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경(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얼마 전 보건복지부가 의료전달체계 개선 단기대책을 발표했다. 의료수가 구조의 조정을 통해, 환자 맘대로 대형병원을 선택하는 대신 의사가 판단하여 의뢰하도록 하고 각 지역의 의료기관을 더 많이 이용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고 야심차게 추진 중인 ‘문재인 케어’가 대형병원 쏠림을 부추기고 동네 병의원을 죽이고 있다는 비판에 대한 응답일 것이다. 사람들이 과연 정책 의도대로 움직일지 의문이지만, 지역의 의료기관을 이용하도록 규제하는 것이 지역 간 혹은 지역 내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것은 아닐지 우려스럽다.
보건정책은 실험실 연구처럼 외부환경을 통제하고 임의로 조건을 변화시킴으로써 그 효과를 평가하는 것이 어렵다. 그러다보니 해외나 다른 지역에서 시행한 비슷한 정책들을 면밀하게 분석하는 것은 정책의 도입 여부를 판단하거나 효과, 부작용 등을 예측하는데 현실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 마침 국제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 최근호에는 중국의 보건의료 전달체계 개혁 정책을 평가한 논문이 출판되었다(논문 “중국의 의뢰체계 개혁이 보건의료자원의 형평성과 지리적 접근성에 미친 영향: 베이징 사례 연구”). 건강보장을 비롯한 보건의료체계의 특성이 한국과 다르기 때문에 이 사례를 그대로 한국에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정책이 어떤 조건과 맥락에서 실패하거나 성공할 수 있는지 단서를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연구팀은 베이징의 공공병원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공공병원은 중국 의료서비스 제공의 약 85%를 담당하며, 공식적으로는 의료기관들 사이에 1차-2차-3차 병원의 위계적 전달체계가 존재한다. 물론 현실은 원칙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큰 어려움 없이 어느 병원이든 직접 선택하여 갈 수 있고, 자연스럽게 질이 높고 명성이 있는 3차 병원에 환자들이 몰렸다. 2012-2015년도 ‘베이징 건강과 가족계획 개발’ 통계집에 의하면 1차병원에서 30%, 2차병원에서 17%의 환자를 진료한 데 비해 3차병원에서 53%의 환자를 진료한 것으로 나타났다. 위계적 의료(전달)체계는 실패한 것이다. 2015년 시행된 보건의료개혁은 환자가 우선 일차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야 보험에서 의료비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이곳의 의사 판단에 의해서만 상급 병원으로 의뢰가 가능하도록 했다.
이 연구는 이러한 정책변화 상황에서 수도 베이징의 자료를 이용하여 의뢰 개혁 정책이 공공보건의료의 접근성과 지역 형평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평가했다. 임계거리 내 공급(의료인력)과 수요(환자)를 고려하는 공간접근성 분석(2SFCA)을 이용하고, 의뢰율은 (조사된 자료를 구할 수 없어) 10%부터 90%까지 5단계로 가정하여 각 시나리오에 따른 접근의 지역 형평성을 계산하였다.
분석 결과 개혁 전에도 의료기관 접근성에는 지역 간 불평등이 존재했으며, 시내 중심 쪽이 외곽에 비해 접근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개혁 이후 베이징의 공공의료 접근성은 전반적으로 개선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접근성의 불평등은 심해졌다. 1차병원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으나 2차와 3차병원 접근에서의 불평등이 심해진 것이다. 그 이유는 1차병원이 도시 전체에 고르게 분포하는 반면, 상급 병원은 도심지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베이징의 경우 3차병원의 85% 이상이 도시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고속도로가 발달하거나 행정기관이 있고 인구밀도가 높은 외곽 지역에서는 그래도 접근성이 높았지만 대부분의 외곽 지역은 교통 인프라가 불편하고 인구가 적어 접근성이 떨어졌다. 말하자면, 의뢰 규제를 통한 의료전달체계 개혁이 전반적 접근성은 높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역 간 의료자원의 양과 질을 보장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불평등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연구는 보여준다.
연구팀은 정부가 의뢰시스템을 통제하기에 앞서 기능에 따른 의료자원의 분배와 조정을 먼저 개선하고 외곽 지역에 더 많은 공공 의료기관과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혀 다른 의료체계이지만, 이러한 주장은 한국 상황에도 잘 들어맞는다.
왜 지역 주민들이 힘들여 원거리 대도시의 대형병원을 가려 하는지 정책결정자들은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과잉진료와 낮은 질로 소문이 자자하지만 지역에 하나밖에 없는 병원이라서 어쩔 수 없이 그곳을 이용하며 불안해하는 사람들, 왜 우리 지역 의료기관을 안심하고 갈 수 없는가에 속이 끓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책 결정자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제도 개선은 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인데 ‘재정’ 혹은 ‘효율성’이나 ‘질서’를 위해 사람들이 현실에서 경험하는 불편과 고통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지금 시급한 것은 보건의료자원의 양과 질 측면에서 지역 간 불평등을 완화하는 대책이다. 이러한 대책이 제대로 실행되어야 비로소 전달체계 개혁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가까운 곳에 신뢰할 수 있는 양질의 병의원이 존재한다면 누가 굳이 먼 곳의 대형병원을 고집하겠나? 그렇게 된다면 정부가 나서 의뢰 구조를 강제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전달체계가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서지정보
Lu, C., Zhang, Z., & Lan, X. (2019). Impact of China’s referral reform on the equity and spatial accessibility of healthcare resources: A case study of Beijing. Social Science & Medicine, 112386.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