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썽(?) 많던 공공의대 설립 법안이 국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하지 못해 본회의는커녕 해당 상임위원회까지도 가지 못한 것이다. 정기국회가 곧 끝난다니 언제 다시 논의할지 기약이 없다.
공공의대 설립을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는 2018년 4월에 낸 <논평>을 통해 의미와 한계를 짚고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서리풀논평 바로가기).
모든 관련 당사자에게 당부한다. 설립주체가 누구인지 되새기면 ‘국립’ 공공의료대학도 정부 소유를 의미하지 않는다. 특정 정권이나 정치세력, 일부 집단의 것도 아니어야 한다. 지역과 지역발전 논리가 득세해서도 곤란하다. 헌법에 명시된 그 ‘민주공화국’이 세우는 대학으로 이해하는 것이 마땅하다.
국립 공공의료대학은 하나부터 열까지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진일보한 공공보건의료 시스템 구축과 결합해야 한다. 좀 더 적극적으로는, 제도로서의 공공을 넘어 전체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큰 그림’에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후 행정부와 국회에서 벌어진 일은 우리가 걱정한 그대로, 어떻게 한치도 벗어나지 않을까? 스스로 생각해도 놀랍다. 특히 이해관계의 각축. 행정부, 여당과 야당, 의료계와 지역 모두 얼마나 이에 충실했는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공공의대 하나만 놓고 보면 20대 국회가 끝날 때까지는 가능성이 남아 있다 하니, 우리는 다시 묻고 싶다. 그래서, 어찌어찌 국회를 통과해 공공의대가 출범할 수 있다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이를 뒷받침할 ‘진일보한 공공보건의료 시스템’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가. “전체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큰 그림’”이 있기는 한가.
본래 공공의대는 작게는 공공보건의료 시스템을 강화하고 크게는 한국 보건의료체계 전반의 공공성을 높이는, 말하자면 상징이자 마중물 같은 역할을 하자는 것이다. 설마, 한해 50명도 되지 않는 졸업생으로 근본까지 바꾼다고 기대하지는 않으리라. 보건의료 시스템, 보건의료, 한국 사회가 가야 할 방향에 아이디어와 힘을 보태는 내용과 형식이 아니면, 더 큰 간접 효과를 보고 하는 일이 아니면, 유치해야 할 지역사업 이상이 되기 어렵다.
그냥 법안 하나, 기관 신설, 또는 지역 공약 차원을 넘지 않으면? 필시 이해관계 투쟁과 정략, 관련자의 일차원적 욕망에 휩쓸리게 마련이다. 공공성은 사라지고 당연히 사리사욕이 난무한다. 국회에서 공공의대를 논의할 때 난무한 그 말, 말, 말들을 참고하시라.
눈을 들면, 국가권력의 (상징을 통한) 통치와 집단적 이해관계가 결합한 기묘한 결과물은 공공의대에 그치지 않는다. 사실 공공의대는 아직 성공하지 못한 경우, 벌써 제도와 행정의 틀을 통과한 사례도 있으니 의료 분야만 해도 얼른 꼽아 둘이 넘는다.
소방청은 소방공무원 국가직화와 더불어 소방공무원의 오랜 숙원이었던 ‘소방복합치유센터 건립사업’이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를 11월 27일 통과했다고 밝혔다….소방복합치유센터는 총 사업비 1,328억원을 투입하여, 소방공무원의 주요 상병 치료에 특화된 근골격계·PTSD·화상·건강증진센터 등 4개 센터에 21개 진료과목과 3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으로 건립할 계획이다(관련자료 바로가기).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 소방청은 이 센터를 만들면 “67.1%에 달하는 소방공무원의 건강이상 지표가 완화될 것으로 기대되며, 특히 소방건강연구실의 소방공무원 주요 상병에 대한 진료와 연구기능은 임용부터 퇴직까지 공직 생애기간 동안의 건강관리가 가능해진다”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될지 잘 모르겠다. 타당성의 근거로 내놓은 통계만 해도 대상자가 전국 방방곡곡 3만 명이 넘는다는데, 충북 음성에 센터를 지어놓고 무얼 얼마나 할 수 있다는 뜻인지 얼른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부 전문 치료와 전국적 지휘 기능 이상을 할 수 있을까? 전국에 흩어져 있는 소방공무원의 건강을 관리할 ‘국가체계’는 따로 있는가?
그 악명 높은 산재에도 상징을 통한 통치가 어른거린다.
울산광역시에 들어설 산재전문공공병원이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에서 면제됐다. 향후 병원 설립이 빠른 속도로 추진될 전망이다….산재전문공공병원에는 총 사업비 2300억원이 투입돼 중증 산재환자 전문 치료 및 직업병 분야 R&D 기능이 구비될 전망이다. 사업내용은 총 300병상 규모에 16개 진료과 및 연구소 등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예비타당성조사까지 면제했지만, 산재전문 공공병원을 새로 짓는 논리는 참으로 궁색하다. 이런저런 말을 가져다 붙였으니 전혀 설득력이 없다. 처음부터 산재가 아니라, 심지어 의료도 아니라, 지역사업과 경제 논리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추진하려는 산재전문 공공병원의 역할로 내세우는 문제는 기존의 기관들이 하고 있어 새로운 것이 없다”고 말했다. 즉 외상을 제외하고는 산재자 대부분이 근골격계나 뇌심혈관계 질환이고 새로운 직업병 연구는 산업안전보건원이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직업병 연구소나 재활보조기구 연구소를 설치한다고 하지만 이도 산업안전보건원이나 재활공학연구소가 이미 수행하고 있어 재탕에 그친다는 지적이다.(관련기사 바로가기)
비수도권, 비도시 지역의 공공보건의료 확충과 의료인력 확보, 소방공무원의 건강관리와 보건의료 서비스, 산재 환자 진료와 재활에는 누구나 국가의 책임을 떠올린다. 정당성을 인정받고 싶은 국가라면 아무 문제가 없는 듯 행동하기는 어렵다.
‘국가이성’은 사회가 공유하는 국가의 책임에 대해 통치의 압력과 동기를 회피하지 못한다. 공공보건의료, 소방공무원의 건강보호, 산재환자의 복지는 국가 통치의 대상이자 수단이며, 공공의대, 소방전문병원, 공공 산재병원은 (의도와 무관하게) 이런 통치를 상징한다.
좋은 통치와 상징이라면 왜 나쁘겠는가. 온 사회 사람들의 관심과 힘을 모으고 경제와 시장에 간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것을 제대로 반영하면, 또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상징을 활용한 통치가 ‘국리민복’에 이바지한다.
문제는 최소한도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런 상징은, 또한 그를 활용한 통치는 금방 바닥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통치는 당연히 실패하고, 상징은 결국 아무것도 상징하지 못한다. 사람들의 행복과 안녕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
성공하는 유일한 방법은 통치와 피치(被治)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것이다. 통치는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진짜 문제, 힘들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그 본질적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상징으로 끝나지 않고 체계를 만들고 강화하는 것이 한 가지 유력한 방법임을 강조한다. 공공의대는 지역의 공공의료를 확충하는 국가 시스템에, 소방전문병원은 소방공무원의 건강을 보장하는 전국적 체계에, 그리고 산재병원은 산재환자의 치료와 재활 시스템에, 한 요소로 기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