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성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민족의 대명절이라는 한가위 연휴가 지났다. 오랜만에 만난 친지,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이들이 많았겠지만, 모두가 한결같이 즐겁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지긋지긋한 성차별, 친근함을 가장한 무례함과 강압적 관계 때문에 괴로운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관계의 부재 때문에 괴로운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전자의 문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점차 힘을 얻는 데 비해, 후자의 문제는 이제 점차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는 것 같다. 매년 명절 기간에 고립감 속에서 목숨을 끊는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은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한국에서 1인 가구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2017년 기준 1인 가구는 약 28.6%에 달하며, 매년 그 비중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제 혼밥, 혼술은 특정 세대의 특이한 문화가 아니며 소비, 주거, 문화 등 사회의 다양한 부문을 변화시키고 있다. 어쩔 수 없이 혼자 사는 경우도 있고 독립적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이든 혼자 사는 것이 바로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
그동안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채 고립된 생활을 하고 외로운 감정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건강하지 않다는 연구결과들은 많이 보고되었다. 그 중에서도 핀란드와 영국의 공동연구진이 국제 학술지 <랜싯 공중보건(The Lancet Public Health)> 2017년 4월호에 발표한 논문(☞바로 가기 : 고립되고 외로운 개인들에서 초과 사망의 기여 요인 : 영국 바이오뱅크 코호트 연구)은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이 사망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 수량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매개하는 요인은 무엇인지 확인하고자 했다. 연구팀은 영국 바이오뱅크 자료를 활용하여 45만 명이 넘는 대규모 인구 집단을 평균 6.5년 동안 추적 조사한 결과를 분석했다.
이 연구에서 사회적 고립은 1)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인지, 2) 친구나 가족을 얼마나 자주 방문하는지, 3) 여가나 사회활동에 얼마나 자주 참여하는지를 측정하여 0~3점을 부여했다. 외로움은 1) 종종 외로운 감정을 느끼는지, 2) 주변 사람에게 이를 얼마나 자주 터놓는지 측정하여 0~2점으로 평가했다. 그리고 체질량지수, 수축기와 이완기 혈압, 악력 같은 생물학적 요인들, 흡연, 음주, 신체 활동 같은 생활습관 요인, 학력, 동네 빈곤 수준, 가구 소득 같은 사회경제적 요인, 우울 증상과 인지 능력 같은 심리적 요인을 함께 측정했다.
분석 결과, 사회적 고립 정도와 외로움 정도가 클수록 총 사망률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은 경우(0점)에 비해, 사회적 고립이 심해질수록 사망 위험은 1.36배(사회적 고립 1점), 2.01배(2점), 3.38배(3점)로 점차높아졌다. 또한 외로움이 없는 경우(0점)에 비해 외로움이 있는 이들의 사망률은 각각 1.25배(외로움 1점), 1.59배(2점) 높았다. 전반적으로 남성은 여성에 비해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에 따른 사망위험 증가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표 참조).
그렇다면 이러한 사망률 차이는 무엇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연구팀은 생물학적 요인, 건강 행동, 사회경제적 요인, 우울 증상, 인지능력, 자가평가 건강 수준 등의 변수들을 차례로 분석 모형에 포함시키면서, 이들이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에 의한 사망률 증가를 설명하는 데 얼마나 기여하는지 확인했다. 사회적 고립의 경우, 건강행동과 사회경제적 요인, 자가평가 건강 수준 등이 각각 30% 이상의 상당한 기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들 요인을 모두 고려하면 사회적 고립에 따른 초과 사망 정도는 64%나 감소했다. 외로움과 관련한 사망률 증가는 특히 자가평가 건강 수준, 우울 증상의 영향이 컸으며, 이들 요인을 분석 모형에 모두 포함시키면 외로움에 따른 사망률 증가는 더 이상 관찰되지 않았다.
그림.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으로 인한 총 사망률 증가를 설명하는 요인들.
연구 결과는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이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며 심지어 사망률 증가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는 필연적 관계는 아니다. 그림에서 알 수 있듯,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은 바로 사망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건강행동과 사회경제적 조건, 우울 증상 등에 의해 매개된다. 이는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 그 자체를 줄일 수 있는 정책만큼이나 사회경제적 환경의 변화, 건강행동의 변화를 통해서도 이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혼자 살든 여럿이 살든, 주거불안 해결과 소득 보장을 통해 개인의 사회경제적 권리를 보장하고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확장하는 방안이 필요한 것이다.
1인 가구의 급속한 증가를 맞아 사회적 폐단을 강조하면서 ‘좋았던 과거’와 ‘전통적 가족제도’로의 회귀를 꾀하기보다는, 혼자 살아도 고립되지 않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금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