

“남과 북은 전염성 질병의 유입 및 확산 방지를 위한 긴급조치를 비롯한 방역 및 보건ㆍ의료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아무쪼록 다음 기회에는 다른 모든 세부 관계를 앞에서 끌고 갈 수 있도록 일부라도 실천을 시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남과 북이 곳곳에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나누며 같이 일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체제 변화의 밑그림 노릇을 할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새로운 남북체제는 남북한의 내부체제와 상호의존적이라 생각한다. 남북의 경제교류와 협력은 서로의 내부 경제와 무관하게 제3의 공간에서 작동하기 어렵다. 다른 분야 또한 지금 그대로를 고집하면 갈등을 피할 수 없고, 끊임없이 조화해야 파탄을 피할 수 있다.

 

여기에 이르면 남측 요인, 그중에서도 남한 경제와 사회체제가 신자유주의적 경향을 강화하는 것이 여간 걱정스러운 것이 아니다. 유례없을 정도로 극단적인 시장 만능주의는 지금 한국 사회를 규정하는 동시에 도래할 한반도 평화체제의 건전성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아니, 평화를 앞세우면 이런 체제와 사회질서, 그리고 이와 상보 관계에 있는 정신(이데올로기)이 중대한 갈등 요인으로 미래를 제약할 것이다.

중요한 실례가 건강체제와 보건의료 시스템이다. 앞서 ‘평양공동선언’의 보건의료 조항을 말했지만, 이대로 보건의료체제 또는 건강체제의 신자유주의화가 더 진전하면 장차 평화체제를 촉진하기는커녕 오히려 큰 장애 요인이 될 공산이 크다. 소극적으로 생각해도, 적극적으로 예상해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남북한 건강체제의 이질성이 커질수록 남북한 사이의 교류와 협력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혹시 인력이 교류하고 기술 지원이 필요한 때도 돈 없이 무엇이 가능하겠는가? 지금 조건이라면 남한의 어떤 병원이 경영에 직접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하려 할 것인가? 보건의료 협력은 기껏해야 공공분야, 정부 관계에 그치고 말 것이다.

시장은 소극성, 수동성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 보건의료가 북한을 돈벌이 대상으로만 보지 않을까, 심하게 말하면 ‘제국주의적’ 시장 확대와 진출의 기회로만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몇 해 전까지 광풍처럼 유행했던 의료관광 사업을 기억하면, 전혀 근거가 없는 걱정이라 하지 못할 것이다.

병원과 의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른바 의료 ‘산업’ 모두가 마찬가지다. 제약회사는 어떻게 생각할 것이며, 의료기기 기업은 무엇을 기대할까? 어떤 건설사는 병원 건축에, 어떤 정보통신 회사는 정보시스템에 목을 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 당사자들에게 ‘모른다’는 표현은 잘못이다. 그들도 알고 우리도 안다. 주식시장부터 반응하느니(기사 바로가기), 어떤 이에게 남북 평화체제는 곧 돈벌이라는 사실을. 통일을 ‘대박’이라 한 것은 딴 게 아니라 필시 돈벌이 대박을 가리킨 것이리라.

 

이런 시각이면 제도로서의 건강보험(의료보험)도 사람들의 건강과 의료 기회라기보다는 경제와 산업의 기회다. 북한이 지금 제도를 정비하거나 새로 공적 건강보장제도를 갖출 수 있으면, 구매력이 극적으로 커지면서 엄청난 의료 서비스 시장을 새로 만들어 낼 수 있다. 한국 정부나 건강보험이, 아니 그보다는 제약사, 의료기 회사, 정보통신 기업이 관심을 가질 만하지 않은가?

 

지금 체제조차 평화(체제)와 모순 관계인데, 대통령이 평양에 간 사이, 양쪽 정상이 역사적 합의를 하는 동안, 역설적이게도 사정을 더 나쁘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국회가 ‘은산분리완화’ 법안과 ‘규제프리존’ 법을 통과시킨 것이다(비판성명  바로가기).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이 법안들은 남한 경제사회체제와 건강체제의 신자유주의화를 더욱 강화하는 토대다. 규제프리존 법에 따라 특정 지역에서는 거의 모든 제약이 없어졌으니, 누군가는 그야말로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억압을 강화하며 불평등을 심화할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실패가 분명해진 경제자유구역 정책에서도 보듯이, 앞으로 ‘물꼬 효과’도 예상해야 한다. 형평을 이상하게 오용하는 정도가 유난히 심한 한국 사회에서, 물꼬를 튼 규제프리존이 일부에만 머물 것이라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은산분리가 완화되는 길 문에 들어섰으니, 그것은 시작일 뿐, 이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은 무엇을 만들어 낼 것인가?

결국 병원과 의료서비스, 약품, 의료기기, 임상시험이 어떻게 될지, 앞으로 벌어질 사태를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고삐 풀린 시장은 이제 자유 지상, 누구도 통제하기 어렵다. 자유를 누리는 그 누가 누구인가? 오랜 사회질서가, 기존 사회경제체제가 유지되는 한, 그들은 기득권자다.

 

또 한 가지. 대세에 지장 없는 사소한 법률안 또는 큰 영향을 없을 작은 조치라 치부할 일이 아니다. 다른 무엇보다, 부작용이 생기더라도 정부가 얼마든지 통제, 관리할 수 있다고 관료적으로 생각하지 말라. 지금 집권 세력과 관료의 능력으로는 ‘체제적’ 효과를 포착할 수 없다고 장담한다.

신자유주의적 사회경제의 유력한 결과이자 구성요소인 의료 영리화는 개인화 방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체제’ 문제임을 다시 강조한다. 야당 때는 반대하다 이제 와 말 뒤집기와 정략도 서슴지 않는 집권당의 행태만 봐도 그렇다(기사 바로가기). 개인 관료와 국회의원이 문제가 아니라 정치체제와 경제사회체제가 합작해 만들어내는 뚜렷한 경향성이자 흐름, 그리고 무엇보다 힘이고 동력이다.

 

다시, 이대로 가면 영리 의료가 더 강화할 것은 명약관화, 불문가지다. 의료 영리화가 남북 평화체제로 가는 길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는 것도 틀림없다. 영리가 최우선인 돈벌이 의료로, 무슨 ‘전면적’ ‘포괄적’ 보건의료 협력이 가당키나 한가.

 

알고 그러든 몰라서 그러든, 규제프리존이든 규제개혁이든, 영리 의료를 주창하고 촉진하는 자들은 그리하여 평화를 위태롭게 하는 자들이다. 설사 경제에 뭔가를 보태도(그럴 가능성이 없지만) 그것은 평화를 깨는 경제일 뿐이니, ‘우리’ 경제를 말할수록 더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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