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이하 ‘건보)은 의료 이용을 보장하려는 유력한 제도이자 수단이지만, 한편으로 엄청난 산업이자 살벌한(?) 경쟁이 벌어지는 시장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속하는 한, 산업과 시장 논리는 건보를 움직이는 중요한, 아니 핵심 원리인 것이 틀림없다.
다음과 같은 언론 기사들은 배후에서 작동하는 산업과 시장 논리를 고려하지 않고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 ‘시장’은 거의 모든 서비스, 약, 장비와 기구, 물품, 재료, 검사 등이 거래되는 독과점 시장이라는 것도 추가 고려사항이다.
임플란트 건강보험 적용 범위가 확대되고 이용 인구가 크게 늘면서 임플란트 제작업체들의 매출액이 수직 상승 중이다. 노인 인구는 점차 증가하는 추세여서 업체들 실적은 갱신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기사 바로가기)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보험 적용`입니다. 저는 `기승전 수가`라고 표현을 하는데요. 정부가 관심 있게 지켜보면 수가를 적용해서 시장을 열어줄 여지가 꽤 많습니다. 규제를 푸는 것도 좋지만 돈 벌 수 있는 시장을 열어준다면 기업들이 알아서 방법을 찾을 겁니다.” (기사 바로가기)
로봇에 의한 재활치료는 별도 수가 항목이 없어서 수기치료의 보험수가가 적용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조기에 보행재활로봇에 대한 적정 수가화가 실패한다면 국내 기업은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다. 결국 살아남은 해외 기업이 우리 건보 재정의 혜택을 독점하는 상황이 오게 될 것. (기사 바로가기)
약가제도 개편은 대형·중견·중소제약사를 막론하고 단기 매출 손실이 불가피하다. 10대 대형제약사의 경우, 시뮬레이션 결과 작게는 30억 원에서 많게는 80억 원 상당의 피해가 예상된다. 위탁생동 비율이 높은 일부 중소제약사는 이보다 더 큰 폭의 외형 축소도 감지된다. (기사 바로가기)
새로운 서비스, 약품, 기기는 유리한 조건으로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그리고 기존의 것들은 더 나은 조건을 차지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새로운 기술과 약은 쓸 만하다고 건보 ‘급여’로 인정을 받아야 하고, 일단 급여가 되면 가격(수가)이 높을수록 유리하다.
건보 시장은 고유한 목적을 가진 시장으로, 산업의 논리, 즉 생산과 판매 확대, 이윤 추구, 자본 축적의 논리와 완전히 조화하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을 만든 산업체가 성장하라고 무조건 건보에 포함할 수 없고, 제약산업을 지원한다고 효과가 의심스러운 구닥다리 약의 가격을 높게 매길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시장과 마찬가지로 건보 또한 경제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이다. 국가를 포함한 권력 사이의 균형 관계에 따라 시장 구조와 작동 방식이 달라지니, 때로 산업체와 기업의 요구가 더 힘이 세고 건보 재정은 ‘안정성’보다 ‘경제성’이 강조된다. 건보를 둘러싸고 규제혁신과 산업 경쟁력을 호출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따지고 보면 제네릭(복제약) 가격을 낮추겠다는 정부 방침에 반발하는 논리도 비슷하다.
20조원에 달하는 국내 제약바이오 외형을 그나마 이 만큼 성장시킨 주역은 바로 제네릭이다. 때문에 약가 보존은 제약바이오산업의 존폐가 달려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된다….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 그리고 기다림의 철학이 절실히 요구된다. 약가인하라는 1차원적 접근이 아닌 ‘한국형 제네릭’ 육성이라는 고차원적 제도와 정책을 다시 한번 기대해 본다. (기사 바로보기)
건보의 논리와 경제 논리, 이를 둘러싼 정치와 경제는 흔히 동시에 작동하고 때로 구분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이 정부가 추진 중인 ‘문재인 케어’는 건강과 보건의 논리가 더 큰 힘을 미친 결과지만, 규제혁신과 바이오산업 육성에는 산업 논리가 압도한다.
경제 투쟁이 약과 장비, 재료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커뮤니티케어에 대한 관심은 삶의 질과 돌봄 요구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 새로운 시장의 형성, 그리고 이를 둘러싼 직종과 직역의 경제 투쟁이 숨어 있다.
개혁이라 부르는 것들도 예외가 아니다. 예를 들어, 의료전달체계를 둘러싼 갈등은 대형병원과 일차의료 제공자가 건보 시장 점유율을 두고 벌이는 경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건강검진은 또 어떤가. 예방과 치료의 경계를 넘나드는 복잡한 시장 구조를 형성하는 중이다.
우리는 건보 시장에서 건강과 보건의료보다 경제와 산업 논리가 더 빠른 속도로 세를 키우는 중이라고 판단한다. 겉으로는 건강과 보건의료처럼 보여도 본질은 경제와 산업의 이해관계에 종속된 변화와 시도가 한둘이 아니다. 건보에 대한 경제화, 산업화, 시장화 압력은 앞으로 더 강화될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새로운 기술과 경제체제가 경제와 산업 논리의 득세를 부추긴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미 익숙한 디지털헬스, 인공지능, 빅데이터, 제4차 산업혁명, 바이오, 정밀의료 등등은 건강과 보건의료의 유익함에 무관하게 이미 ‘물신화’된 상태다. 당분간 건보 시장을 둘러싼 정치경제의 가장 중요한 영역이자 행위자가 될 것이 틀림없다.
우리는 특히 건보 내외부의 복합적 위협을 더욱 경계한다. 혁신과 첨단, 혁명, 패러다임이라는 외피가 경제와 성장이라는 오랜 욕망과 결합하면 건보 시장은 그야말로 가장 격렬한 시장이 될 것이 뻔하다. 누가 돈을 부담하든 건보 시장을 실질적인 성장 동력으로 간주하면 가장 위험하다(가능성이 없지 않다).
어떻게 할 것인가. 건보 시장이 일차적으로 건보 자체의 목적과 가치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은 그 모든 사정에 앞서 가치와 목적에 해당한다. 경제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때에 소박하고 안이한 주장이라 할 수도 있으나, 그래도 원론이고 본질이다. 건강과 의료 보장에 봉사하는 건보라는 근본 가치. 어떤 첨단과 기술, 산업, 성장도 이에 앞설 수는 없다.
본질이 더 중요하게 작동하는, 건전한 시장을 유지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나? 시장을 직접 규율한다는 점에서 건보 또는 건보 시장에 대한 국가권력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힘이 미치는 실질적인 통로로서 정책과 제도를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한 단계 더 들어가면, 국가권력 자체가 여러 권력의 앙상블이자 균형의 산물이라는 점을 잊을 수 없다. 시민, 국민, 주민과 그 권력이 끊임없이 국가에 개입해야 ‘사람 중심’으로 평형이 만들어진다. 우리가 원하는 국가권력의 행동은 그 결과다.
더 구체적으로는, 여럿 중에서도 누구의 어떤 이익인지 묻는 것이 첫째다. 그래야 소외된 혁신, 일자리, 성장의 신화를 해체할 수 있다. 건보와 그 시장은 이렇게 사회적으로 규율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