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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의 여성차별, 환자에게도 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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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새롬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2018년 8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어떻게 환자에게 해가 되는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바로 가기)

글의 발단이 된 것은 도쿄의대의 여성 지원자 차별 사건이었다. 도쿄의대가 2006년부터 여자 합격자를 줄이기 위해 체계적으로 점수를 조작한 것이 알려지면서, 세계적인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기사의 필진은 이것이 여성에 대한 차별일 뿐 아니라 환자 안전과 공중보건 관점에서도 해롭다며 이를 입증하는 연구들을 소개한다. 이 기사에 따르면 여자 의사에게 치료 받은 환자는 남자 의사에게 치료 받은 환자에 비해 사망률이 낮다. 효과 크기는 지난 10년 동안 의료 질 개선으로 인한 생존률 향상과 맞먹는 수준이다. 여자 의사들이 의학 수련과 교육 과정에서 저평가되고, 진급에서 배제되며, 지지받지 못함에도 이 분야에 꿋꿋하게 남아 남성 동료보다 더 좋은 치료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기사가 인용한 여러 연구 중 환자의 젠더와 의사의 젠더 조합을 살펴본 미국 연구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2018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에 실린 이 논문은 “환자-의사 젠더 부조화와 여성 심장마비 환자 사망률”을 다루고 있다. (☞바로 가기)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로라 후앙 교수 등으로 구성된 연구진은 급성 심근경색 같은 심각한 건강 문제에 직면했을 때 여성의 사망률이 남성보다 높은 것은 젠더 부조화(gender discordance)가 중요한 요인일 수 있다는 가설 하에 1991년부터 2010년 동안 플로리다 병원 응급실을 찾은 급성 심근경색 환자 58만여 명에 대한 자료를 분석했다. 연구진은 환자의 개인 변수(동반 질환, 연령, 인종, 젠더 등)와 의사 변수(성별, 면허취득날짜, 진료 경험 등)를 파악하고, 비교성을 높이기 위해 같은 의사에게 치료받은 유사한 여자 환자와 남자 환자를 짝지은 표본을 구성했다.

분석 결과 환자와 의사의 젠더가 일치하는 경우 급성 심근경색 환자의 사망률이 유의하게 낮았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내원한 환자들의 기저 사망률은 11.9%였지만, 의사-환자 젠더가 일치하는 경우 사망률은 5.4% 감소했다. 여자 의사에게 치료받은 환자들은 남자 의사에게 치료받은 이들보다 사망률이 낮았고, 이는 환자 성별과 무관했다. 가장 사망률이 높았던 것은 남자 의사에게 치료받은 여자 환자였다.

 

그림. 의사-환자 젠더 조화에 따른 추정 생존 확률

▲ 푸른 선과 붉은 선이 각각 여자 의사와 남자 의사를 지칭, 가로축의 1은 여자 환자, 0은 남자 환자를 의미함.

 

연구진은 남자 의사에게 치료 받는 여자 환자의 생존률을 높일 수 있는 조건을 파악하기 위해 추가 분석을 실시했다. 이들은 여자 의사들이 환자 치료 과정에서 남자 의사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조직 내 지식확산), 여자 의사들이 여자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과정에 대한 프로토콜을 만드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고려해 심근경색 환자 치료 부서의 여자 의사 비율을 파악했다. 또한 여자 환자를 많이 치료하는 과정에서 남성과는 다른 여성 환자의 증상 특성을 익힘으로써 실력이 향상될 수 있음을 고려해 남자 의사가 과거(최근 사분기)에 치료했던 여자 환자 수를 변수로 포함했다.

그 결과 여자 심근경색 환자들은 응급실에 여자 의사 비율이 높은 병원에서 생존률이 더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긍정적 효과는 개별 의사의 성별과 관계없이 나타났으며, 특히 남자 의사에게 치료받은 여자 환자에서 두드러졌다. 최근 여자 환자를 다수 치료한 경험도 남자 의사들에서 여자 환자 생존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여자 의사에서 여자환자 진료 경험에 따른 숙련 효과는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심근경색 사망률에서 젠더 불평등이 발생하는 중요한 이유가 대다수의 의사들이 남성이고, 이들이 여자 환자를 치료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의사들은 자신과 다른 속성을 가진 집단의 환자들과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이는 치료의 질로 이어진다. 연구진은 의료계가 남자 의사가 여자 심근경색 환자를 치료할 때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 인식해야 하며, 응급실에 여자 의사의 비율을 높이고, 심장질환이 “남성의 질병”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의료진에 대한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똑같은 의사인데 젠더에 따라 치료 결과가 다르다니 믿기 어렵다고?

비슷한 결과를 제시하는 연구들은 많다. 노인 입원 환자 158만 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미국 연구에서는 여자 의사에게 치료받은 환자들이 남자 의사에게 치료받은 환자들에 비해 사망하거나 30일 이내 재입원할 확률이 유의하게 적었다(☞바로 가기).

캐나다에서 2007년부터 2015년 사이 10만 명 이상의 외과 환자의 치료 경과를 추적한 연구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여성 외과 의사에게 치료 받은 환자는 남자 외과 의사에게 치료 받은 환자에 비해 사망률이 유의하게 낮았다(☞바로 가기).

수술실 내부의 상호 작용을 관찰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확인되었다. 이 연구에서는 수술팀에 소속된 여성 비율이 높은 경우 안전과 효율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협력적 행동이 많이 나타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러한 협력적 행태는 전체 수술팀에서 남성의 수가 50%를 넘는 순간 뚝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바로 가기).

의사의 젠더에 따라 환자와의 관계 형성, 진료 행태에 체계적 차이가 있다는 것은 직관적일 뿐 아니라 잘 입증된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여자 의사들은 남자 의사들에 비해 근거기반진료 지침을 더 잘 준수하고, 더 많은 예방 서비스를 처방하며, 정보 전달이나 파트너십 형성 같은 의사소통에도 더 능숙한 경향이 있다(☞바로 가기).

여자 의사들이 의과대학에 다닐 때부터 동료 남학생들에 비해 성적이 더 좋고, 이것이 이후 여자 의사들이 더 좋은 치료 결과를 내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바로 가기).

이런 근거들을 고려했을 때 여성들의 의료전문직 진출을 방해하는 편견과 차별은 환자들이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도쿄의대에서 벌어진 것 같은 가시적 차별은 흔치 않지만, 의학교육과 수련과정에서 여자 의사들의 진입과 성장을 가로막는 비공식적 차별은 여전하다. (☞관련 기사: 폭력, 폭언, 성희롱, 성차별 만연한 의과대, ☞관련 기사: ‘여성’이라는 이유로 병원 취업과 보직 등에서 차별)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국에서 의사를 비롯한 전문직종의 여성 비율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도 이미 의사로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이었지만 의대 진학을 꿈꾸는 학생들 사이에서 성별은 문제 되지 않았다.

한국의 여자 의사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이들은 여자 환자들의 고통과 증상을 이해하고 치료하는 데에 동료 남자 의사들보다 우수할 가능성이 높다.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여자 의사들은 최소한 성추행이나 디지털 성범죄 위험이 훨씬 낮은 진료 기회를 제공할 것은 분명하다.

 

2019년 세계 여성의 날의 슬로건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균형(#BalanceforBetter)”이었다. 오늘 소개한 연구 결과는 이러한 슬로건의 타당성을 입증한다. 보건의료를 넘어서, 우리 사회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균형’으로 가기 위해, 더 많은 여자 의사, 더 많은 여자 판검사, 더 많은 여자 경찰, 더 많은 여자 배우, 더 많은 여자 작가, 더 많은 여자 정치인이 필요하다.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금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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