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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칸디나비아에서도 다니엘 블레이크들이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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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이상적 복지국가로 명성이 높다. 이러한 복지국가를 경제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지속가능하도록 만드는 힘은 높은 고용률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도 인구고령화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또한 건강문제 때문에 노동 시장을 떠나는 고령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미숙련 노동력에 대한 수요는 감소하면서 높은 고용률에 기초한 복지국가 체계가 도전을 맞고 있다. 그러자 사람들을 좀더 나이 들어서까지 노동시장에 잡아두려는 정책이 도입되고 있는데, 이러한 정책이 고용률 유지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다른 측면에서 부정적 영향을 가져올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최근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영국 리버풀대학 공동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역학과 지역사회 건강>에 발표한 논문은 바로 이러한 우려를 다루고 있다 (논문 바로가기: 일하기에는 너무 아프고, 장애 급여를 받기에는 너무 건강한: 장애급여 변화 효과의 분석).

 

이 논문은 정책환경이 비슷한 스웨덴과 덴마크 사회를 대상으로, 고용을 증가시키려는 복지개혁조치 이후 사람들의 건강 상태에 따라 고용 상태와 복지수급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분석했다.

 

스웨덴과 덴마크는 보편적 복지 제도,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같은 사회투자 강조라는 점에서 정책 공통점이 많다.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까지 고령노동자들의 조기 은퇴를 쉽게 만드는 정책이 인기 있었고, 덴마크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그러나 이후 고령 노동자를 노동 시장에 붙잡아두려는 개혁 조치가 잇따랐다. 그 일환으로 1980년대 후반부터, 덴마크와 스웨덴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상병, 장애, 실업 수당의 관대함을 축소시키는 경향이 나타났다. 특히 덴마크와 스웨덴은 근로 환경을 개선하고, 유연직무(flexjob 플렉스잡) 형태의 일자리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의학적, 직업적 재활의 효과를 향상시키려 노력하는 등 사람들이 노동시장에 남아있도록 만드는데 최선을 다했다. 이러한 스칸디나비아식 접근은 대체로 성공적이라 말할 수 있다. 25-54세 연령군의 고용률은 남녀 모두 85%에 달한다. 그러나 55-64세의 고용률은 이보다 상당히 낮다. 예컨대 이들 중고령 집단의 2000년 고용률은 덴마크와 스웨덴 각각 55.7%와 66.7%였으며, 매년 늘어나서 2015년에는 각각 64.7%와 74.5%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2000년 이후 장애급여를 중심으로 복지 개혁이 이루어졌다. 덴마크와 스웨덴 모두 장애급여에 대한 자격 기준을 더욱 까다롭게 만들었다. 이는 건강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도 노동시장에 남아있게 만들려는 조치의 일부였다. 2003년 덴마크의 장애급여 개혁은 노동시장 잔류에 인센티브를 주었다. 그럼에도 좀처럼 기대한 효과를 얻지 못하자 2013년에는 장애급여의 자격 기준을 강화하는 개혁조치를 도입했다. 이제는 근로능력이 거의 없어서 일반 일자리는 물론 보조금 지급 유연 일자리에도 참여할 수 없는 이들에게만 영구 장애급여가 승인되었다. 또한 유연일자리는 일주일에 겨우 몇 시간 정도만 일할 수 있을 정도로 근로능력이 떨어진 이들에게까지 확장되었다. 2014년에는 상병보험급여에 대한 개혁조치가 도입되어, 급여 개시 1년 후부터 이루어지던 근로능력에 대한 평가가 5개월 후로 앞당겨졌다. 추가적 상병 휴업의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된 이들에게는 직업 재활 프로그램이 제공되었다.

 

스웨덴에서도 1980년대 상병과 장애 급여에 대한 국가 지출이 급등한 이후, 1990년대에 비슷한 변화가 일어났다. 장애급여 자격 기준은 지역 노동시장 사정은 고려하지 않고 오직 의학적 기준만으로 정해졌다. 2005년에는 병가와 장애수당 지급의 지역적 차이를 최소화하고 시민들이 동등한 대우를 받도록, 장애급여 청구에 대한 평가를 단일 정부 기구로 중앙 집중화했다. 이는 법률의 변화라기보다 집행의 변화라 할 수 있었다. 2008년에는 장애급여 자격 기준이 한층 더 엄격해졌다. 그 전에는 상황에 따라 일시적 혹은 영구적 장애급여가 인정되었다면, 2008년부터는 영구하게 근로능력이 저하된 이들에 대해서만 수급 자격이 주어졌다. 또한 고정된 시간 간격을 두고 근로가능성을 반복적으로 평가해야 했으며, 급여는 최대 1년까지로 제한되었다. 2015년에는 장애 청구 평가에 대한 중앙 집중화가 더욱 심화되었고, 청구 기각률이 70%에 달하게 되었다.

 

이들 두 나라에서 장애 급여 수준은 점차 낮아졌고, 정책의 초점은 경제적 안정성과 직업재활에서 근로에 대한 경제적 인센티브와 보다 엄격한 장애급여 자격 기준으로 이동했다.

 

문제는 이러한 개혁조치들이 노동 요구도가 점차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스웨덴의 경우, 직무긴장 (낮은 의사결정 지위와 높은 정신적 요구도)이 특히 여성 노동자 사이에서 증가했는데, 이는 서비스 부문, 특히 돌봄과 교육 같은 복지서비스와 주로 연관되어 있다. 장애급여 자격기준은 까다로워지고 노동시장에서의 업무 부담은 높아지는 상황에서, 건강문제나 기능제약이 있는 사람들은 협공을 당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연구팀은 이러한 맥락에서 각기 다른 수준의 건강 상태를 가진 사람들의 고용 상태가 개혁조치에 따라 어떻게 변화했는지 확인하고자 했다. 장애 급여 자격 기준이 까다로워지고 적용이 엄격해진다면 온건한 건강 문제를 가진 이들은 장애급여를 받지 못하고 공공부조나 임시 급여로 밀려날 것이고, 건강 상태가 좋거나 아예 심각한 건강문제를 가진 이들에서는 개혁 조치의 영향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가설을 세웠다.

 

이러한 가설을 검정하기 위해 연구팀은 SHARE (Survey of Health, Ageing and Retirement in Europe) 자료를 활용했다. 이는 유럽 여러 국가들에서 50세 이상 연령층에 대해 격년으로 시행하는 공통 조사이며, 덴마크와 스웨덴에서도 2004~2015년(1, 2, 4, 5, 6차)에 조사가 이루어졌다. 서베이에 참여한 50~59세 3,242명의 관찰자료 5,384건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건강 수준은 정신 건강 상태, 통증, 기능 제한의 세 가지 측면을 측정하여 점수화했고, ① 양호한 건강 상태(1점), ② 온건한 건강문제(2, 3점), ③ 심각한 건강문제(4, 5점)의 세 집단으로 구분했다. 고용 상태는 ① 피고용인이거나 자영업인 경우 고용군, ② 은퇴하거나 영구적 질병/장애를 가진 경우 장애 급여군, ③ 실업, 주부, 기타로 분류된 이들은 임시 혹은 비급여 군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장애급여 개혁 조치 전후, 건강 수준에 따라 고용상태와 급여 수급에 변화가 있는지 확인했다.

 

분석 결과, 건강 상태가 양호한 다수의 경우 장애급여를 받거나 임시급여를 받으면서 노동시장을 빠져나갈 위험은 개혁 이후 낮아졌고 그에 따라 고용률이 높아졌다. 반면 온건한 건강 문제가 있는 이들의 경우 고용도 어렵고 높은 직무 요구와 엄격한 급여 자격기준 때문에 장애급여도 받지 못할 것이라는 가설은 부분적으로 입증되었다. 건강문제가 심각한 이들이 영구적 장애급여를 받을 확률은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임시 급여나 비급여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은 우려할 만한 상황이었다.

 

연구팀은 건강과 근로능력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업무 요구도는 높아지면서 장애급여 자격기준은 엄격해짐에 따라 일을 하기도 어렵고 복지급여도 받지 못하는 삶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점을 비판했다. 용어는 복잡하지만,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 나온 바로 그 상황이다.

 

연구팀의 이런 우려와 비판조차 어쩐지 한국 사회에는 과분해 보인다. 지난 주 67세의 대학 청소노동자가 직원 휴게실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이 노동자가 발견된 곳은 섭씨 35도의 폭염에 냉방과 환기가 제대로 안 되는 공간이었다 (기사: 서울대 청소노동자 창문도 없는 휴게실서 사망학교가 책임). 원래 심장질환을 앓았고 수술도 예정되어 있었기에 근로환경보다는 ‘지병’ 탓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기사: 60대 서울대 청소노동자 휴게실서 숨져사인은 지병). 여러 가지 의문이 든다. 은퇴연령을 훨씬 넘겼고, 게다가 심장질환도 있는 고령의 환자가 왜 힘든 청소 일을 하고 있었을까? 건강 문제 때문에 일을 그만 두었다면, 국민연금, 기초노령연금, 퇴직연금, 혹시 기초생활수급, 이 중 어떤 것이 그의 생계를 보호해줄 수 있었을까? 심장질환이 있는 60대라지만 냉방이 잘 되는 사무실에서 부담이 적은 작업을 했어도 이런 비극이 벌어졌을까? 스칸디나비아의 소위 복지 ‘개혁’이 가져온 다니엘 블레이크 사례조차 언감생심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50~59세의 고령노동자를 노동시장에 잡아두는 정책이라니 말이다. 50대 초반에 원하지 않는 조기퇴직으로 절망하고, 70세가 넘어서까지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만 하고, 심지어 심장 수술을 앞두고도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노동과 복지의 부실한 연결 다리 위에서 사람들이 추락하고 있다.

 

서지정보

 

Natasja Koitzsch Jensen, Henrik Brønnum-Hansen, Ingelise Andersen, Karsten Thielen, Ashley McAllister, Bo Burström, Ben Barr, Margaret Whitehead, Finn Diderichsen, Too sick to work, too healthy to qualify: a cross-country analysis of the effect of changes to disability benefits J Epidemiol Community Health 2019;73(8) http://dx.doi.org/10.1136/jech-2019-212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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