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막말’이 아니라 혐오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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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도쿄도에는 ‘헤이트 스피치’를 규제하는 조례가 있다. 작년에 제정되고 지난 4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기사 바로가기). 헤이트 스피치란 ‘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을 가리키는 영어를 일본식으로 옮긴 것이다.

 

<연합뉴스>는 소식을 전하면서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발언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이는 한국 사람의 관심을 반영한 한국형 해석이다. 도쿄의 조례는 중앙정부가 2016년부터 시행 중인 ‘헤이트 스피치 억제법’의 목적을 포함하되 그보다 범위가 더 넓다.

 

전체 분위기는 영 딴판으로, 조례의 골격만 봐도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더 큰 관심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체 2장으로 된 조례의 제2장 제목이 ‘다양한 성 이해의 추진’일 정도다(제1장은 ‘올림픽 헌장에 따른 인권 존중의 이념’)(조례 바로가기).

 

도쿄가 왜 이런 조례를 만들고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동기와 배경은 부차적이다. 외국인과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를 묻는 것은 더구나 본질을 벗어난다. 올림픽 때문이든 범죄 예방 차원이든, 아니면 국제관계를 의식해서 그런 것이든, (일본에서 문제가 되는) 증오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고 증오범죄를 막으려 노력하는 데 주목해야 한다.

 

일본 소식에서 출발해서 한국을 묻는 것은 지금 그 많은 ‘막말’이 사람들을 더욱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냥 ‘아프다’는 말로는 모자라니, 그것은 아픔 그 이상의 폭력이다. 개인과 그의 말을 넘어 집단과 사회가 만들고 허용하며 부추긴다. 폭력 중에서도 구조적 폭력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사회적 검증이 끝난 ‘파문’도 처리하지 않은 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참석을 강행한 제1야당 대표가 무방비의 한국 상황을 웅변한다. ‘그들’은 혐오 발언과 증오범죄에 무관심하다. 아니, 이 말이 무슨 뜻인지도 정확하게 모를 것이다. 알고 그러는 것이면, 이를 활용하고 악용하는 것이니 더 나쁘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증오와 혐오의 표현을, 그 범죄를 그저 막말, 난장판, 충돌, 파문, 논란 정도로 치부하고 내용에서 눈을 돌리게 한다. 다양성, 이견, 갈등, 경쟁 패러다임으로 ‘옳음’을 상대화하는 것이야말로 혐오와 증오를 부추기는 또 하나의 동력이다. 다음과 같은 표현을 그저 이견이거나 논란, 또는 표현의 자유라며 놔둘 것인가?

 

“종북좌파들이 판을 치면서 5·18 유공자란 이상한 괴물집단을 만들어내 우리 세금을 축내고 있다” (기사 바로가기)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쳐 먹고, 찜쪄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먹고 진짜 징하게 해 처먹는다”, “자식 팔아 내 생계 챙긴 것” (기사 바로가기)

 

“동성애 박멸!, 깨끗한 한국, 할렐루야”, “동성애는 죄” (기사 바로가기)

 

혐오표현이란 “어떤 개인·집단에 대하여 그들이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들을 차별·혐오하거나 차별·적의·폭력을 선동하는 표현”을 가리킨다(관련자료 바로가기). 좀 더 구체적으로는, ① 차별적 괴롭힘 ② 차별표시 ③ 공개적인 멸시·모욕·위협 ④ 증오선동 등으로 유형을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증오와 혐오의 말을 문제 삼는 이유는 그저 시끄럽고 듣기 싫어 그런 것이 아니다. 증오는 반드시 폭력, 차별, 배제로 이어진다. 개인의 감정, 믿음, 취향,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행동, 실천, 개입이자 상호관계임이 중요하다. 내가 말하고 표현할 권리에 앞서 공동체와 집단, 그 구성원들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가 판단 기준이다.

 

문제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사회적이다. 혐오(증오)와 혐오(증오) 범죄는 다르다고 하나, 무엇을 범죄로 볼 것인지부터 이미 체제의 성격과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 헤이트 스피치가 재일 한국인에 집중되는 것은 일본적 특성이다. 어쩌면 가장 좁은 범위에서 정한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혐오범죄 규정은 다음과 같다.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인종, 종교, 장애, 성적 지향, 민족, 젠더 또는 젠더 지향에 대한 가해자의 편견 때문에 발생한 사람과 재산에 대한 형사 범죄” (관련자료 바로가기)

 

미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인종은 제일 앞에 나오지만, 가난한 사람에 대한 ’편견‘은 말이 없다. 폭력도 마찬가지다. 신체적 폭력과 비교하면 정신적 공격이나 해는 폭력으로 보지 않는 사회가 많다. 여기서는 신체적 폭력이 아니면 범죄도 아니다.

 

우리는 혐오와 증오가 폭력이며 범죄라고 생각한다. 그저 기분이 나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정도면 삶의 질이라 하겠으나(이것도 중요하다!), 이의 효과(?)는 의학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건강 악화까지 이른다. 혐오와 차별에 노출되면 신체와 정신 건강이 악화하는 것은 이미 정설이다(기사 바로가기).

 

한국에서도 다르지 않다. 증오 또는 혐오 발언에 노출된 사람들의 정신건강이 피해를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다. 이런 결과를 초래하는 발언이나 행동을 폭력이라 부르지 않으면, 그리하여 범죄가 아니면, 달리 무엇이라 해야 할까?

 

“참가자들의 우울증상 유병률은 73.1%로 일반인구 7.2%(한국복지패널조사, 2017)의 10배를 훌쩍 넘는다. 89.5%는 급성 스트레스 증상을 보였고, 70.4%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예측됐다.” (기사 바로가기)

 

“보상금 받으려고 시위한다는 악플, 세월호 때문에 경제가 침체 돼 장사가 안 된다는 주변 상인들 이야기가 하나하나 다 상처인 거죠. 처음에는 정부에 실망했다면, 이제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공격받고 배척당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디 가서 세월호 유가족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싫어서 병원에 가도 의료 지원금을 안 받는다고 할 정도로 예민해진 상태입니다.” (기사 바로가기)

 

증오와 혐오의 말이 퍼지는 데는 정치인의 책임이 가장 크다. 흔히 정치인이 불씨를 제공하거나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다음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정보인 양 언론이 그것을 확대하고 더 부추긴다. 마치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는 것처럼 철학과 이론을 내세우는 부류도 있다. 이들이 먼저 멈춰야 한다.

 

무슨 무슨 권리? 자유? 혐오와 증오의 말을 듣고 폭력에 노출되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면, 몸과 마음이 아픈 그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참으로 간단하다. 누구에게는 칼이 되는 말을 멈춰라. 무슨 뜻인지 모르면 더구나 입에 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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