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의료 영리화 시도를 멈추라(2) – 영리화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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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논평>이 나간 후 그 짧은 한 주 사이에도 의료 영리화 시도는 계속되었다. 한 경제신문은 무려 ‘사설’로 용감한 주장을 펼쳤다(기사 바로가기). 언론(?!)의 이런 ‘담론’ 만들기 또한 영리화를 밀고 가는 한 가지 힘이자 과정임을 실감한다.

 

“앞선 기술을 갖고도 ‘규제 장벽’에 막혀 경쟁 우위를 잃어가는 바이오·의료 분야는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 베트남 등 사회주의 국가도 허용하는 원격의료는 한국이 가장 먼저 시범서비스를 도입했지만 18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줄기세포치료제와 원격의료는 세계 각국의 주도권 경쟁이 치열한 바이오·의료 핵심 분야다. 관련 규제를 개선하지 않은 채 “바이오·의료를 혁신성장 주역으로 키워 내겠다”는 정부·여당의 거듭된 다짐은 허황한 ‘공수표’일 뿐이다.“

 

그리 길지 않은 글 속에 온갖 ‘전략’이 압축되어 있다. 물론, 그동안 이들이 드러낸 실력(?)으로 보건대 의도하고 이런 논리를 구성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관련 지식도 충분한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이런 자신감은 어디서?

 

 

하나의 비극. 약간의 경험과 지나친 믿음이 자기 확신에 이르게 한 것이니, 허구의 이데올로기라 불러야 마땅하다. 문제는 근거는 약하되 현실에서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이다. 이해관계가 걸린 해당 분야 연구자나 직접 돈과 이익이 걸린 기업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정책 당국이나 일부 학자들이 허구를 앞장서 전파하고 이해관계자가 다시 활용하는, 이념과 이론의 ‘돌려막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의도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한국에서 영리 의료 또는 의료 영리화를 밀고 가는 전략에는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사회학자 제섭(Bob Jessop) 식으로 말하면 의료 영리화의 ‘문화정치경제학’이고(책소개 바로가기), 그중에서도 특히 지식과 이념을 포함한 문화에 주목해야 한다. 중요한 몇 가지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영리 의료 옹호론자들은 경쟁력이 있는 기술 능력을 내세운다. 앞서 인용한 신문의 사설도 국제적으로 ‘앞선 기술’을 강조하지 않는가. 제조업을 중심으로 수출 주도형 경제를 발전시켜 온 한국으로서는 가장 익숙한 성장 패러다임으로, 반도체, 자동차, 휴대폰 등의 전례들이 거름장치 없이 보건의료 또는 관련 산업으로 전이된다. 기술을 기반으로 한 영리 의료의 성장 가능성은 아무런 의심 없이 한국의 미래상이 되는 셈이다.

이를 이데올로기라 부르는 것은 기술 우위 주장에 근거가 약하다는 점. 기술과 그것의 우위 주장은 맹목의 희망에 가깝다. 예를 들어, 반도체와 휴대폰이 있는데, 세계 최고의 전자산업을 가지고 있는데, 의료기기쯤이야? 천만에, 의료기기의 기술 수준은 보잘것없다. 국제는커녕 국내 시장도 어림없는 수준이다(기사 바로가기).

 

“그간 국산 의료기기는 독일과 미국 등 글로벌 제품에 밀려 외면을 받아왔다. 실제 서울대 병원이 지난해 공개한 최근 5년간 의료기기 구매현황을 보면 국산 비율은 8.98%인 반면 외국산 비율은 91.02%를 기록했다.”

의료 서비스, 신약, 바이오는 얼마나 다를까. 구체적인 데이터를 가져올 것도 없이 판단은 간단하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기술이 뛰어나면, 이들이 금과옥조로 삼는 국내 시장의 규제를 문제 삼을 이유가 없다. ‘국제’가 무대인데 왜 ‘국내’를 불평하는가? 기껏해야 잠재력이고 희망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흔히 국가주의 그리고 애국심에 호소한다. 형태는 다양하니, 때로 노골적이고 때로는 은근하다. ‘선진국’ 담론에 의존하거나, ‘국가 경쟁력’을 바탕으로 경제 후퇴를 위협하거나, 심하면 국내 시장 지키기에 이른다. 올림픽 경기에서, 축구 국가대항전에서, 노벨상 수상자 발표 때 보는 그 애국 ‘마케팅’과 다를 바 없다.

“사회주의 국가까지 무엇을 허용한다”, “역차별 때문에 국내 시장을 다 뺏기게 생겼다”, “세계 시장의 몇 퍼센트를 차지하는데 경쟁력을 잃을 처지다”, “새로 외국 시장에 진출하는 데 국내 규제가 걸림돌이다”, 누가 왜 이런 말들을 동원하는가? 늘 시장과 경쟁을 앞세우면서도 오히려 많은 것을 전근대에 의존하는 현상, 한국 자본의 한 중요한 특성임을 다시 확인한다.

 

셋째,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법이 없다는 것도 중요한 특징이다. 비단 의료 영리화만 그럴까만, 방법과 수단이 구체적이지 않으니 자본의 요구는 늘 규제 완화와 연구개발비 투자로 수렴한다. 그중에서도 더한 것, 기-승-전-규제완화를 끝도 없이 되풀이하니 구조이고 법칙, 그리고 문화이자 이데올로기다.

무슨 규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물으면, 아예 제대로 답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생명과 안전, 비용 부담을 위협하는 것이 태반이다. 이 분야 ‘규제 혁신론’의 본질은 간단하다. ① 기업 키우기, 성장, 수출, 매출, 이익을 위해서 신약과 바이오, 의료기기를 국내시장에서 마음대로 시험할 수 있게 해달라, 아니면 ② 효과가 있거나 말거나, 지출이 얼마나 늘어나거나, 건강보험에 그냥 넣어달라는 소리다. 이를 이데올로기가 하지 않으면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

 

넷째는 이른바 ‘성공(실패) 사례’를 앞세워 전체를 움직이려 하는 것. ‘국가 경제’ 또는 ‘국민 경제’를 논하는 자리에 늘 성공(또는 실패)한 기업이나 기업인이 동원되고, 이들은 구조와 체제를 뚫고 승리한 영웅이거나 그 한계 때문에 좌절한 희생자다.

최근의 예. 언론을 어떻게 설득했는지(?) 모르지만, 유명한 바이오시밀러 회사와 기업주가 연이어 뉴스가 되었다. 영웅적 성공담(기사 바로가기)은 곧이어 규제 혁신을 요구했다는 보도로 이어진다(기사 바로가기기). 기사 어디서도 바이오시밀러의 세계시장 규모와 기업의 경쟁력, 미래 전망과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의의, 성장과 일자리에 대한 기여, 규제의 종류와 의미, 국제 동향 등등 전체와 구조에 대한 차분한 분석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로지 개인의 영웅 서사와 무용담, 그리고 더 위대한 성취를 가로막는 장애물.

의외로 낯설지 않으니, 우리 의식과 무의식 속에 엄연히 존재한다. 심층에 가라앉아 있다가 약간의 요동에도 솟아오른다. 박정희의 개발 독재, 정주영과 현대조선, 이병철과 삼성전자, 박태준과 포항제철,…나라 만들기 시기의 ‘영웅’ 유산이 의료 영리화 동력까지 미치다니, 역사와 경로는 힘이 세다.

 

문제는 이 영웅 서사는 흔히 현실과 떨어져 일종의 유혹과 선동이 되기 쉽다는 점이다. 어느 재벌 총수의 그 유명한 “해봤어?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라는 신화까지 더해지면, 과학과 합리는 설 자리가 없다. 의료 산업화의 영리 의료에 대한 합리적 비판은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방해하는 부정적 심리, 패배주의, 비현실적 편향으로 치부된다.

 

허구의 이데올로기, 그리고 퍼져나가는 그 영향력은 이렇게 형성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물론, 이 모든 ‘왜곡’을 결정하는 더 큰 틀은 이익과 돈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사회적 가치의 전도 현상, 아니 물신화의 구조임에 틀림없다. 의료 영리화를 주장하면서 동원하는 건강과 삶의 질, 웰빙은 그저 장식품처럼, 기안서류의 머리말처럼, 기관장 인사의 서두처럼, 불편하고 공허하다.

당연히 다시 뒤집어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영리화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밝히는 것이 보건의료와 건강의 공공성을 지키고 키우는 데 필요한 중요한 사회적 과제라고 생각한다. 영리화의 (의식적/무의식적) 전략을 드러내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실천의 측면에서. 영리화 반대의 과학은 실증 자료와 분석, 합리적 추론, 윤리 지식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과학의 힘으로 시대착오적인 주장과 선동을 무력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지금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 있는 한 가지 길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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