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복지 공약은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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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복지정책이 시끄럽다. 재원을 두고 시시비비가 한창이다. 이런 저런 ‘계산’을 보면 그러게도 생겼다. 며칠 전 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대로라면, 공약을 다 지키기 위해서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105조 가량이 더 든다고 한다.  
 
기다렸다는 듯 미리 짐작했던 반응들이 쏟아지고 있다. 공약을 다 지킬 생각을 접으라는 훈수부터 복지국가 망국론까지 다양하다. 잠잠했던 그리스, 스페인도 다시 살아났다. 특히 보수 언론과 경제 신문, 여당 국회의원들이 ‘출구전략’을 주도하고 있다.    
 
인수위원회는 짐짓 ‘공약대로’를 외치고 있지만, 여론을 떠보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재정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더 커지면서 마지못해 복지공약을 ‘재조정’할 가능성도 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냉소적 예상은 이번에도 크게 벗어나지 않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 이미 내놓은 복지공약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안 될 줄 알면서도 괜히 그러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를 처음부터 흔들려는 ‘꼼수’와는 더구나 거리가 멀다. 다른 무엇보다 보통 사람들, 가난한 이들의 고단한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라는 것이 첫 번째다.       
 
축소나 폐기를 검토한다는 소리가 들리는 기초연금만 해도 그렇다. 65세 이상 노인에게 월 20만원을 지급한다는 것인데, 이 공약을 폐기하고서 지금 어떤 정책이 노인 빈곤을 줄일 수 있을까. 한국의 노인 자살률은 세계적으로도 악명 높다. 빈곤이 핵심 원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4대 중증질환 100% 보장이란 공약도 마찬가지다. 건강보험을 다른 나라에 자랑한다지만, 큰 병에 집안이 풍비박산 난다는 불안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비급여를 빼는 것으로 공약을 바꾸면 아무 의미가 없다. 경제적 부담의 주범이 이미 비급여로 옮겨 갔는데, 그걸 뺀다니.
 
몇 가지 정책만 하더라도 재정 수요는 크다. ‘획기적’인 재정 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어느 계산이 맞는지 판단하려고 하지 않는다. 서로 계산이 다를뿐더러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규모가 달라진다.  
 
이미 재정 논의는 많이 진행되었다. 당선인 쪽은 지출구조를 조정하는 방법이나 지하경제 양성화, 또는 비과세와 조세감면을 축소하는 간접 증세 방안을 내놓았다. 한편에서는 그것으로는 턱없이 모자란다고 주장한다. 아닌 게 아니라 편견 없이 보더라도 정부 여당의 방안만 가지고는 충분할 것 같지 않다. 
   
결국 복지 재정을 두고는 증세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나눠지는 길을 피할 수 없다. 대체로 진보 진영이 증세에 찬성하고 보수 진영은 반대가 많은 듯하다. 그러나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증세에 찬성해도 어떤 증세인가가 다시 문제이다. 
 
그러나 현재 방식의 복지 재정 논의는 딱 여기까지다. 다른 것은 두고 어느 쪽 계산이 맞는지만 다투는 것은 허무하다. 승패를 가릴 수 없는 데다, 한 쪽만 보는 잘못을 범하기 쉽다. 
 
다시 말하지만, 얼마나 돈이 필요한가 그리고 어디서 돈을 마련할 것인가에만 온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적어도 세 가지 점에서 그렇다. 
 
첫째, 복지의 재정은 이미 주어진 수입과 지출을 맞추는 기술적인 것이 아니다. 수입과 지출은 어떤 복지체계 어떤 복지 혜택인지에 따라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복지 재정은 ‘정치’의 문제임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재정을 고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어떤 복지체계를 갖출 것인가를 먼저 정해야 하고, 재정은 그 다음이다. 재정을 어디 먼저 쓸 것인가 하는 우선순위는 어떤 정부가 무엇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가를 반영한다. 그런 점에서 완전히 정치적이다. 
 
그렇다면 다시 논의를 어떤 복지가 왜 필요한가로 논의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기초연금은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노인 빈곤이 핵심 동인이다. 4대 중증질환을 무료로 치료할 수 있게 한다는 것 역시 통계 지표를 좋게 보이는 것이 본질일 리 없다. 
 
더 근본적으로는 어떤 복지인지를 말해야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도 정해진다. 4대 중증질환만 하더라도 누구를 대상으로 어디까지 보장할지를 정해야 어디에서 어떤 방법으로 돈을 더 마련할지를 논의할 수 있다. 빈곤층만 보장한다면 모든 보험 가입자에게 보험료를 더 걷겠다고 하기는 어렵다.   
 
둘째, 재정은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독립적인 것이 아니다. 다시 4대 중증질환을 생각해 보자. 비급여에 들어가는 재정이 문제라면, 이를 줄이기 위해서도 어떤 방식으로든 비급여를 변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비급여로 인한 복지재정의 압박은 비급여를 관리하는 새로운 틀을 요구한다. 현재의 비급여와 그 관리체계를 그대로 둔 채 앞으로도 그만한 재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기계적이고 정태적이다. 
 
재정은 복지 확대에 필요한 투입물이지만 그 때 재정은 이미 새로운 복지체계, 변화된 복지 구조를 전제로 한다. 필요한 재정은 새로운 복지체계의 새로운 결과물이어야 마땅하다. 재정 논의는 복지체계 개편과 따로 가지 못한다.   
 
셋째, 재정 문제에 집중하면 전문가의 시각에 치우치기 쉽다. 겉으로 보기에 복지 재정 논의는 매우 복잡하고 전문적이다. 재정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몇 조 몇 천억이라는 계산결과를 내세우면 더 이상 다른 논의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전문성의 이름 아래 복잡한 숫자 놀음이 되면 숫자는 구체적 의미를 갖기보다 당연히 진리라는 일종의 권력을 갖게 된다. 그래서 으레 ‘지속 불가능’ ‘재정 건전성’ ‘세금 폭탄’ 등의 익숙한 결론이 뒤에 따라 붙는다. 진리의 이름으로 중립성을 가장하면서 사실상 편향된 결정을 압박하기 쉽다. 
 
게다가 ‘그들만의’ 재정 계산은 기술적인 정확성조차 보장하지 못한다. 몇 번씩 따져봤다는 계산이 비슷한 성향의 집단 사이에서도 크게 다르다는 것은 그 반증이다. 
 
전문가 위주의 논의에는 사실 더 큰 문제가 있다. 전문성을 앞세워 일반 사람들의 참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사회적으로 불리한 사람들의 참여는 더욱 더 어렵다. 그러나 이들이야말로 복지체계에 가장 큰 영향을 받고, 그만큼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다시 정리해 보자. 숫자에 그치지만 않는다면, 복지 재정을 논쟁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있다. 한국 복지의 기본 틀을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추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을 올릴 것인가 아닌가 하는 질문은 얼마나 중요한가. 어떻게 쓸 것인가를 논의하는 것도 꼭 같다. 폭발성이 강한 재정 논의야말로 본격적인 복지 논쟁에 불쏘시개 구실을 할 것이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몇 조가 더 필요한가 따지고 계산하는 것은 더욱 더 이차적 문제다. 다시 강조하지만, 어떤 복지가 왜 필요한가를 먼저 논의해야 한다. 재정은 그것을 실현하는 수단일 뿐이다. 수단에 집중하느라 목적을 잊어버리는 잘못을 범하지 않기 바란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의 복지 공약을 바꿀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복지 요구의 측면에서 보면 최소한에 가깝기 때문이다. 다들 부족함을 말하고 조정과 보완을 요구하지만, 아예 필요하지 않은 공약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박근혜표 복지 공약의 현실의 근거는 분명하다. 재정을 거기에 맞추는 것이 순서다. 그래서 공약은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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