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이른바 ‘의료전달체계 개선’이라는 주장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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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등 가벼운 질환으로 대형병원을 찾아가 외래진료를 받았다가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본인 부담 의료비를 물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4일 합리적 의료이용과 지역의료 활성화를 위한 ‘의료전달체계 개선 단기대책’을 내놓으면서 이런 방향으로 환자의 적정 의료 이용을 유도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무엇보다 경증질환으로 상급종합병원 등 대형병원 외래진료를 이용하려는 환자의 비용부담 체계를 합리화하기로 했다.” (기사 바로가기)

 

최근 정부가 발표한 ‘의료전달체계 개선’ 대책의 핵심 내용이다. 언론이 뽑은 머리말이 무엇일까? “감기로 종합병원 가면 진료비 더 내야”라는 평범한 제목이 흔하지만, ‘진료비 폭탄’이라는 과격한(?) 말도 한둘이 아니다.

 

언론이 제 노릇을 하는지 따지는 것은 새삼스러우니, 그냥 넘어가자. 정부의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삼은 언론 기사는 그 와중에 크게 두 흐름으로 확연하게 나뉜다. 하나는 병원과 의원 등 의료기관의 반응을 그대로 전하는 것, 다른 하나는 환자 특히 비수도권 지역 주민을 대변하는 것.

 

의료기관의 반응과 의견은 예나 지금이나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 요약하면 여러 이해관계가 핵심이다. 환자 수와 질환, 불편, 진료비 등을 말하지만, 결국 각 기관의 ‘경제’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벗어나기 어렵다.

 

제제에 속하는 한 ‘합리적’ 반응이니, 이에 공적 역할이나 윤리를 동원하는 것은 번지가 틀렸다. 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빌린 돈을 갚아야 하며 달마다 직원 월급을 지급해야 하는 경제적 주체가 무슨 다른 관심을 앞세울 수 있을까.

 

지역 주민과 환자도 합리적이긴 마찬가지다. 괜히 허영과 오판, 무지로 큰 병원과 명의를 찾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 자신의 병을 진단하고 고치는 데는 ‘최선’과 ‘최고’를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 주어진 범위 안에서 가장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봐야 한다.

 

그중에서도 이 체계는 당장 ‘지역’ 문제로 비화할 수밖에 없다. 의료전달체계는 필연적으로 구속이고 제약이다. 서울이나 수도권을 명시하지 않고도 모두가 아는 일. 다음과 같은 반응이 이상한가?

이번 개선안을 두고 지방 환자의 진료권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상급종합병원 절반이 수도권에 분포하고 지방과 수도권 간 의료 인력 수준 차이도 크다는 겁니다. 

실제로 일각에서는 “똑같이 의료보험료 내는데 병원도 맘대로 못 가나”, “서울권 대형병원 의사들이 잘 하는 건 사실”, “지방 사람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등의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사 바로가기).

안타깝게도, 우리는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성공’하지 못하리라 예상한다. 아니, 성공 여부에 큰 관심이 없다는 편이 더 솔직할지도 모르겠다. 설사 현재 목표를 달성한다 하더라도 누구에게 무엇이 좋은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 핵심 이유다.

 

성공의 가치를 따지기 어려운 첫째 이유는 이 정책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고치려고, 어떤 결과를 바라는지, 편향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책의 궁극적 ‘고객’, 한 마디로 환자와 보건의료 이용자에게 무엇이 좋은지 잘 알 수 없다.

 

정부와 정책은 궁극적 가치, 그중에서도 사람(국민) 중심의 시각을 잃을 때 가장 위험하다. 의료전달체계에서도 서로 다른 의료기관 사이의 역할 분담을 말할 뿐 사람들의 편익에는 무감각하지 않은가. 환자의 ‘적정의료’를 유도한다는 목표를 말했지만, 적정의료가 무엇인지, 그렇게 되면 환자에게는 어떤 도움이 되는지 침묵한다. 혹시 모두가 알고 있다고 할 수도 있으나, 그건 오산이다.

 

둘째, 지금 제시한 정도를 진짜 목표로 하더라도 원하는 효과를 볼 것 같지 않다. 병원이든 환자든 결국 돈으로 흐름을 바꾸겠다는 의도면 실효를 장담하기 어렵다. 아니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뭔가를 하라는 압력이 강하다는 것도 알지만, 정부도 그 효과를 확신하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이번 정책도 여러 압력에 대한 ‘면피용’이라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병원과 환자 모두에게 돈(진료비) 문제는 아주(!) 중요하지만, 어떤 병원 어떤 의사를 찾는지는 그 이상이다. 이미 다 알지 않는가. 병원과 의사가 환자를 받고(의뢰) 동네 의원이나 지역으로 돌려보내는(역의뢰) 데는 경제적 이해관계(진료비 수입과 부담) 외에도 갖가지 이유가 존재한다는 것을.

 

짧은 지면에 모두를 설명하기 어려우니 한두 가지만 말한다. 먼저, 체제를 장악한 경제 논리에 익숙한 정책 당국이 가장 소홀하게 생각하는 문제. 질병과 의료는 평생에 ‘일회적’이거나 아주 ‘드문’ 사건이라는 점이다. 사회적으로는 흔한 질병이어도 개인 환자는 가장 심각하게 마치 마지막인 것처럼 좋은 의사와 병원을 찾으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가격으로 수요를 조절한다? 드물고 불확실한 상황, 게다가 되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으면 누구나 어지간한 비용은 감수하려 하지 않을까? 그 비용 때문에 믿을 수 있는 그 큰 병원과 의사를 바꾼다고?

 

병원도 마찬가지다. 병원의 진료비 수입은 단지 어느 날 어느 개인 외래 환자 수입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외래는 다른 외래 수요, 각종 검사, 응급, 입원 진료의 진입 지점이며 관계를 유지하는 고리로, 그런 점에서 흔히 말하는 병원 경영을 좌우하는 ‘가치 사슬’의 핵심이다. 외래 수입을 낮춘다고 이것을 포기한다고?

 

정책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할 더 많은 이유를 제시할 수 있으나 이 정도로 하자. 한 마디로, 환자는 크게 좋아지는 것도 없으면서 비용만 더 부담하고, 병원과 의원은 어떤 식이든 살아남을(!) 공산이 크다. 그 과정에서 갖가지 ‘풍선 효과’가 나타날 것이 틀림없다.

 

만에 하나 이 정책이 성공하더라도 환자와 지역 주민에게, 그리하여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적으면 사실상 문제는 그대로다. 이른바 ‘사람 중심’의 관점에서 전달체계를 개혁하는 과제가 남는다.

 

어떤 개혁을 말하는가? 불과 석 달 전에 우리가 생각하는 대안을 주장한 바 있다(논평 바로가기). 그 결론이 지나치게 ‘종합판’이라 비판해도 하는 수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은 달리 존재하기 어렵다.

“의료이용체계 개선을 위한 국가 개입은 전체 보건의료 개혁과 동의어다. 따로 떼서 일차의료 한 가지를 강화하려 해도 인력, 시설, 재정, 서비스, 관리와 정책이 다 붙어야 한다. 교육과 지방자치제도까지 같이 손을 봐야 할지도 모른다. 의료이용체계 개혁이 곧 전체 체제 개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수상한 시절에서 교훈을 얻어 한 가지를 보탠다. 이 대안 또한 민주주의의 확대, 심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 그것 없이는 의료전달체계조차 기우뚱한 권력의 자의와 전횡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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