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연구通] 임신중단 합법화와 안전한 서비스 제공을 넘어
김성이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2016년 10월에 시작하여 지금까지 수많은 여성들을 거리와 광장으로, 또 온라인 국민청원으로 모이게 만든 중요한 의제 중 하나는 임신중단 합법화 요구였다(“내 자궁에 간섭마” 서울 도심서 열린 한국판 ‘검은 시위’, 낙태죄 폐지 국민청원에…. 靑 “내년 실태조사, 낙태죄 폐지 격론 벌어진 헌법재판소 “여성 자기결정권 침해” vs. “태아 생명권 보장”, ‘도심 낙태죄 폐지 집회… 임신중지여성 범죄자 낙인찍기 그만’). 이 추운 날씨에도 헌법재판소 앞에서는 낙태죄 위헌판결을 촉구하는 여성들이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 문제를 이야기할 때 우선 인정해야 할 사실은 완벽한 피임이란 없다는 점이다. 또한 종교나 정치적 이유로 엄격히 불법화하더라도 여성들의 임신중단 요구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유럽과 북미의 많은 국가들은 임신중단 자체를 합법화하고 임신중단의 사유, 허용의 임신 주수, 임신중단 서비스 제공 인력과 기관, 의료비용 등을 관리하면서 ‘안전한 임신중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게다가 임신중단 서비스에 대해 전액 보험급여를 적용하고, 10대 청소년들의 경우 익명으로 무료 피임약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며, 최소 성찰 기간을 폐지하는 등 접근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임신중단 시술 이후에 일어날 수 있는 정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돌봄을 의무화하거나 피임정보를 제공하는 등 단순히 임신중단 서비스 제공 여부를 넘어서, 재생산권에 대한 폭넓은 보장으로 논의가 확장되고 있다(프랑스 보건사회부, 2016; Levels, M, 2014).
아무리 임신중단이 합법화 되고 서비스 접근성이 높아진다 한들, 임신중단의 경험 자체가 여성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다. 임신중단은 많은 여성들에게 ‘중요하지만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경험’이며, 따라서 단지 법제화나 기술 도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최근 <스칸디나비아 공중보건학회지>에는 임신중단에 대한 여성들의 경험과 감정을 이해하고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어야 더욱 안전한 임신중단 서비스가 될 수 있다는 논문이 발표되었다.
덴마크 코펜하겐대학교 샬럿 카스트럽 연구팀은 여성들이 임신중단의 방법들 즉, 약물을 이용하는 내과적 방법과 수술에 의한 외과적 방법을 각각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이유로 선택하게 되는지 알아보았다(문헌 바로가기: 여성들의 임신중단 방법 선택 이유: 체계적 문헌고찰). 연구팀은 임신중단 경험이 있고 임신중단방법 선택 사유를 밝힌 여성들이 포함된 논문들에 대한 체계적 문헌분석을 실시했다(18세 이상, 임신 12주 미만, 의학적 사유 등으로 임신중단을 했던 사례 제외, 참여 여성 6,033명). 문헌들의 종합 결과, 여성들이 임신중단방법을 선택하는 기준은 5가지로 개념화할 수 있었다.
첫째, 내과적 임신중단이 외과적 임신중단보다 간단하고 보다 자연스럽다는 인식이다. 많은 여성들은 내과적 방법이 자연유산과 비슷하게 이루어지고, 자신이 지내던 집에서 파트너와 함께 안전하고 익숙한 환경에서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더 적게 받고 스스로 통제감을 느낀다고 했다.
둘째, 출혈이나 합병증에 대한 두려움이다. 내과적 임신중단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외과적 방법이 자궁 천공같은 합병증이나 감염을 유발할까 우려했다. 반면 외과적 방법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약물적 방법이 과다출혈을 일으키고 배출 과정에서 태아의 일부를 보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셋째, 마취나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다. 내과적 방법을 선택하는 많은 여성들은 마취나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컸다.
넷째, 임신중단 절차에 걸리는 시간이다. 임신중단을 결정한 여성들은 내과적 방법이건 외과적 방법이건 빨리 끝나는 방법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다. 국가별로 서비스 제공방식에 따라 내과적 방법이 수술에 따른 대기시간이 없기 때문에 선호되기도 했고, 외과적 방법이 병원방문횟수나 전체 과정이 짧게 끝나기 때문에 선택되기도 했다.
다섯째, 임신중단시술이 진행되는 동안 의식이 깨어있는지 여부이다. 시술 동안 의식이 유지되길 바라는 여성들은 내과적 방법을, 임신중단이라는 경험을 피하고 싶은 여성들은 진정제를 투여하는 외과적 방법을 선호했다.
연구팀은 이런 분석을 통해 여성들이 임신중단 방법을 선택할 때 보건의료전문가로부터 얻는 생의학적 정보뿐 아니라, 이전의 임신중단 경험이나 각 방법의 합병증에 대한 두려움에 근거해 결정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특히 여성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임신중단 방법을 선택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내과적 방법을 선택한 여성들은 수술이나 마취를 두려워했지만, 실제로 임신중단 수술로 사망할 위험은 다른 수술과정에 비하여 매우 낮다. 반대로 심한 출혈이나 ‘혈전’을 볼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내과적 방법을 회피한 여성들은 무엇을 보게 될지 확실하지도 않은데 그것을 태아나 태아의 일부라고 간주했다. 덴마크를 비롯한 여러 국가들에서 자가 약물유도에 의한 임신중단은 8주까지 가능하다. 이 시점에서 태아의 크기는 약 15mm에 불과하며 점액과 혈액 속에 묻혀 있어서 사실 누구라도 식별하기 쉽지가 않다. 이러한 내과적, 외과적 방법에 대한 반응은 모두 과도한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이처럼 임신중단 방법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나라에서조차 여성들은 정보가 불충분한 채로 개인적 경험, 두려움의 감정에 근거해 결정을 내리고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대부부의 의료인들은 여성들이 생의학적 정보에 근거해 임신중단 방법을 선택할 것이라 믿고 생의학적 사실을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추며, 여성들의 감정적 또는 편향적 태도를 ‘낙태에 관한 미신’으로 간단하게 언급할 뿐이라고 이 연구는 지적한다. 따라서 임신중단 서비스는 이용자 여성들의 입장에서 필요한 효과적인 정보를 제공해야 하고, 보건의료전문가는 여성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복잡한 감정들까지 고려해야한다고 제언한다.
한국은 오랫동안 선택의 여지없이 외과적 방법에 의한 ‘불법’ 임신중단 수술만이 존재해왔다. 그마저도 ‘낙태죄’라는 이름으로 여성에게만 책임을 묻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은 홀로 건강상의 위험이나 금전적 부담을 감내해야 했다. 수술과정에 대한 설명은커녕 의료진에게 면책각서를 강요받는 등 환자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고, 임신중단 사실은 관계 정리를 거부하는 남성에 의해 협박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미 안전성과 효과성이 입증된 임신중단 유도약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이다. 의학의 발전에 의해 보다 안전한 방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이러한 기술 발전의 혜택을 향유할 수도, 자기 몸과 건강, 삶의 방식에 대해 주체적 결정을 내릴 수도 없었다. 꼼짝없이 ‘불법적’ 존재로 살아온 여성들에게 이제 국가와 사회가 답해야 할 때이다. 2018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참고문헌
– CHARLOTTE KANSTRUP, MARJUKKA MAKELA & ANETTE HAUSKOV GRAUNGAARD. Women’s reasons for choosing abortion method: A systematic literature review. Scandinavian Journal of Public Health 2018; 46 : 835-845
– 최규진, 낙태에 대한 개방적 접근의 필요성, 생명, 윤리와 정책 2(1). 2018.
-Levels, M., Sluiter, R., & Need, A. (2014). A review of abortion laws in Western-European countries. A cross-national comparison of legal developments between 1960 and 2010. Health policy, 118(1), 95-104 (번역) 박건, 서유럽 국가들에서의 낙태법 리뷰. 의료와 사회 (8).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