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연구通] 원격의료, 과연 시민 건강에 이로울까?
미음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정부가 신성장 동력 발굴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ICT 강국이라는 오래된 타이틀과 압도적인 인터넷-스마트폰 사용률은 통신망 하나로 기존 산업군을 전부 데이터-화할 수 있다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게 하는 모양이다. 한 차원 높은 ICT 기술,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도입되면 정말 우리 사회가 좋아질까?
2018년 한해, 보건의료계도 장밋빛 돌풍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정부의 규제 완화 기조 아래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원격 의료 이슈에도 다시 불이 붙었다. 작년 7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 사각지대 환자를 위한 조건부 원격 의료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의료계, 시민 단체의 반발에 복지부는 “조건부 원격 의료는 국민 건강을 위한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아래와 같은 발언은 우리 사회가 ‘신기술 도입=사회 진보’라고 생각하는 구태의연한 프레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음을 확인시켜 준다.
– “전 세계적으로 진전되고 있는 원격 의료 물결을 타지 않으면 한국 의료가 톱(top) 지위를 지키기 어렵다.” (박능후 장관. 2018년 7월 19일. 취임 1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 “막연한 두려움, 산업화 같은 허상이 원격 의료 논의를 가로막고 있다, 원격 의료 기술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다.” (박능후 장관. 2018년 7월 .24일. 전문기자협의회 간담회에서)
박능후 장관의 ‘원격 의료’는 현행 의료법 34조가 제한적으로 허용 중인 원격지 의료진에 대한 또 다른 의료진의 지식, 기술지원을 넘어서는, 의료진에 의한 환자 직접 원격 진료 행위를 겨냥한다. 헌법 127조에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 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했고, 또한 기술은 가치중립적이니 우리가 선한 의도로 원격 의료의 선한 기능을 활용하면 된다는 식이다(☞관련 기사 : “다시 불붙은 원격의료 논란”).
우리는 무엇으로 원격 의료의 선한 기능을 평가해야 할까? 작년 5월 국제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Social Science & Medicine)>에 실린 영국 브라이튼 대학 연구팀의 논문 ‘디지털 헬스의 양가성 (논문 바로가기: Ambivalence in digital health: Co-designing an mHealth platform for HIV care)’은 원격 의료 기술과 기술 사용자의 상호작용을 질적으로 분석한 좋은 참고자료가 된다.
연구팀은 모바일 헬스케어 플랫폼을 활용해 의료 데이터를 받고 의료진과 원격으로 건강 상태를 점검하는 HIV 감염자 97명(이하 ‘사용자’)을 인터뷰했다. (이 프로젝트(EmERGE)는 유럽 대규모 R&D 프로그램인 ‘Horizon 2020’의 지원을 받았다. 에이즈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모바일 헬스케어 플랫폼을 개발하되, 질적 연구를 통해 사용자의 기술 경험을 개발 과정에 반영하는 것이 목표다. ☞관련 자료 바로 가기)
이들 연구진은 사회학의 ‘양가성’ 개념을 연구의 이론적 자원으로 삼았다.
기술사회적(sociotechnological) 변화를 경험하는 어떤 사회의 특정 현상은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선한 원격 의료’ 대 의료 영리화를 부추기는 ‘악한 원격 의료'”처럼 대립적 면모로 묘사되기 쉽다. 연구진은 양가성을 통한 접근이 상반된 입장, 개인-집단 등 다양한 수준의 해석을 포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전제 하에 ‘모바일 기술로 환자의 건강 모니터링이 가능해진’ 2010년도 현대 유럽 사회의 한 장면을 다층적으로 접근한다.
모바일 헬스케어 플랫폼 사용자 97명의 상호작용 경험은 세 가지 차원의 양가성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사용자의 건강 데이터 인식 차이에서 첫 번째 양가성(A1)을 발견한다. 한쪽 사용자 그룹(A1_1)은 모바일 앱에 표시된 건강 데이터와 의료진이 해석한 데이터를 엄격히 구분했다. 이들에게 의료진이 해석해주지 않은 데이터는 단순한 수치, 가끔은 수치에 담긴 의미를 알 수 없기에 불안과 공포를 불러오는 숫자다. 이들 사용자는 무지의 공포를 잠재우기 위해 의료진과의 진료 시간을 더욱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다른 쪽 그룹(A1_2)은 건강 데이터를 나의 현재 상태를 적시에 확인시켜주는 편리한 정보로 인식한다. 한 60대 사용자는 “오늘 기록한 데이터, 그간 누적된 그래프, 권장 수치 등을 보고 스스로 내일 출근할지 말지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아주 중요한 검진이 아니라면 굳이 병원까지 나가는 수고를 겪고 싶지 않다.
두 번째 양가성(A2)은 사용자가 자신과 디지털 공간의 연결성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서 비롯된다. 디지털 공간을 신뢰하지 않는 그룹(A2_1)은 내 병력을 오직 의료진에게만 공개하고 싶어 한다. 그 때문에 어떤 이는 의료진과 모바일 앱으로 소통하는 방식이 “의료진과의 친밀한 관계를 약화시킬까봐 걱정”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모바일 앱으로 원치 않은 인간관계가 생겨 민감한 정보를 침해받을까 걱정했고, 건강 정보는 디지털 공간이 아닌 진료소 같은 물리적 장소에서 보호될 수 있다고 믿었다.
다른 한쪽에는 비가시적인 네트워크를 더 신뢰하는 그룹(A2_2)이 있다. 이들은 디지털 공간 밖으로 나가는 것에 더 큰 위험 부담으로 느낀다. 병원에서 우연히 내 병력을 모르는 사람과 마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사용자는 “(필요할 때마다 밖에 나가지 않아도) 모바일 앱이 나와 의료진을 항상 연결해주고 있기 때문에” 모바일 헬스케어 플랫폼을 더 안전한 공간으로 여겼다.
모바일 앱의 알람 기능을 대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났다(A3). 평소 기술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 패턴에 따라 건강을 관리하는 그룹(A3_1)은 모바일 알람을 일상을 망치는 방해 요소로 취급했다. “내가 원치 않을 때도 알림이 오니 필요 이상으로 건강 상태에 집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그룹(A3_2)은 원래부터 핸드폰으로 약 복용 시간을 체크하는 등 모바일 기술을 컨디션 관리 과정에 적극 활용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알람 기능은 건강 문제 해결을 도와주는 좋은 보조 수단이다.
연구팀은 모바일 헬스케어 플랫폼에 대한 한 사람의 평가가 일관된 것이 아니라 다층적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가령 오늘의 건강 데이터를 보고 불안에 빠진 사용자가(A1_1) 채팅 기능으로 궁금한 점을 바로 물어볼 수도 있다(A2_2). 모바일 알람 기능은 선호하지만(A3_2) 플랫폼에 내 건강 정보가 남는 것은 원치 않는(A2_1) 사람도 있다.
이러한 복잡한 현실을 두고 ‘수용 혹은 거부’라는 양극의 평가 축으로 재단해서는 기술이 한 인간/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단편적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 사용자가 기술을 사용하는 맥락과 환경도 간과할 수 없다. 위 연구 사례에서 모바일 앱 정보를 능숙하게 사용하던 60대 사용자처럼 기술 문해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원격 의료 기술을 다양한 의사결정 상황에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역시 평소에 특별한 건강 문제를 겪고 있지 않다면 “이 앱 한 번 써봐”라는 권유는 그저 귀찮은 참견에 불과할 것이다.
국내에서도 좁은 의미의 원격 의료가 그나마 빗장을 걸고 있는 것과 달리, 스마트폰으로 개인 건강 상태를 기록, 관리할 수 있는 앱은 곳곳에 널렸다. 이를 복지부가 ‘원격 모니터링’이라는 별도 범주로 허용하는 ‘넓은 의미의 원격 의료’라고 하자. 복지부는 2016년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가 의뢰한 원격 모니터링 유권 해석에 대해 “개인정보 동의를 받은 경우 건강 상태에 대한 모니터링 정보를 의료진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어떤 이는 모바일 앱과 혁신 의료 기기로 자신을 ‘헬스케어’하고, 어떤 이는 수집된 데이터로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고, 어떤 이는 의료 체계의 빈 구석을 원격 기술로 채울 수 있다. 이러한 광의의 원격 의료는 건강 증진과 산업 혁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다 줄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원격 의료가 의료 패러다임을 ‘환자 중심’으로 변화시키고, ‘맞춤 의료’라는 새로운 돌봄 방식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는 비단 산업계만의 논리가 아니다. 병원에 갈 시간이 없는 바쁜 현대인, 명의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 3분 진료에 지쳐 돌아 나오는 사람들 모두에게 환자 중심과 맞춤의료라는 말만큼 좋은 것이 어디 있겠나?
그러나 오늘 소개한 논문에서 살펴본 것처럼, 기술은 사용자들에게 항상 같은 의미를 갖거나 같은 효용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기술 그 자체가 바로 진보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기술은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와 효용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기술이 낳은 새로운 우려가 단순한 기우로 끝나지 않은 경우도 우리는 역사적으로 많이 보았다.
복지부 장관은 작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좁은 의미의 원격 의료 도입도 “일단 한 번 시도해보고 적절성 여부를 따져야 한다”고 했다. 18년간 지지부진하게 진행된 시범 사업 결과물을 다시 추리는 일은 분명 필요해 보인다. 다만 기술의 사용자들, 시민사회의 우려를 일축한 채 이전처럼 장밋빛 포장지만 다시 꺼내드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복지부 장관은 진지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현재 시민들이 건강관리를 제대로 받기 어려운 이유, 채워지지 않는 양질의 믿을만한 의료서비스 요구가 과연 원격의료 부재 때문에 벌어진 일인가, 원격의료만 도입하면 이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는가 말이다. ‘원격의료의 선한 기능’을 이야기하려면, 이러한 질문에 대한 긍정적 답변과 더불어 의료계와 시민사회가 갖는 우려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변을 함께 내놓아야 할 것이다.
* 서지정보
B. Marent, F. Henwood, & M. Darkingon (2018), Ambivalence in digital health: Co-designing an mHealth platform for HIV care, Social Science & Medicine 215: pp.133-141. http://doi.org/10.1016/j.socscimed.2018.09.003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금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