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돌보는 이들도 아프다. 이들의 건강은 누가 챙겨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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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경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지난 주말 기차역은 복잡했고 여느 주말보다 선물 꾸러미를 손에 든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가족의 달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5월을 따뜻하게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소위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는 표준적 가족 형태가 아닌 이들, 또는 가족이 없는 이들을 소외시킨다 (서리풀 논평: ‘정상가족이데올로기를 넘어). 그렇다면 가족 안에서는 어떨까?

가족은 사회적 지지의 중요한 원천이다. 가족이 해체되고 있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는 가족이 많은 것을 책임져야 한다. 국가나 사회가 할 일을 가족에게 내맡기는 경우도 빈번하다. 누군가에게 가족이 지지가 된다는 것은 그 지지를 제공하는 이가 있음을 뜻한다. 특히 질병 등으로 일상생활에 도움이 필요한 구성원이 있는 경우, 집 안에서든 병원 같은 시설에서든 으레 가족 중 누군가가 돌봄의 역할을 맡으리라고 사회는 기대한다. 많은 경우, 이 역할은 여성에게 돌아가곤 한다.

‘비공식 돌봄 제공자’라는 긴 단어가 말해주듯, 이들은 노동 시장이나 공적 제도에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인정받지도, 대표되지도 못한다. 예컨대 병원의 공간과 스케줄은 질병의 치료에 최적화를 위해 설계되었지 돌보는 사람까지 배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학자 아서 프랭크가 ‘아픈 몸을 살다’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아픈 사람과 돌보는 사람은 질병을 함께 경험한다. 물론 각자 다른 식으로 경험하지만 어느 한 쪽이 ‘덜’ 경험한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가족 중심의 돌봄 규범이 강한 사회에서 비공식 돌봄 제공은 제대로 보상받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도덕적 비난까지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돌봄 제공자의 몸과 마음도 상처를 입는다. 만일 돌봄의 책임을 가족에게 맡기기보다 국가 책임으로 여기는 사회라면 다를까?

 

까딸루냐 지로나 대학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 PLoS ONE>에 발표한 논문은 바로 이 질문은 다루고 있다 (공공정책과 비공식 돌봄제공자에서 무엇이 중요해보이는가? 유럽 12개국 단면 연구). 연구팀은 12개 유럽국가에서 50대 이상 중장년층이 참여한 SHARE (Survey of Health, Ageing and Retirement in Europe) 자료를 이용하여, 국가의 돌봄 정책 유형에 따라 비공식 돌봄 제공자의 건강수준이 달라지는지를 검토했다. 연구팀은 국가의 복지모델, 가족을 주요 돌봄 제공자로 여기는 사회문화적 특성 여부, 공식 돌봄 서비스의 활용 수준에 근거하여, 국가를 두 종류로 유형화했다. 가족이 돌봄의 주요 제공자 역할을 하는 ‘가족 기반 국가’, 국가가 대부분의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전문적 지지가 광범위하게 제공되는 ‘서비스 기반 국가’가 그것이다. 또한 비공식 돌봄 제공자에 대한 금전적 지원 정책, 훈련과 비금전적 지원 정책의 영향도 분석에 고려했다. 전자에는 수당, 세금 공제, 추가 급여, 유급휴가가 포함되며 후자에는 무급휴가, 유연한 노동 조정, 훈련과 교육, 위탁간호, 상담이 포함된다.

 

분석 결과, 12개국의 연구 참여자 65,281명 중 13,507명(20.7%)이 비공식 돌봄 제공자가 있다고 응답했다. 그 중 8,011명(59.3%)은 ‘가족 기반 국가’에 속했고 5,496명(40.7%)이 ‘서비스 기반 국가’에 속했다. 경로 분석을 시행한 결과 ‘가족 기반 국가’ 유형에서, 그리고 돌봄을 더 많이 제공할수록 비공식 돌봄 제공자의 건강수준이 더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정책 유형도 돌봄 제공자의 건강 수준에 영향을 미쳤다. 금전적 지원 정책은 불건강에 아주 경미한 연관성만 보인 반면, 훈련과 비금전적 지원 정책은 좋은 건강 수준과 관련이 있었다. 대부분의 금전적 지원 정책은 돌봄 제공자가 아닌 돌봄 대상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반면, 교육이나 비금전적 지원은 돌봄 제공자에게 직접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연구팀은 비금전적 지원 정책이 돌봄 제공자에게 시간 여유를 주고, 이들은 그 시간을 자신을 돌보는 다른 일에 사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건강 부담이 경감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우리 사회에도 장기요양서비스를 포함해 돌봄을 지원하는 제도가 늘어나고 있지만, 비공식 돌봄 제공자에 대한 정책 지원은 여전히 부족하다. 오늘 소개한 연구 결과는 돌봄 제공자에게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실질적으로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정책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그러나 정책 수립 과정에서 돌봄 서비스가 필요한 가구의 관점이나 돌봄 제공자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경우는 드물다. 비공식 돌봄 제공자의 상황에 대해서는 일부 지자체나 학술 연구들이 조사했을 뿐, 국가적 차원에서는 현황 파악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우리 사회가 비공식 돌봄을 인식하는 수준을 보여준다.

 

고령화에 따라 돌봄을 필요로 하는 이들은 점차 늘어나는 반면 돌봄 제공자의 숫자는 줄어들고 있다. 돌봄 제공자의 연령대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돌봄 제공자의 부담이 점차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비공식 돌봄에 의존하고, 그러면서도 돌봄 제공자를 돌보지 않는 상태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돌봄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고, 돌봄에 대한 국가 책임, 돌봄 제공자 보호에 대한 국가 책임을 계속해서 요구해야 한다.

 

 

 

  • 서지정보

 

Calvó-Perxas, L., Vilalta-Franch, J., Litwin, H., Turró-Garriga, O., Mira, P., & Garre-Olmo, J. (2018). What seems to matter in public policy and the health of informal caregivers? A cross-sectional study in 12 European countries. PloS one, 13(3), e0194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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