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모든 ‘개혁’의 관점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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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모든 의제를 빨아들인 형국이되 방향은 압력 쪽에 가깝다. 특정인의 장관직 수행에는 의견이 확 갈리지만, 어떤 식이든 검찰 권력을 바꾸어야 한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어 보인다. 이 사태의 결과와 무관하게 외부로부터의 개혁 드라이브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른 편에서 보면, 문재인 정부 또한 검찰 개혁에 명운을 걸 수밖에 없게 되었다. 처음부터 그럴 의도는 아니었을 터. 여러 공약이나 국정과제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나, 이제는 정권 전체의 성과 또는 역사적 평가를 가름할 상황이다.

 

조금만 더 멀리 보면 그다음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흘러넘치기’ 효과라 할까 ‘물꼬’ 효과라 할까, 검찰 개혁을 ‘필생’의 과제로 격상하면 수많은 적폐가 다시 호명될 운명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이미 언론, 대학교육, 정치, 사법 등이 순서를 기다리는 꼴이 아닌가. 공정성과 불평등을 둘러싼 논란도 곧 개혁 과제니, 어느 누가 이를 피할 수 있을까.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는 이렇게라도(그리고 이제라도) 개혁 논의가 제 길을 찾기 바란다. 정권 후반기(!)에 비로소 개혁 동력이 살아나기를 바라는 마당이라 좀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개혁의 구조와 과정, 어려움과 저항, 무엇보다 그를 둘러싼 권력 관계를 절감하게 되었으니, 흘러넘치고 널리 퍼져 개혁이 ‘주류’가 되었으면 한다.

맥락이 있는지라 개혁의 실질을 말하기에 앞서 개혁에 대한 생각부터 가다듬는 것이 급선무다. 달리 표현하면 ‘개혁론’을 개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그렇지 않고는 개혁은 중구난방, 목표를 제대로 잡기 어려울 것이 틀림없다. 아니,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감당해도 개혁은 이해관계의 난장판이 될 뿐 출발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묻는다. 검찰 개혁은 왜 하려 하는가? 선거제도, 사법부, 언론, 대학 입시, 재벌을 개혁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더 구체적인 정책도 있다. 문재인 케어와 의료전달체계, 국민연금제도, 사립유치원을 왜 고치자는 것인가? 누구의 무엇을 위해?

상식적이지만 늘 우리가 소홀하게 생각하기 쉬운 질문들. ‘어떻게?’는 다음 문제다. ‘왜?’가 정확하지 않으면 개혁을 밀고 끌고 가는 힘이 생기지 않을 것이 뻔하다. 이유는 곧 방향이니, 그것이 명확하지 않으면 각양각색, 백가쟁명, 다른 무엇보다 개혁은 각자의 좁은 이해관계를 넘어 사회화되기 어렵다.

 

첫째 원칙. 우리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고통과 문제에서 개혁이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 보통 사람들을 국민, 인민, 시민, 주민, 그 무엇이라 불러도 좋다. 법 조문이나 이론에 등장하는 추상적 실체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어디선가 마주치는, 힘껏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늘 모종의 권력관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언론이나 여론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때로 그 사람들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톨게이트 옥상에 올라가야, 때로는 그것도 모자라 여성노동자가 상의를 벗어야 겨우 눈길을 주는 것이 기울어진 공론장의 실체다. 그래서 때로 증거보다 관점이, 현장보다 공감이 더 중요하다.

 

또한, 사람들의 고통은 객관적이면서 아울러 주관적이다. 톨게이트 비정규 노동자가 겪는 이런 고통을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임금, 고용 안정성, 정규직, 직접 고용 같은 개념어로는 전혀 충분치 않다. 사람 중심이 되면 확실히 더 넓어진다.

“우리가 공기업(사무직)에 있는 사람들이 받는 것처럼 연봉을 몇천, 몇억씩 달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다. 마음 편히 해고 위험 없는 직장에서 일하고 싶다.”(기사 바로가기)

이런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공수처 설치나 특수부 폐지는 한참 가야 이해할 수 있는 개혁 과제다. 사법이나 경찰의 개혁도 마찬가지, 그보다 훨씬 더 급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예를 들어 대기업에는 한없이 너그럽고 노동자에는 끝없이 가혹한 그들의 기울어진 저울추를 바꾸는 일(기사 바로가기1, 바로가기2).

분야는 다르지만, 의료전달체계나 문재인 케어의 정당성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개혁은 누구의 어떤 고통을 줄이려 하는 것인가? 다음과 같은 살아있는 고통을 해결하지 못하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개혁 ‘비즈니스’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곽씨는 가까운 병원 응급실이 없어지면서 가는 데 40분 넘게 걸리는 다른 병원으로 가야했습니다. 서울과 달리, 지방은 환자도 줄고, 의료진 구하기도 힘들고 지방 병원들 운영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응급실마저 사라지고 있는 것인데요. 저희 취재 결과 주민들이 30분 안에 응급실에 가지 못하는 지역이 전국에 99곳이나 됩니다. 사고도 질병도, 지역을 가리면서 찾아오지는 않죠. 이대로 가다가는 지방에서는 피할 수 있었던 죽음이 계속 늘어날 수 있습니다.” (기사 바로가기)

우리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고통과 문제에서 출발하는 개혁을 ‘사람 중심’의 개혁이라 부르고 싶다. 주인공은 빠진 채 기계적으로 이어 온 과제가 아니라, 목표와 구호만 남아 스스로 소외된 가치가 아니라, 지금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아프고 힘든 곳, 절박하게 바라고 구하는 것, 진심으로부터 지지하고 힘을 보태려는 과제에서 출발하자는 것이다.

 

혹시 오해할까 싶어 보탠다. 검찰, 사법, 언론, 교육, 보건의료 개혁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관점이 ‘사람 중심’이 될 때, 우선순위가 달라지고 목표가 바뀌며 방법조차 새로워진다는 것이 핵심이다. 개혁의 동력도 당연히 다르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단연 결과다. 개혁의 결과, 그 과실이 누구에게 어떻게 갈지가 근본적으로 달라지리라 믿는다.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고통과 문제가 줄고 삶은 더 나아져야 하며 더 평등해야 한다. 또한, 사람 중심의 개혁이란 무릇 그 과정 또한 민주적이고 공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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