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시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메디컬 포퓰리즘’

971 views

 

푸른 언덕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2019-nCoV) 유행 때문에 많은 이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과 같은 개인위생수칙만 잘 지키면 크게 위험하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에도 쉽게 불안이 가시지 않는다. 아무리 확률이 낮다고 해도 나와 내 가족이 감염되지 않으리라고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늘어나는 확진자 수와 무증상 감염자에 의한 전파 가능성 소식을 들으며 “혹시 오늘 탔던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 무심코 부딪쳤던 사람들 가운데 감염자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두려운 상상에 사로잡히곤 한다. 메르스만큼 치사율이 높지 않다고는 하지만, 백신과 확실한 치료제도 없는 상황에서 면역력이 약한 어린 자녀나 노부모가 감염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개인들마다 위험의 심각성을 받아들이는 정도에 차이는 있겠지만, ‘중국인 입국 금지’ 청원에 많은 이들이 참여한 것을 보면 사람들의 우려가 상당한 수준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아무리 전문가들이 나서서 과도한 공포심이 위기 극복에 도움이 안 된다고 역설해도 ‘미지의 신종 감염병’에 대한 사람들의 본능적 공포감을 완전히 해소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개인 차원에서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철저히 경계하는 것은 ‘사전예방의 원칙(precaution principle)’에 부합하는 합리적 행위이기도 하다. 그러나 개인적 차원에서의 이러한 가치판단과 실천 양식이 국가적 차원에서도 반드시 타당한 것은 아니다. 시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지만 이와 동시에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측면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기본 책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중국인 출입금지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크더라도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제 방역 효과가 다른 부분의 사회적 손실을 감수할 만큼 크지 않다고 판단된다면 정책으로 채택하지 않는 것이 책임 있는 정부의 ‘정상적’인 국정운영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 주 서리풀 논평(☞바로가기: ‘비상’ ‘뚫렸다’ ‘방역참사’…프레이밍에 목 매는 자 누구인가)에서 지적한 것처럼, 일부 정치집단과 언론은 시민들의 원초적 두려움을 자극하여 중국인에 대한 혐오 감정을 조장하고 국가 방역체계에 대한 신뢰를 흔드는 정략적 행태를 노골적으로 일삼고 있다. 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이 언론과 야당 본연의 역할이라고 하지만, 우한 교민 수용 시설이 “야당 지역구라서” 결정되었다는 허위주장은 지금의 공중보건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바로가기: ‘천안’ 단독 보도가 일으킨 갈등.. 사회의 흉기가 된 언론). 얼마 전 감염병 전문학술단체에서 담화문을 통해 밝힌 것처럼 “과장되거나 왜곡된 정보로 인해 부적절하게 초래되는 사회적 공포는 방역 당국의 신속한 대응과 위기 극복을 위한 공동체의 협력과 노력을 힘들게” 만들 뿐이다 (☞바로가기: 감염병 전문가들 “왜곡된 정보로 인한 공포가 문제”).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으나 공중보건 위기상황조차 정략적 기회로 삼는 현상은 비단 한국만의 고유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마침 작년 이맘 때 발간된 국제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 Social Science & Medicine)>에는 이러한 현상을 ‘메디컬 포퓰리즘(Medical Populism)’으로 명명하고 주요 특징과 구체적 사례를 소개한 흥미로운 논문 한 편이 실렸다(☞논문 바로가기: 메디컬 포퓰리즘).

 

정치가 포퓰리즘화되고 대중이 파편화되며 확립된 지식 간의 경합이 벌어지면서, 보건 위기가 ‘정치화’에 더욱 취약해지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연구진은 ‘메디컬 포퓰리즘’이란 용어를 제안했다. 메디컬 포퓰리즘이란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대중’이 기존의 ‘사회 시스템’에 대항하도록 만드는 정치적 양식(style)으로 정의된다. 핵심은 건강 관련 이슈를 즉각적 대응이 필요한 대중적 비상사태로 묘사하면서 ‘정치화’하는 데 있다. 포퓰리스트들은 보건 위기를 사람들의 선입견과 공포, 분노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그려내고, 임박한 파국을 피하기 위해 (과학적 근거가 아닌) ‘사회 통념적’ 긴급 대책의 필요성을 유포한다.

이러한 메디컬 포퓰리즘의 특징 중 하나는 기존 사회 시스템에 대항하도록 대중에게 호소한다는 점이다. 시스템 잘못으로 인한 희생자가 없다면 가상의 피해 대중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다른 형태의 포퓰리즘이 문화적, 경제적 위기에 토대를 두고 있다면, 메디컬 포퓰리즘은 대중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위협을 강조한다. 이런 활동을 하는 이들은 대개 ‘정치인’이면서도 기존 시스템의 지배적 패러다임을 교란하는 ‘아웃사이더’처럼 활동한다.

공중보건 위기는 고통과 죽음에 대한 인간 본연의 깊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비상 상황에서 메디컬 포퓰리스트들은 ‘확실성, 안보, 사실’보다는 복잡한 이슈를 ‘정치화’, ‘단순화’, ‘스펙타클화’함으로써 인기와 힘을 얻는다. 이런 점에서 위기는 포퓰리즘의 외부 원인이나 촉매제가 아니라 포퓰리즘 자체에 내재한 핵심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포퓰리스트들은 대개 명백한 반(反)지성주의를 동반한다. ‘단순성’, ‘직접성’, ‘자명성’ 등의 레토릭을 활용하면서 공중보건 이슈의 ‘복잡성(complexity)’을 평가절하시킨다. 상황의 긴급성을 강조하는 ‘드라마틱한’ 방식은 이미 확립된 의학적 지식과 관행에 대한 의심을 제기하거나 부정하는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연구진은 이러한 개념에 해당하는 네 가지 사례를 제시했는데, 이 글에서는 지금 우리의 상황과 유사한 미국 ‘에볼라 공포’만 소개하겠다. 지난 2014년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에볼라가 유행했을 때 방송과 SNS를 통해 미국 전역에 공포 심리가 확산되었다.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에서의 발병 가능성을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했다. 오바마 스스로 에볼라 생존자를 백악관으로 초대하여 카메라 앞에서 포옹하는 등 대중적 불안을 누그러뜨리고자 노력했다. 또한 서아프리카에 군대를 파견하여 국제적 공조를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포퓰리스트인 도널드 트럼프는 방송과 SNS를 통해 이러한 대응에 반대했다. 당시 트럼프의 대표적인 트위터 메시지 몇 가지를 살펴보자.

 

미국은 즉각 강력한 여행 제한 조치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에볼라가 미국 전역을 뒤덮을 것이다. (2014년 10월 1일)

미국은 즉각 에볼라에 감염된 나라들에서 오는 모든 비행기 운항을 금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염병은 우리의 ‘국경’ 안으로 확산되기 시작할 것이다. (2014년 9월 2일)

나는 지난 몇 주 동안 오바마 대통령에게 서아프리카에서 오는 비행기 운항을 금지하라고 말해왔다. 매우 간단하지만 그는 거절했다. 완전히 무능하다! (2014년 10월 24일)

 

그는 위기상황을 ‘통제불능’으로 프레이밍하며 즉각적이고 단순한 대응(“모든 비행기 운항 금지”)을 요구했다. 이는 오바마의 과학적, 국제적, 안보적 접근과 대조적이다. 또한 인종차별적인 레토릭을 구사하며 에볼라 감염국가에서 온 외국인뿐 아니라 무능한 정부로 인해 ‘대중’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는 것으로 묘사했다.

에볼라는 오바마 행정부의 평가대로 미국 국내에서 별다른 유행 없이 마무리가 되었다. 그러나 객관적인 공중보건 상황과 달리, ‘에볼라’ 정치는 이후 미국 대통령 선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대중의 분노, 비난 그리고 반-이민 감정 표출의 ‘암묵적 허용’ 신호가 되었다. 실제로 집권에 성공한 트럼프의 포퓰리즘은 국경 장벽 설치와 이주민 추방 등과 같이 드라마틱한 위기 대응으로 이어졌다. 엄격해진 이민정책에서 확인할 수 있듯, 메디컬 포퓰리즘이 가진 힘은 이런 방식의 공중보건 위기 대응책이 그 자체를 넘어 사회 전체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연구진은 메디컬 포퓰리즘이 헬스 커뮤니케이션과 민주주의 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하면서, 포퓰리즘이 현 사회를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설명한다. 에볼라 공포가 트럼프의 정치 프로젝트에서 선구자 역할을 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메디컬 포퓰리즘 전략이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기존 보건의료와 정치 체계에 대한 광범위한 대중적 불신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공중보건 위기 대응의 힘은 성숙한 시민의식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성숙한 시민의식이란 지금과 같은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도 질병과 경제적 궁핍 때문에 생존을 위협받는 동료 시민에 대해 관심을 갖고 배려하며, 정략적 의도로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메디컬 포퓰리스트를 경계하는 것이다. 오늘 소개한 논문의 연구진이 제안한 것처럼, 메디컬 포퓰리즘의 ‘창궐’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공중보건 체계의 문제점을 돌아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미국에서 취하는 조치들을 우리가 모두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덧붙이고 싶다. 에볼라 공포를 통해 적극적으로 위기를 조장했던 트럼프가 현재 미국의 대통령이다. 설마 트럼프처럼 되기를 바라면서 이런 행동에 적극 가담하는 정치인과 언론이 있다면, 시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적’이 바로 당신들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 서지 정보

Gideon Lasco, Nicole Curato. (2019). Medical populism. Social Science & Medicine. 221:1~8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시민건강연구소 정기 후원을 하기 어려운 분들도 소액 결제로 일시 후원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