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기고문

[고래가 그랬어: 건강한 건강수다] 미션 – 우리 가족의 생활시간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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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교양잡지 “고래가 그랬어” 189호 ‘건강한 건강 수다’>

글: 김성이 이모, 그림: 박요셉 삼촌

 

여름 방학, 어떻게 보내고 있어? 어른들은 어린이들의 방학을 되게 부러워하지만, 혼자 점심을 챙겨 먹거나 평소보다 늘어난 학원 숙제 탓에 좋은 줄 모르겠다는 동무들도 있을 거 같아. 안 그래도 짜증나는 더운 여름, 이때 딱 어울릴 만한 ‘최소한만 움직이며 할 수 있는 재미난 놀이’ 하나를 소개할게. 바로 ‘관찰카메라 24시’. 가족 한 명 한 명이 아침에 일어나 잠자기 전까지 하는 일을 관찰하고 거기에 들이는 시간을 적어보는 거야. 예를 들면, 휴대폰 검색·식사 준비·설거지·청소·빨래 널기·텔레비전 시청·게임·운동·장보기·낮잠·숙제·식물이나 반려동물 돌보기·분리수거 등 여러 가지 일이 있겠지. 아주 어린 동생이나 연세가 많은 어른과 같이 산다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이 필요할 거야.

 

이건 휴일에 하는 걸 추천해. 관찰하는 동안에는 졸거나 딴짓을 하지 않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말이야. 이렇게 하루를 지내고 나면, 한 사람 또는 한 가족이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될걸. 시시해 보이지만 아무도 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이 많은 일을 다 하려면, 일의 순서를 잘 싸서 시간을 배정해야 해. 가족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묻고 의견을 조정하는 것도 중요하지. 관찰카메라 24시를 하면서, 일의 종류와 시간을 적고 가족 모두가 고루 참여하는지를 살펴봐. 어떤 결과가 나올 거 같아?

 

 

얼마 전 양성평등주간을 맞아, 조안 윌리암스라는 유명한 법학자가 한국에 왔어. 그녀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일 잘하는 ‘이상적인 노동자’라고 하면 남자를 떠올린다고 말했어.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언제든 회사에서 시키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가정의 일은 다른 양육자인 여성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거야. 당연히 집안일 대부분은 여성의 몫이 되겠지. 이렇게 ‘밖에서 일하는 남자와 집안일 하는 여자’가 사회의 이상적인 성역할로 자리 잡은 건 아주 오래 되었어. 조안 윌리암스는 이 낡은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어.

 

정말 남자와 여자의 일이 다를까?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아.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가 노동자이자 양육자이니까. 게다가 각자의 능력과 소질을 실현할 수 있는 평등한 세상이라는 지향과도 맞지 않지. 그런데도 한번 사회에 뿌리 내린 성역할 구분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어. 동무들의 관찰카메라 24시는 어때? 관찰하는 동안 우리 집에서는 여자답거나 남자다운 일을 구분하는 고리타분한 태도가 보이지는 않았어? 먹고 난 빈 과자봉지가 식탁에 그대로 있거나, 누군가는 휴일인데도 쉬지 못하고 집안일 하느라 바쁘다거나 말이야.

 

느리지만, 성차별적인 제도가 점점 바뀌고 있어. 이모는 가족 안에서 먼저 변화가 시작되어야한다고 생각해. 각자 나이와 관심에 맞는 일을 공정하게 나누고, 맡아서 하는 거지. 기본적으로는 나의 부모·자식·형제·자매지만, 더 나아가면 공동 생활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니까.

그리고 가족은 우리 사회의 성역할이 만들어지는데 제일 먼저 영향을 주지만 가장 늦게 바뀌는 공간이기도 하거든. 가족 먼저 실천한다면, 불편하고 억압적인 사회 제도를 바꾸는 데에도 큰 힘이 될 거야. 다들 열심히 관찰해 주기를 바라. 귀찮아도 사용한 컵은 스스로 씻는 거, 잊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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