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인수위원회가 바쁘다. 그러나 일을 하는 사람이나 일을 하는 방식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꽤 높다. 혼란을 피한다는 이유로 문을 걸어 잠그고 무슨 군사작전 하듯 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아쉽다.
행정적인 사항을 인수인계하려는 것이면 굳이 인수위원회가 왜 필요할까. 필요한 보고를 받고 파악하면 그만이다. 복잡하게 조직을 짜고 기자들이 보는 가운데에 논의하는 모양을 보일 필요가 무엇인가.
인수는 행정이 아니다. 공약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음 정부의 국정방향을 논의하고 정하는 것이 인수위 기능의 핵심이다. 5년간 추진할 정책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의논할 것이 아니면 (당선자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데) 인수위는 번거로울 뿐이다.
국정의 방향과 전략을 세우는 것이 핵심이고, 그것도 국민이 주인이 되어 참여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언론 취재가 어렵고 예측이 어렵다는 것은 차라리 큰 문제가 아니다. 정권 인수가 무슨 동창회장 인수인계도 아니라면 국민이 알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일을 평가하는 것도 그렇고 앞일을 계획하는 것 또한 국민의 눈이 필요하다.
정권을 인수한다고 하지만, 어느 개인이나 정파의 사사로운 것이 아니다. 따지자면 모든 이의 운명과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국정을 대상으로 한다. 만약 투표가 끝났으니 상관하지 말라는 것이라면 어떤 의미에서도 민주주의의 원리를 위반하는 것이다. 당선자를 지지하지 않은 유권자 또한 당연히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국정이 찬성 투표를 한 51.6%만을 위한 것일 리 없다.
결국 현재의 인수위는 성격 규정을 잘못한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사실 규정을 잘못했다기보다 정권을 인수한다는 것, 또는 국정을 운영한다는 것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사사로움이 지나치다는 이런 걱정이 노파심으로 끝나길 바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건강과 보건의료 정책도 새롭게 논의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 더 두고 볼 일이지만, 지금까지 분위기로는 신통한 반전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공약을 지키는데 돈이 남느니 모자라느니 하는 논의가 전부가 아닐까 싶다. 그나마 무슨 보고를 했는지 논의는 뭘 했는지 루머에 가까운 소문만 들린다.
바꾸려고 해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 한계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인수위가 일하는 방식을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 조금 시끄럽고 혼란스러워도 이게 더 (당선자가 좋아할 것 같은 말로 하면) ‘효율적’이다.
건강 정책 분야만 보면, 5년간의 국정 목표와 전략을 다시 논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건강보험의 보장성, 그것도 4대 중점질환으로 맞추어져 있는 정부의 관심을 크게 넓히는 일이 필요하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물론 중요하다. 많은 사람이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라도 다시 희망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미완성인 건강보험을 더 발전시키는 책임은 다음 정부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실 1989년(전국민 의료보험제도가 시작된 해) 이후 한국의 건강정책과 보건의료정책을 지배해 온 주류 패러다임이 바로 건강보험과 의료 이용이다.
25년 가깝게 지속된 ‘1989년 체제’의 결과, 이제는 정부도 국민도 ‘건강=의료=건강보험’이라는 공식에 익숙하다. 그 덕분에 좋아진 것이 없다고 못한다. 그러나 부정적인 측면이 나타난 것도 사실이다.
건강 대책이 너무 좁아졌다는 것이 새로운 문제다. 앞으로는 더 큰 문제가 될 것 같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건강보험을 뺀 나머지는 부록이나 우수리 정도의 처지가 되었다. 그나마 ‘건강’보험도 사실 건강 위주가 아니다. 이름과 달리 ‘의료’보험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가지 못했다.
차분히 생각해 보면 대부분 사람이 동의한다. 건강은 의료 서비스만으로 이룰 수 없고 건강보험만으로 다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현실에서는 의료가 더 급하고 건강보험이 이를 뒷받침한다. 건강보험과 의료에 일차적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건강보험은 거기까지, 병이 생긴 이후에 작동하는 것이 본래의 사명이다. 조금씩 혜택의 범위를 넓혀 왔지만, 건강검진이나 예방접종 같이 치료에 비교적 가까운 역할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이제 그 모순이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나 건강보험이 ‘건강’이라는 인간 사회의 목표를 모두 감당하지 못하니 당연하다. 최근 몇 년 사이 많은 사람이 고통 받고 있는 중요한 건강 문제만 봐도 그렇다.
암, 심장병, 치매의 치료비를 줄일 수는 있지만 병을 피하는 것은 딴 일이다. 의료보험의 틀로는, 집합적 방식으로 표현하면, ‘질병 부담’을 줄이기 어렵다.
‘사회적’ 원인에 대처하는 데에는 더 무력하다. 자살과 교통사고, 산재 사망을 줄이는 것은 의료보험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보험이 문제가 아니라 보건이나 의료보다는 훨씬 더 넓은 시각에서 봐야 무언가 할 수 있는 틈이 생긴다.
생물학적 특성이 강한 병은 그나마 좀 나을 수도 있다. 결핵은 결핵균을 없애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 그러나 모든 질병은 생각보다 훨씬 더 사회적이다. 영양, 주거, 환경, 더 나아가면 빈곤이라는 사회적 요인을 손대지 않고는 결핵은 그대로다. 콜레스테롤을 낮추면 심장병이 줄어들겠지만, 운동과 음식, 노동과 소득은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결국, 건강정책의 틀을 확대하지 않는 한, 정책은 건강의 아주 일부만 다루는 셈이 된다. 건강정책의 협소함은 단지 추상이나 이론이 아니라 매일 부닥치는 문제이다. 틀과 범위를 ‘건강=의료=건강보험’에 두는 한, 삼성전자의 백혈병과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자살을 막을 길이 없다. 쪽방 노인의 고혈압과 심장병, 고독사도 마찬가지다.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국가 건강정책의 틀을 다시 짤 것을 제안한다. 이럴 때마다 다른 나라 예를 동원하는 것은 마뜩잖지만, 우리와는 달리 생각하는 나라가 있다는 정도는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 바로 스웨덴이다.
스웨덴 국가보건위원회는 2000년에 19가지 건강정책의 목표를 제안했다(바로가기). 언뜻 봐서는 노동부나 교육부가 해야 할 법한 목표가 꽤 많다. ‘전통적’ 의미에서 보건부 소관이랄 수 있는 것은 절반도 안 된다.
몇 가지만 보면 이런 식이다.
–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를 0.25 미만으로 낮춤.
– 빈곤율을 4% 미만으로 낮춤(유럽연합 기준).
– 1998년 당시 총선에서 투표율이 60%에 미치지 못했던 지역의 투표율을 5% 이상 올리기.
– 고용률을 85% 이상으로 증가시키고, 장기 실업률은 0.5%로 낮춤.
– 취약한 지역에서 자라는 어린이의 비율을 10% 미만으로 줄임.
– 모든 학생들이 중등학교 교육과정을 마칠 수 있게 함.
격렬한 논쟁을 거쳐 수정된 후 정부의 공식목표가 되었는데 처음 모양은 많이 달라졌다. 주목할 것은 지표나 목표치가 아니라 이들이 건강 정책을 바라보는 눈이다. 또한 참여와 사회적 토론을 거쳐 국가 목표로 만들어가는 과정 역시 배울 만하다.
교훈으로 삼을 수는 있어도 한국에서 당장 이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달 남짓 활동 기간이 남은 인수위원회가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일까도 싶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이 건강 정책의 새로운 틀을 논의할 계기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완전히 접고 싶지는 않다.
물론 보수 정권으로서의 한계를 충분히 예측한다. 사회적 요인까지 포함하는 것은 더더구나 내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새 정부로서도 건강 정책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 꼭 손해가 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세계보건기구가 강조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정책의 기술적 효율성을 달성하는 데에도 언젠가는 거쳐야 할 과정이기 때문이다. 현장의 소리를 더 많이 듣고, 진지하게 고려하고 논의할 것을 당부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