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대처 총리와 홍준표 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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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0월 8일, 영국 남동부의 항구 도시 브라이튼에서 열린 보수당 전당 대회 마지막 날. 대처 총리가 폐막 연설자로 나섰다. 그는 영국의 “공영 의료 체계가 우리와 함께 안전하다”고 선언해야 했다. (영국의 공영 의료 체계는 흔히 ‘국가 보건 서비스(NHS)’라고 불린다.) 이 말은 두 해가 지난 1984년 같은 곳에서 열린 전당 대회에서도 되풀이되었다. “2년 전 바로 이 장소에서 말한 것처럼”이란 표현이 더 붙었다. 1982년에도 그랬지만, 채 두 해도 지나지 않아 총리가 또 나서야 할 정도로 국민의 동요가 심각했다.

1979년 대처가 집권한 이후 공영 의료 체계를 확 바꾼다는 소식은 늘 있었다. 공약이 그랬고 정권이 내세운 것이 다 그럴 만했기 때문이다. 1982년 전당 대회 직전에는 국민의 불안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기존 제도를 의료 보험으로 바꾸고 환자 부담을 대폭 인상하자는 정부 문서가 유출되었다.

대처의 약속과 달리 그 후 국가 보건 서비스는 ‘안전하지’ 않았다. 공영 의료 체계를 뒷받침하는 예산은 계속 줄었고 환자 부담은 늘어났다. 1980년대 내내 국가 보건 서비스가 크게 탈바꿈할 것이라는 소문이 신문의 첫머리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실제 공공 의료는 많이 바뀌었고 그 유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천하의 대처 총리조차 공영 의료 체계를 대놓고 없애지 못한 것이 역사적 진실이다. 역사학자 찰스 웹스터의 표현을 빌리면, 대처는 그 대신 이념이 아닌 기술적 문제로 접근했다. 법을 바꿀 필요가 없고 논란이 적은 것을 골라 점진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사실 보수당 정부의 정책은 집권하기 전에 비하면 아주 약해진 것이었다. 2012년 말 30년 만에 기밀에서 해제된 영국 정부 문서도 그것을 뒷받침한다. 영국 <가디언>이 보도한 내용을 보면, 처음 대처 총리가 구상한 것은 기존 공영 의료 체계를 해체하는 쪽에 가깝다. 의료 보험으로 바꾸려 한다는 당시의 소문은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영국의 국가 보건 서비스는 살아남았다. 신자유주의와 신공공 관리의 거센 파도를 피할 수는 없었지만, ‘철의 여인’조차 그 뼈대를 없애지는 못했다. 내각이 반대했고, 일부 내용이 유출되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대처도 내용보다 정보 유출 자체를 두려워했다. 결국 국민의 반대가 대처와 보수당을 이겼다.

그 대처 총리가 얼마 전 생을 마감했다. 죽음을 축하하는 (한국 사람의 눈으로는) ‘반인륜’이 넘치고, 고인의 믿음을 존중해(?) 장례를 민영화하자는 소리가 영국 사회를 뒤덮었다. 스스로 이런 시비를 예상했는지 모른다. 장례에 국가 예산을 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런 그도 제대로 짐작하지 못한 것이 있다. 먼 한국 땅까지 신자유주의와 시장 만능의 충실한 신도가 넘친다는 사실을. 국가 지도자가 롤 모델로 삼는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영국병을 치료했다는 찬양이 서슴없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철 지난 흉내다. 막상 본거지에서도 비판이 압도하는 대처리즘을 한국에 되살리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쯤 되면 바로 떠오르는 이가 경상남도의 홍준표 지사다. 그가 추진하는 진주의료원 폐업이 보수당의 시도와 자꾸 겹쳐 보인다.

집권 여당과 청와대조차 말리지 못할 정도인 모양이다. 도의회를 동원해 날치기까지 해 가면서 진주의료원을 폐업하려 한다. 여론이니 뭐니 하는 것은 전혀 고려하는 기색이 아니다. 본래 돈키호테 소리까지 들은 사람이지만 독불장군이 따로 없다.

대처 총리가 살금살금 조심스러웠다면, 홍준표 지사는 막무가내에다 당당하기까지 하다. 대처는 국민의 저항이 무서워 공공의료의 민영화를 포기했다. 그러나 스스로 제자임을 내세울지도 모르는 경남 지사는 그럴 낌새가 아니다.

겉으로는 둘의 차이인 것 같지만, 사실 같은 동기가 작용한다. 두 쪽 모두 정치와 여론이 기본이다. 대처 총리는 다음 선거를 의식했고 참모나 내각도 여론 동향에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었다. 공영 의료 체계를 파괴했다가는 국민 전체와 등을 돌리게 될 판이었다.

여론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중요한 것은 홍준표 지사 역시 마찬가지다. 비록 ‘노이즈 마케팅’이지만 그는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고 반대 여론이 크게 번질지 모르니 미리 대비하라고 했단다. 미리 이런 것을 예상했거나 또는 기획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영국과 유일하게 차이가 나는 것은 반대 여론의 강도이다. 홍준표 지사가 즉흥적으로 폐업을 결정하고 반대에 부닥치자 감정적으로 고집을 부린다고 생각할 수 없다. 왜 여러 가지를 미리 생각하고 계산하지 않았겠는가. 청와대와 여당이 반대하는 데도 폐업을 강행할 태세인 것은 그만한 이득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미 전국에 이름을 알렸고 정치적 비중을 높였다. 소신이 있다거나 ‘강성 노조’를 굴복시켰다는 평가와 이미지를 기대하고 있을 수도 있다. 대처 총리가 벌인 계급 ‘전쟁’은 지금까지도 경멸과 저주의 대상이다. 그러나 영국병을 치료했다는 보수 진영의 찬양은 두고두고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대처 총리와 같이 언급되는 것만 해도 홍준표 지사는 크게 자산을 늘린 셈이다).

단순히 자산만도 아니다. 홍준표 지사가 그토록 강경한 이유는 비용보다 이익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적어도 스스로의 계산으로는). 공공 의료의 지지 기반이 약하면 약한 만큼 그가 치러야 할 비용은 적다.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홍준표 지사는 더 많은 유권자가 자기편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사실 의료원을 비롯한 공공 의료의 정치적, 사회적 토대는 많이 취약하다. 많은 사람들이 기능과 역할을 정확하게 모른다. 단순하게 만성 적자의 주범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지금 폐쇄를 반대하는 사람들 태반도 취약 계층을 위한 병원이라는 정도로 소박하게 이해하고 있다.

이 정도로는 다른 곳에서도 기회만 있으면 불어 닥칠 공공 의료 축소의 바람을 막기 어렵다. 재정 적자 축소나 구조 개혁이란 명분으로 누가 나서면 언제 어느 곳이나 흔들리게 된다. 진주가 끝나도 다른 정치가 작동하면 공공 의료는 연쇄적으로 붕괴할 수 있다.

그러나 비관하기는 이르다. 아니 이제부터 시작인지도 모른다. 진주의료원 사태는 분명 공공 의료의 위기이지만 정치적으로는 기회이기도 하다. 홍준표 지사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전국적 관심사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공공 의료가 지역을 넘어 국가 정치의 이념이 될 참이다.

공공 의료 문제가 진주를 넘어 ‘국정’ 철학이 되는 것이 기회다. 벌써 많은 사람이 공공 의료의 보편적 상황을 생각하고 지향을 성찰하게 되었다. 수준이 높고 낮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누구나 한두 번쯤 묻고 대답할 정치적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간은 집권 세력을 비롯한 정치권력과 그것의 이념으로 연결된다.

공공의 결정을 움직일 힘은 바로 이런 공간에서 만들어진다. 핵심은 공공 의료의 정치적, 사회적 기반을 강화하는 일이다. 공공 의료와 기관의 역할을 널리 알리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게 해야 한다. 찬반을 묻고 토론하고 말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공 의료의 역할을 취약계층 진료로 축소할 일이 아니다. 가난한 환자가 갈 곳이 없고 진료비가 싸다는 수준을 넘어야 한다. 상품화되고 영리가 판치며 개인은 홀로 견뎌야 하는 한국 의료가 ‘그들’이 원하는 미래이다. 공공 의료는 그와는 반대인 대안적 미래의 핵심을 차지한다.

영국 보수당은 공영 의료 체계의 해체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결사적으로 부인했다. 이제 한국에서 ‘그들’이 힘써 부인하게 해야 할 것을 드러내야 한다. 그러자면 진주의료원 문제는 홍준표 지사를 넘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 한국의 대처가 나타나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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