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거리의 태극기부대, 안녕하신가요?

991회 조회됨

 

김성이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11월 마지막 주말 서울 도심에서는 현 정부의 노동법 개악을 반대하고 자유한국당 해체를 요구하는 전국민중대회,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촛불집회, 문재인정부를 규탄하는 보수성향의 집회들이 동시에 열렸다.

이 중에서도 극우보수성향 단체들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박근혜 전대통령의 탄핵 철회, 조국 법무부장관 지명 반대, 지소미아 중단 반대, 공수처 반대 등 정부의 거의 모든 주요 정책들이나 개혁 과제들을 정면 반대하며 거리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아스팔트 우파’ 또는 ‘친박 태극기부대’라고 불리던 소수의 수구 세력이 박근혜 정부 시절을 거치며 ‘관제데모’ 지원에 힘입어 세력을 키웠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관련 기사: 청와대, 4대기업 70억 걷어 아스팔트 우파지원). 이들 단체들은 성소수자와 난민,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혐오발언을 일삼고 평화로운 대중 집회를 방해하는 것도 모자라, 시민들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초등학교, 맹학교 학생들을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연세대, 보수세력 항의에 인권·젠더강의필수교양 지정 철회, 박근혜 석방 그 황홀한 꿈꾸는 성조기 부대, 극우단체, “전두환 물러가라외친 초등학교 앞에서 항의집회, 청와대 앞 보수단체의 도 넘은 행태 세월호 시민폭행하고 맹학교 위협).

 

위안을 받을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한국만의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브라질,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헝가리, 폴란드, 심지어 스칸디나비아까지 난민과 이민자, 소수자를 배척하는 극단적 정책을 주장하는 (극)우익 포퓰리즘이 선전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지의 분석에 따르면, 2018년 유럽 31개국 총선에서 유럽인 네 명 중 한 명이 포퓰리즘 정당을 지지했다고 한다 (관련 기사: 어떻게 포퓰리즘은 유럽에서 선거 세력으로 떠올랐는가). 독일 드레스덴에서는 네오나치가 활보하고, 거짓말 대통령이라던 트럼프는 자신에 대한 모든 비판을 ‘가짜뉴스’라고 공격하며 여전히 건재하다. 유럽의 극우정당들은 중도, 좌우파 정치세력 모두에게 연정 파트너로 러브콜을 받고 있다 (극우 몸살앓는 독일 드레스덴, `나치 비상사태` 선포, “트럼프, 취임 99일중 91일 거짓말”, 1당 독주 힘들어진 유럽극우정당이 연정 킹메이커).

 

정치학이나 사회학 분야에서 포퓰리스트 정당, 혹은 극우 세력들의 실체와 행동의 동기를 분석하는 작업이 활발해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이제는 보건학 분야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포착된다.

최근 국제학술지 <역학과 지역사회건강>에 발표된 이탈리아 로마 사피엔자 대학과 미국 하버드대학교 공동 연구팀의 논문은 유럽 내 극우 정치세력의 발흥에 주목하면서 이를 지지하는 이들의 특성과 건강수준을 다른 정치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과 비교해서 살펴보고 있다 (바로가기: 유럽에서의 우익 포퓰리즘과 자가평가 건강수준에 관한 다수준 분석).

지금까지의 일관된 가설은,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이 자유주의자(리버럴)에 비해 사회경제적 지위가 더 안정적이고 금연과 절주 같은 건강증진 활동을 더 열심히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주관적 건강 수준이 더 높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연구팀은 우익 포퓰리즘 지지자들 내부의 양극화 때문에 전통적 보수주의자들과는 다른 건강결과를 보일 것이라 예상했다. 연구팀은 EU 18개국 24,617명이 참여한 2016년 유럽사회조사 (European Social Survey) 자료를 이용하여, 주관적 건강 수준(‘좋다’ vs. ‘그저 그렇다/나쁘다’)과 정치 이데올로기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정치 이데올로기는 최근 선거에서 (극)우익 포퓰리즘 정당, 전통적인 보수정당, 사민주의 정당 중 어느 정당에 투표했는가로 평가했다. 또한 연령과 젠더, 교육과 소득 수준, 결혼 상태, 행복감, 사회적 자본 같은 개인 요인들을 고려했다.

 

분석 결과, 우익 포퓰리즘 정당에 투표한 사람은 남성(54.4%)이 여성(45.6%)보다 많았다. 이들은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낀다는 응답이(3.8%) 전통적 보수주의자(2.0%)나 사민주의자(2.4%)보다 많았고, 전반적인 신뢰와 유럽의회에 대한 신뢰도가 낮았다 (우익 포퓰리스트 11.7% vs. 보수주의자 17.7% vs. 사민주의자 18.6%).

정치 이데올로기와 주관적 건강수준의 연관성을 살펴보면, 주관적 건강상태를 ‘그저 그렇다/나쁘다’고 응답한 비율이 전통적 보수주의자에 비해 우익 포퓰리즘 정당 투표자들이 1.43배, 사민주의정당에 투표한 사람은 1.33배 많았다. 우익 포퓰리즘 정당 투표자들의 주관적 건강상태가 가장 나빴다고 할 수 있다.

개인 수준의 여타 요인들을 보정한 분석 모델에서도 그 크기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우익 포퓰리즘 정당 투표자 1.21배, 사민주의 정당 투표자 1.19배) 세 집단 간의 차이는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연구팀은 다수준 분석 결과, 주관적 건강수준이 나이나 성별, 사회경제적 수준보다 정치 이데올로기와 더 관련 있다고 결론지었다.

 

연구팀은 개인수준의 요인을 고려하더라도 우익 포퓰리즘 정당 지지자들이 다른 정치 이데올로기 지지자들보다 자가평가 건강수준이 일관되게 낮은 이유를 행복감과 사회적 자본의 효과로 설명했다. 즉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고 비공식적 사회 네트워크와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많이 가진 사람은 자신의 건강상태를 좋다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우익 포퓰리즘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다른 정치 이데올로기를 가진 집단에 비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우익 포퓰리스트들은 ‘과거에 대한 기대’와 ‘사회적 비관론’에 기대고 있어 행복감이 낮기 때문이다. 로버트 퍼트넘의 사회적 자본 이론에 따르면 사회 네트워크가 강한 사람일수록 타인에 대한 신뢰가 높고 민주적 가치를 공유하는데, 우익 포퓰리스트 지지자들은 사회적 자본이 매우 적은 상태라서 결국 스스로의 건강을 나쁘게 인식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우익 포퓰리즘 지지자들의 이렇게 주관적 건강수준이 낮게 나타나는 현상을 몇 가지 기전으로 제시했다. 우선 도널드 트럼프나 브렉시트를 지지한 사람들은 두려움에 더 민감한 투표자들이었다. 우익 포퓰리즘 정당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유발하는 레토릭을 사용하고 심각한 위기가 있는 것처럼 선동하며 이들을 유인했다. 둘째 건강의 자기책임을 강조하는 보수주의 가치가 세 집단 간의 건강수준의 차이를 낳았다. 셋째 사회적 통합감이나 유럽통합의 혜택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은 사람들이 주류 정치로부터 주변화되어 우익 포퓰리즘 정당을 지지하게 되었다. 특히 우익 포퓰리즘을 지지하는 남성들의 건강이 나쁜 것은 글로벌 경기위축으로 인한 상대적인 사회적 지위 상실 효과로 설명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해석은 과거의 권위주의 정치인들과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급변하는 사회경제적 변동을 위기로 인식하는 한국의 극우보수세력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려스러운 점은, 사회적 자본과 민주적 가치의 공유라는 점에서 볼 때, 한국에서 포퓰리즘이 더욱 폭발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최근 보고에 의하면, 사회적 자본에 대한 세계 조사에서 한국은 전 세계 167개국 중 142위를 차지하여 타인과 국가제도에 대한 매우 낮은 신뢰도를 보여주었다 (관련 기사: 한국인 상호신뢰 바닥긴다사회자본 167개국 중 142).

 

삶의 존재론적 위험에 처한 사람들의 불안 심리에 편승하여 감정적 선동과 확증편향을 재생산하는 퇴행적 포퓰리즘 정치는 세계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우익 포퓰리즘 정치인들의 자극적 언사는 지지자들에게 일시적인 불만 표출의 기회와 소속감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차별과 배제는 그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가 속한 사회를 더 병들게 할 뿐이다. 최근 노르웨이의 우익 포퓰리스트 보건장관이 술·담배는 알아서 하라는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관련 기사: 노르웨이 새 보건장관 ·담배 알아서 즐기세요), 우익 포퓰리즘의 가장 큰 해악은 이런 반지성주의와 탈진리를 개인의 자유와 선택으로 환원하며, 지금껏 인류가 합의해온 최소한의 사회적 양심과 상식을 파괴하고, 민주적인 제도적 절차를 붕괴시킨다는 데 있다.

 

정치학자 샹탈 무페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은 기존의 엘리트와 전문가집단 그리고 중도파 정당들이 해결하지 못한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의 실패를 커뮤니케이션 혁명의 도움을 받아 다양하게 표출하는 ‘포퓰리즘 모먼트(populist moment)’이기도 하다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문학세계사, 2019)). 오늘도 차가운 거리에서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까지 흔들고 선 사람들의 건강과 안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대의 불안과 불만을 근본부터 따져 묻는 급진적인 정치가 필요해 보인다.

 

(끝)

 

 

*서지정보

 

Insa Backhaus, Shiho Kino, Giuseppe La Torre, Ichiro Kawachi. Right-wing populism and self-rated health in Europe: a multilevel analysis. J Epidemiol Community Health 2019;73:1116–1121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는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시민건강연구소 정기 후원을 하기 어려운 분들도 소액 결제로 일시 후원이 가능합니다.

추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