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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요양시설 비리, 사립유치원 비리 못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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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 연구通] 신자유주의와 노인요양시설의 공공성

 

김정우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많은 사람들이 사립유치원의 비리에 공분했지만, 사립요양시설의 비리도 그에 못지않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사립 노인요양시설 대표자들이 골프장·호텔·백화점·피부미용시설 이용비, 병원비, 여행비, 귀금속 구입비 등을 시설 회계에서 지출하는가 하면, 아예 시설 회계에서 대표자 개인계좌로 돈을 이체해 개인용도로 사용한 경우도 있었다. 부당청구는 예삿일이었다. 올 상반기에 진행한 장기요양기관 현지조사 결과 320개 기관 중 94.4%에 이르는 302개 기관이 부당 수급을 했다고 한다. 아무리 부정 수급 가능성이 있는 기관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라 해도 심각한 수준이다(☞관련 기사 : 대표의 피부미용비까지 회계로…노인요양시설 비리 심각). 이쯤 되면 어느 개인이나 특정 시설의 일탈로 보기 어렵다. 민영화, 규제 완화, 복지 축소, 노동 유연화 등을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시스템 그 자체가 문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진단은 필자만의 고유한 생각이 아니다. 최근 국제 학술지 <비판적 공중보건 Critical Public Health>에는 아일랜드의 노인요양시설 문제를 신자유주의 측면에서 분석한 논문이 실렸다(☞논문 바로 가기 : 신자유주의와 보건의료: 아일랜드 노인요양시설 부문 사례). 구체적인 신자유주의적 과정에 대해 초점을 맞춘 이 논문은 공공지출 억제와 노동의 유연화, 세금 인센티브, 공공-민간 협력(Public-Private Partnership), 국제적인 투자자와 합병 등을 살펴보았다.

 

보건의료 시스템이 영리적 모델을 따를 경우, 시장의 압력에 따라 서비스 질을 향상시키고, 경제적 효율성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존재한다. 하지만 많은 실증연구들은 그러한 기대와 다른 결과를 보여주었다. 영리적 보건의료 체계일수록 덜 효율적이면서 비용은 더 들고, 덜 평등하며 서비스의 질이 더 낮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일랜드에서 사립 노인요양시설이 크게 늘어난 것은 정부의 긴축정책 탓이었다. 아일랜드 정부는 인구 고령화로 돌봄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오히려 공공지출을 줄이면서, 대신에 사립 시설들을 장려하고 지원했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은 공공 부문에 있을 때보다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게 되었고 고용 유연성은 높아졌다. 민간 시설의 고용주들은 인력 규제가 덜한 점을 이용하여 직원 수를 줄였고, 새롭게 시장에 진입한 시설들 중 일부는 전문성이 부족해서 돌봄의 질 문제가 대두되기도 했다. 정부의 공공지출이 줄어들고 사립 노인요양시설들이 이윤을 챙기는 동안, 그 부담은 노동자와 환자들이 떠안아야 했다.

이렇게 사립 노인요양시설이 늘어나도록 만든 주요 정책은 바로 세금 인센티브였다. 1997년부터 2010년까지 지속된 이 정책은 사립 요양시설 건축과 증축을 장려했다. 2000년부터 2005년 동안, 세금 인센티브 혜택을 받지 못한 시설의 병상 수는 2.6%만 늘어난 데 비해, 혜택을 받은 시설의 병상 수는 29.4%가 늘어났다. 인센티브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사립 요양시설의 증가는 없었을 것이다.

 

최근 아일랜드 보건부는 공공 노인요양시설을 더 많이 짓겠다고 발표했다. 그 중 10개의 노인요양시설은 공공-민간 협력이라는, 이 영역에서는 그동안 전례가 없었던 방식을 통해 짓겠다고 했다. 논문에서는 이 역시 민영화의 한 형태로 간주했다. 민간 자본이 참여하면서 정부가 경제적 개입과 공적 서비스 제공에서 일정 부분 손을 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다른 부분에서 공공-민간 협력 방식으로 시설 설립이나 운영이 이루어졌지만, 이것이 공공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근거는 여전히 부족하다. 민간 운영자는 서비스 제공으로부터 이윤을 취하고, 투자는 정부보다 높은 이율로 받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민간 투자자는 이익을 취하고, 정부는 필요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국제적인 투자와 합병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지난 10년간 서구 국가들에서는 사모투자회사와 투자자 소유회사들이 노인요양시설 부문에 뛰어들었다. 커다란 기업 공급자가 지속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즉, ‘카르텔’) 돌봄(케어)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가는 것을 ‘케어텔리제이션'(‘caretelization’, Care+Cartelization)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도 했다. 아일랜드의 경우, 그동안 경제침체 때문에 유럽의 기업과 투자자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향후에는 그들의 영향력이 더 커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다.

 

한국 노인요양시설의 상황은 논문에서 설명한 신자유주의적 체계의 여러 형태들과 일부 모습을 보이지만, 핵심은 여전히 같다. 한국 정부 또한 늘어나는 돌봄 수요에 대해, 공공부문에 예산을 투입하고 공공성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고, 민간 부문의 성장을 장려했다. 물론 공공성이라는 것이 단순히 시설 소유 주체만을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논문에서는 소유 주체 뿐 아니라 재정과 관리, 서비스와 재화 생산 등 다양한 차원에서 공공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국은 공공부문의 비공공성 문제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만큼 공공부문의 비중이 작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마도 시장 중심의 돌봄 체계를 전환할 수 있는 가장 큰 동력은 시민들의 기대와 분노가 아닐까 싶다. 현재의 사립유치원 ‘사태’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와 개혁 요구처럼 말이다. ‘요양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삶의 질이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지’, ‘시설에서 근무하는 이들의 노동 조건이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지’ 하는 기대와 ‘어떻게 돌봄 시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지?’ 하는 분노. 가장 기본적인 기대와 분노이지만, 이것만큼 개혁을 추동하기에 강력한 힘은 없다.

 

* 서지정보

Mercille, J. (2018). Neoliberalism and health care: the case of the Irish nursing home sector. Critical Public Health, 28(5), 546–559. https://doi.org/10.1080/09581596.2017.1371277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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