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음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지난 3월 31일, 코오롱생명과학의 대표 제품인 골관절염 치료제 인보사가 판매 금지 조치를 받았다. 코오롱생명과학의 자체 조사, 규제 당국의 확인 조사를 통해 인보사의 주성분인 2액의 형질 전환 세포가 판매 허가 당시 제출한 자료와 다른 세포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번 사태로 관절염 환자 3700여 명은 잘못 허가된 약에 최대 700만 원의 비용을 치른 데다, 장기 추적이 필요한 안전성 부담을 지게 됐다. 전문가들은 바뀐 성분인 293 유래 세포가 세포를 무한 증식시키는 기능이 있어 치료용 세포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세포 변경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한다. 2년 전인 2017년, 자회사 코오롱티슈진이 주성분 변경 사실을 본사에 통지했다는 사실이 지난 5월 경영 공시를 통해 드러났지만 이들은 ‘보고가 누락됐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코오롱생명과학의 또 다른 주장은 세포주가 바뀌었더라도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 임상용 제품, 한국 시판용 제품 모두 2004년 처음 생산된 세포주를 일관되게 사용했고, 종양발생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방사선 처리를 했으며, 장기 추적에서도 부작용 사례가 보고된 적이 없다는 것이 그 근거다.
‘국산 신약 29호’, ‘세계 최초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라는 타이틀은 줄글과 입말을 오르내리며 국가와 기업의 욕망을 운반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매월 200건 이상의 인보사 시술 실적을 뽐냈고, 정부는 유전자 치료제 개발 기반 구축에 기여한 제약사의 공적을 치하했다 (관련기사: 김수정 코오롱생과 연구소장, 대통령표창 수상). 아직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인보사 사건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으로도 희대의 과학 스캔들이 될 만하다. 그러나 바이오 신약을 둘러싼 기대와 무비판적 찬사, 이것이 가져온 규제와 감시 소홀은 비단 한국만의 특수한 현상이라 보기 어렵다.
지난 2018년 11월, 국제학술지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 (Science, Technology & Society)>는 동/남아시아의 보건의료 역사, 정책, 문화를 주제로 한 특집호를 꾸렸다. 이 중 포르투갈 리스본 대학의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은 신약 개발 후발 주자에 해당하는 동/남아시아 7개국의 22년 치 신약 관련 자료 분석에 기초하고 있다 (논문 바로가기: 발견 시장을 위한 기회 잡기: 남반구에서 제약 산업의 가치 사슬 구조변경). 이들 국가는 대개 2000년대 중반부터 신약 후보 물질 발견을 위한 연구 비중을 크게 늘려나갔다. 대만, 태국, 필리핀에 비해 연구 개발을 일찍 시작한 한국, 중국, 인도, 싱가포르는 국산 신약에 관한 연구 비중이 특히 높았다. 연구팀은 ‘신약 개발국’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을 “타겟 중심의 신약 개발 패러다임 변화에 발맞춰” “신약 개발 가치 사슬의 상위 단계에 안착하기 위한 시도”로 평가했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신약 개발국 지위를 향한 연구 개발 투자는 일관된 경향으로 나타나지만, 새로운 과학 지식과 제품 생산을 둘러싼 규제, 윤리 이슈는 각국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이는 신약 개발 후발 주자가 당면한 규제 과학(Regulatory Science) 문제를 보여준다. 규제 과학은 과학기술 제도가 과학 지식이라는 ‘합리적’ 기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 지식을 둘러싼 연구자, 정책 입안자, 시민 단체의 사회적 협상 과정을 통해 구성된 결과물임을 지적한다.
같은 학술지에 실린 인도 자와할랄 네루 대학 연구팀의 논문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논문은 인도의 신약 허가 제도에서 글로벌 규제 기준을 자국에 이식하려는 인도 중앙 의약품 표준 통제국(CDSCO)의 규제 도입 맥락을 짚는다 (논문 바로가기: 인도에서의 ‘신약’ 승인: 제도적 관점). 인도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이미 허가 받은 약을 국내 신약으로 심사할 때 ‘4년 조항’이라는 기준을 적용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다른 나라에서 허가받은 지 4년이 지난 약은 화학적 동등성 입증 자료만 제출해도 되지만, 아직 4년이 안된 약은 반드시 생물학적 동등성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생물학적 동등성 개념은 1977년 미국 식품의약국이 제네릭 의약품 허가를 위한 약식 기준으로 처음 제시한 이래 현재까지 글로벌 규제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 연구팀이 인터뷰한 전문가들은 생동성 시험 자료의 필요성에 대해서 동의했다. 글로벌 기준이 말하는 것처럼 “화학적 동등성만으로는 약의 품질을 보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가 시점이 안전성 시험 면제를 위한 기준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연구팀은 인터뷰에 참여한 전문가 모두가 ‘4년 조항’에 의문과 불만을 표했다고 전한다. 전문가와 관계자들의 비판과 개정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 조항의 시행과 지속 근거를 명시한 공식 문건은 공개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규제가 신설된 1980년대 당시 정책 담당자와 교류했던 한 전문가와의 인터뷰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그 전문가는 인도의 규제 전문성이 부재한 상황에서 글로벌 규제 기준을 도입하면서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한” 긴급조치로 이러한 ‘4년 조항’이 도입되었다고 설명했다.
인도는 29개 주 7개 연방 직할지로 이루어진 거대한 나라로, 한 주의 크기가 한국보다도 크다. 중앙 규제 당국은 생물학적 동등성이라는 국제 표준을 도입하던 시점에 각 주의 규제 기관이 신약을 자체 평가할 만한 전문성과 기술력이 없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CDSCO는 첫 허가를 받은 지 4년 이내의 약을 모두 ‘신약’이라 규정함으로써 신약 허가에 대한 규제 전문성을 중앙에 집중시켰다. 4년 조항은 각 주가 저마다의 기준에 따라 경쟁적으로 신약을 허가하는 사태를 막기 위한 표준 지침으로 작동하는 한편, 인도 중앙 의약품 연구소(CDL)가 신약에 대한 안전 프로토콜을 확립하기 위한 시간을 벌어줬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공식화되지 않으면서, 4년 조항은 ‘비과학적인’, ‘혼란스러운’, ‘관료적인’ 밀실 규제로 평가받아왔다.
오늘날 미국 같은 글로벌 제약 선도 국가는 다른 나라에서 허가 받은 의약품의 임상 시험을 면제하거나 대체 자료를 요구하는 등 각종 패스트 트랙을 신설하고 있다. 연구팀은 후발 국가가 이러한 면제 조치를 수용할 경우, “규제 전문성을 외부에 의존하는 만큼 국내에서 전문 지식이 생산될 기회를 잃게 될 것”이라 지적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CDSCO의 ‘4년 조항’은 국가 수준의 규제 전문성 확보를 위한 임시방편이라고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인보사 문제로 돌아가 보자.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관리 책임을 지적한다. 2017년 4월 열린 1차 심의에서 인보사의 효능과 위해성 문제를 지적했던 식약처 중앙약사심의위원회가 두 달 뒤에 돌연 입장을 바꾸고 국내 시판을 허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규제 당국의 모호한 안전성 기준은 지금까지 명확히 해명되지 않았다. 다만 식약처는 인보사 판매 금지 조치 공문에서, “안전성이 우려될 수준의 부작용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고, 허가 당시 제출 자료에 특이성이 없었고, 방사선 조사를 통해 안전성을 확보했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코오롱생명과학이 제시한 안전성 근거는 추후 발표될 조사 결과에 따라 반박될 수도 있고,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제약사가 제출한 서류에 따라 허가를 진행했을 뿐이라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입장은 규제 당국의 낮은 전문성 수준을 드러낸다. 혹은 이들에게도 인도의 ‘4년 조항’처럼 공식적으로 밝히지 못할, 국민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혹은 규제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비밀스런 사연이 있는 것일까? 그 사연이 드러나지 않는 한, 시민들은 국가가 승인한 신약의 안전성에 대해 끊임없이 우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서지 정보
- H. Pádua, M. Fontes, & C. Sousa (2018), Seizing Opportunities for Markets of Discovery: The Reconfigurations of Value Chains in Pharmaceutical Industry in the Global South, Science, Technology & Society 23: pp.418-443.
- Bhaduri & T. Kipgen (2018), ‘New Drugs’ Approvals in India: An Institutional Perspective, Science, Technology & Society 23: pp.444-4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