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교양잡지 “고래가 그랬어” 184호 ‘건강한 건강 수다’>
글: 류재인 고모, 그림: 박요셉 삼촌
류재인 고모는 동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무서워하는 치과에서 일하는 의사예요. 무시무시하다고요?
안녕, 동무들. 오랜만이지? 치과 고모야. 오늘은, 고모 조카가 잠시 다니는 미국 초등학교에서 겪은 이야기를 하려고 해. 한국은 어린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학교에서 건강 및 구강 검진을 하잖아. 이미 한 동무들도 많지? 미국도 똑같더라고. 그래서 당연히 학교에서 지정한 병원에 가서 검진만 받으면 되는 줄 알았지. 동무들도 부모님한테 여쭤봐. 학교나 병원에서 검사할 때 따로 돈을 내지 않았을걸. 학교에서 받아오라고 하는 거라, 치료비는 학교에서 내게 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미국에서는 학생이 검진 비용을 각자 속해 있는 보험에서 받아야 한대.
미국은 한국처럼 나라에서 운영하는 건강보험이 없어. 그래서 개인이나 직장에서 보험 회사를 정하고, 그 회사의 보험 상품에 가입해. ‘00생명’ ‘00라이프’ 같은 이름의 회사 말이야. 이런 회사는 보험을 운영하는 목적이 국민건강보험처럼 사람들의 건강을 위한 게 아니야. 그보다는 회사의 이익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 그래서 나이나 건강 상태, 보험료를 얼마나 내느냐에 따라 보장하는 범위가 많이 달라. 고모의 남편은 당뇨에 고혈압이 있는데 이런 사람이 보험에 가입하려면 보험료가 되게 비싸. 이상하지. 건강을 지키려고 보험을 드는 건데, 아픈 사람에게 돈을 더 내라고 하는 게 맞는 걸까?
아무튼 조카는 학교에서 지정한 병원에서 건강 검진을 받지 못했어. 내가 가지고 있는 보험 상품은 건강 검진 비용을 내주지 않더라고. 어휴. 이럴 때 한국에서는 쉽게, 보건소에 가면 된다고 생각하잖아. 보건소는 건강 문제에 관해 도움을 주는 공공기관이니까. 그래서 냉큼 미국 보건소에 전화를 해봤지. 근데 여기도 개인 보험이 있어야 한다지 뭐야. 보험이 없어서 보건소에 가려는 건데…. 결국 주변에 있는 소아과에 전화했어.
600~800달러(약 65~90만 원) 정도를 내래. 순간 잘못 들은 줄 알고 다시 물어봤어. 학교 건강 검진을 하는데 드는 비용 맞느냐고 말이야. 맞대. 생각해 보고 다시 전화한다고 말하고 끊었어. 그리고 주위의 모든 병원의 진료 과목과 평가를 살피고, 전화해서 가격을 물어봤지. 병원마다 천차만별이더라. 그렇게 찾아간 곳에서 검진을 받고, 146달러(약 17만 원)를 냈어. 이것도 전체 건강 검진비가 아니고,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의 일부였어.
그래도 다들 참 친절했어. 낯설어 떨고 있는 조카를 기다려 주고, 처음부터 차근히 설명도 해 주고. 그래. 좋아. 좋은데, 뭔가 무거운 게 내리누르는 느낌이 들었어. 영국에서는 아픈 사람이 병원에 가면 돈을 내지 않아. 심지어 집에 갈 돈이 없으면, 교통비도 줘.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영국의 국민의료보험(NHS, National Health Service)에서는 이런 얘길 해. “아픈 건 선택, 즉 개인의 자유가 아니다.” 우리는 어떤 병에 걸려야겠다고 선택하지 않잖아. 질병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니 나라에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물론 그 책임의 범위가 어디까지냐는 논쟁의 대상이 되겠지만, 적어도 아픈 사람이 ‘선택, 자유’라는 이름 아래 너무 많은 무게를 짊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우리가 바라는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그나저나 건강검진 말고 구강 검진은 어떻게 됐느냐고? 구강 검진은 필수가 아니라서, 돈 문제 등으로 검진을 못한다고 하면, 제외시켜 주더라고. 그래서 고모는 어떻게 했을까? 음, 그건 동무들의 상상에 맡길게. 외국에 나오면 다 애국자가 된다고 하잖아. 이번 기회를 통해 고모도 느꼈어. 한국, 참 좋은 나라야. 적어도 건강보험은 말이야.
어린이 교양잡지 ‘고래가 그랬어’에 연구소 회원들로 구성된 필진이 통권 178호부터 다시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필자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연재 순서대로)
김유미(동아대학교 예방의학과)
박진욱(계명대 공중보건학과)
김성이(시민건강연구소)
전수경(노동건강연대)
오로라(시민건강연구소 회원)
류재인(경희대학교 치의예과)
권세원(중앙자살예방센터)
김대희(인천성모병원 응급의료센터)
3월 ‘건강한 수다’ 필자는 류재인 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