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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괴롭힘의 사회적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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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명 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

 

한국 사회에서 마법의 주문 같은 용어가 ‘경제 효과’다. 대개는 어떤 사업이나 정책이 우리가 상상도 못할 금액의 경제 발전을 가져온다는 식으로 쓰인다. 지난 10년 동안 가장 유명(?)했던 경제 효과 분석 사례 중 하나는 지난 2010년 G20 정상회의였을 것이다. 당시 무역협회는 G20 정상회의라는 국제공조를 통해 한국경제가 국제 금융위기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었고 그 장기적 경제 효과는 450조8000억 원에 달한다고 했다. 서울 개최라는 이벤트 자체의 직간접적 경제 효과만 해도 31조 원으로 추산되었다(☞관련 기사 : 무역協 “G20 정상회의, 한국 경제 450조 원 이상 기여”). 국제회의 한 번으로 31조 원이라니 이만한 장사가 없다. 이 정도면 2017년 10대 수출 품목 5위와 6위에 오른 평판 디스플레이나 자동차 부품의 총 수출액과 맞먹는다. 그런가하면 노동자들의 파업 때문에 하루에 1800억 원씩 손해를 본다고 주장한 기업도 있었다(☞관련 기사 : “파업 때문에 하루 손해가 1800억원? 계산기 두드려 보니?…”). 그렇다면 평소에 노동자들이 하루에 1800억 원씩 기여를 했다는 뜻인데, 이런 엄청난 ‘슈퍼 일꾼’들을 극진히 모셨다는 이야기는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다. 그동안 정부나 기업이 발표했던 경제 효과 계산에는 장밋빛 미래나 기업에 끼치는 손해만 들어있을 뿐, 노동자들 혹은 시민들이 겪는 고통과 부담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런 비용 추계는 어떤가? 최근 국제학술지 <공적 자금과 관리 Public Money & Management>에는 일터 괴롭힘이 잉글랜드 국립보건서비스(NHS, National Health Service ; 영국 NHS는 1999년에 잉글랜드,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로 분권화되었고, 이 논문은 그 중 잉글랜드 지역만을 포함한다)에 가져온 비용 부담을 추정한 논문이 실렸다(☞논문 바로 가기 : “공포의 대가”: 일터 괴롭힘이 NHS 잉글랜드에 초래한 재정 비용 추계). 영국 미들섹스 대학과 플리머스 대학 경영대 교수들의 공동 연구 결과인데, 그 비용이 연간 22억8000억 파운드, 원화로 약 3조3000억 원이나 되었다. 한국의 국민건강보험 1년 재정 규모가 약 60조 원인 것을 생각하면 이는 상당한 규모다. 과연 이러한 수치는 어떻게 도출된 것일까?

 

우선 ‘괴롭힘(bullying)’이 무엇인지부터 정의해보자. 이는 피해자를 해치거나 모욕하거나 상처가 되는 수단을 통해 가해지는 공격적이거나 위협적이거나 악의적이거나 모욕적 행동, 혹은 학대나 권력 남용을 일컫는다. 상급자/하급자, 노동자/고객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두는 ‘갑질’이라는 표현보다는 훨씬 범위가 넓다. 경영학 교수인 논문의 저자들은 그동안 일터 괴롭힘에 대한 연구들이 주로 피해 노동자들의 모욕과 죄의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정신적 스트레스 등 건강문제에 집중해 왔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지적한다. 여러 연구들이 일관되게 확인한 것은 일터 괴롭힘이 개인들 사이의 문제라기보다 근로환경과 조직의 문제라는 것이다. 대개 직무 자율성이 없거나, 변화 관리가 부적절하거나, 노동 강도 심화, 과도한 직무 요구, 일하는 데 필요한 자원의 불충분, 이기적 조직 문화, 제도적인 권력 불균형 등이 중요한 요인들이다. 그렇다면 개인의 피해를 넘어서 조직 차원에 초래하는 부담을 평가해야 하며, 그 대응 또한 개인 노동자 차원이 아니라 조직과 경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 서비스 부문, 특히 보건과 사회복지 영역은 업무 특성 상 다른 분야보다 다양한 괴롭힘에 더 많이 노출되기 쉽다. 이를테면 비상식적인 관리 압력, 동료들 사이의 무례함, 환자나 보호자로부터의 폭력 등이 그것이다. 특히 인력이 부족하고 자원이 불충분한 경우에 이러한 문제는 더욱 악화된다. 2017년 NHS 잉글랜드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서베이에 의하면, 지난 1년 동안 직원의 13%가 관리자로부터 괴롭힘, 18%는 동료, 28%는 환자와 보호자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문제를 조직에 보고한 경우는 48% 밖에 되지 않았다. 이미 2013년에도 NHS의 일터 괴롭힘 문제가 조직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한다는 보고가 있었고, 2015년에도 이 문제를 다룬 감사보고서가 발간되었다.

 

연구진은 경영학자답게 일터 괴롭힘으로 초래되는 건강문제만이 아니라, 임금 비용과 조직 관리 비용 등을 총괄하여 전체 비용을 추계했고, 이것이 결국 납세자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공적 자금인 만큼 책무성을 가지고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논문에는 여러 가지 근거자료를 일일이 소개하며 계산 과정을 상세하게 기술했지만 이 글에서는 최종 요약 결과만을 소개한다. 금액도 중요하지만, 사실 어떤 요소들을 비용으로 간주했느냐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괴롭힘으로 인한 정신건강 문제와 그로 인한 병결만이 아니라, 이렇게 병결이 발생했을 때 인력 대체에 드는 고용주의 부담, 혹은 노동자가 이직했을 때 신규 인력을 구인하거나 훈련시키기 위한 비용, 건강이 안 좋은 상황에서도 출근하는 노동자들의 생산성 저하와 고통, 노사관계 악화나 진상조사, 손해배상 등에 들어가는 비용 등이 모두 고려할 요소들이다.

① 병가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 (임금 손실액): NHS 직원들의 연간 괴롭힘 경험 비율 (24%) x 평균 병가 일수에 더해 괴롭힘 때문에 추가되는 병가 일 수 (1.71일) x 괴롭힘 이유가 아닌 평균 병가일수 (9.36일) x NHS 직원들의 평균 일당 (140.12 파운드) * 전일제 기준 직원 수 (1억460만 명) = 4억8360만 파운드 (약 7000억 원)


② 병가 때문에 고용주에게 발생하는 추가적 비용: 괴롭힘으로 병결한 직원 임금 손실액 4억8360만 파운드 x 62.5% (대체근로 인력 투입 혹은 기존 인력의 연장근로 수당 비용 60% + 결근 관리 비용 2.5%) = 3억220만 파운드 (약 4400억 원)

③ 괴롭힘으로 인한 직원 이직과 관련된 비용: 2017년 기준 직원 수 118만 명 x 괴롭힘 경험률 (24%) x 연간 이직률 (15%) x 신규 직원 구직과 훈련에 드는 비용 (5614 파운드) = 2억3190만 파운드 (약 3400억 원)

④ 괴롭힘이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 같은 부문에서 이직한 노동자가 적정 생산성에 이르기까지의 기간 (15주) x 1인 당 평균 생산성 손실 비용 (2억5281 파운드/전체 평균 28주) x 연 평균 이직 인원 (4만2681명) = 57억5700만 파운드 (약 8400억 원)

⑤ 아픈데도 억지 출근 (프리젠티즘 presentism): 병가로 인한 부담 (3억220만 파운드) x 2배 = 6억440만 파운드 (약 8천800억 원)

⑥ 괴롭힘이 노사관계, 보상, 소송비용에 미치는 영향: 조직 당 평균 괴롭힘 사례(8.5건) x NHS 조직 개수 (234개) x 조정/중재/배상 평균금액 (4만1963 파운드) = 8350만 파운드 (약 1200억 원)

 

이 금액을 모두 합치면 앞서 제시한 약 22.8억 파운드, 원화 약 3조3000억 원이 된다. 그런데도 연구진은 이것이 매우 보수적인 과소추정치라고 주장한다. 계산의 근거가 되는 수치들 중 일부는 NHS 자료가 없어서 다른 산업부문 연구결과를 가져왔는데, NHS에는 보건의료 전문직종이 많아서 인력의 숙련도가 높고 임금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으며 충분한 생산성을 발휘할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또한 이 계산에는 괴롭힘을 목격한 제3자 노동자가 경험하는 근로의욕 저하나 건강 문제, 조직의 평판 저하를 극복하는데 드는 비용, 그리고 무엇보다 환자 안전 문제 같은 중요한 외부효과들은 포함할 수 없었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현재 영국 내에서 NHS 재정절감 압력이 크지만 그로 인해 노동 강도가 더 강화되고 작업환경이 열악해지면 일터 괴롭힘 문제가 더 심화되어 서비스 질이나 직원들의 근로의욕, 재정 측면에서 오히려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일터 괴롭힘 문제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조사 체계가 마련되지 않아 문제의 진단과 해결이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NHS 직원들의 이직률, 병가 사용 실태, 평균 임금 수준, 괴롭힘 경험률 등을 산출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로서는 부럽기 그지없다.

 

한국 사회에서는 응급실 간호사나 의사가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소식이 그리 ‘놀랄 만한’ 소식이 아니다. 병원 행사에서 노출 복장으로 춤을 추는 등의 성적 괴롭힘이나 간호사들의 ‘태움’ 문화, 전공의 폭행 같은 전형적인 일터 괴롭힘 사례들도 어지간해서는 큰 뉴스거리가 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병원만 문제는 아니다. 한진이나 위디스크 사건처럼 사주의 초현실적이고 엽기적인 행각에 미치지 못할 뿐, ‘직장갑질119’에 1년 동안 제보된 ‘갑질’ 피해 사례는 2만3000여 건에 달하며 별별 해괴한 사연들이 많다(☞관련 기사 : ‘직장갑질119’ 1년, 일터는 얼마나 바뀌었을까).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이 문제를 몇몇 일탈적인 ‘사이코 상사’나 ‘진상 고객’의 문제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기업 조직의 문제, 노동자의 안전보건 문제로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 피해를 개인이 온전히 감내하거나 일터를 떠나는 것으로 해결한다.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 사례들도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개인들 사이의 문제’로 간주하기 때문에 그토록 비슷한 사건들이 전국의 일터에서 재발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일 이 논문과 비슷한 비용 추계 연구를 한국에서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아마도 훨씬 적은 비용이 추정될 것이다. 괴롭힘 좀 당했다고 쉽게 병가를 내기도 어렵고, 비정규직이 만연해 있으니 인력 대체나 신규 고용에 드는 비용도 훨씬 적을 테고, 노동자가 괴롭힘을 당했다고 해서 진상조사위원회가 만들어지거나 소송에 이르는 일도 드물기 때문이다. 예컨대 일터 괴롭힘을 호소하며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병원에서도 이후 신규 간호사를 모집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으니 말이다.

만일 일터 괴롭힘 문제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이 결근을 하고, 위험업종으로 분류되어 산재보험료가 오르고, 신규 인력을 충원하거나 기존 노동자들에게 연장 근로를 시키는데 어려움이 생기고, 진상조사위원회를 운영하거나 민사 손해배상을 하는 데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든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지금처럼 갑질이 지속될 수 있을까?

 

서지정보

Roger Kline & Duncan Lewis (2018): The price of fear: estimating the financial cost of bullying and harassment to the NHS in England, Public Money & Management, DOI: 10.1080/09540962.2018.1535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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