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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대책, 지역사회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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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근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코로나19가 사람들의 일상을 뒤흔들고 있다. 감염병에 의한 사회적 위기와 공포는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한국 사회는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를 거쳐 지금 코로나19를 겪어내고 있다. 큰 유행을 겪을 때마다 공중보건체계의 대응도 조금씩 나아지고, 사람들의 인식도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크다. 이러한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보건의료체계가 ‘회복력(Health system resilience)’을 갖도록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이는 신종 감염병 같은 위기를 대비하거나 대응하고, 위기에서도 핵심 기능을 잃지 않으면서, 위기를 통해 학습한 이후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배운 것을 재조직하는 능력을 뜻한다. 회복력이 높을수록 위기 대응력이 높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보건의료체계의 회복력을 높일 수 있을까?

 

 

올해 2월에 국제학술지 <보건정책과 기획>에 출판된 논문 “보건체계 회복력을 위한 지역사회 참여: 라이베리아 에볼라 유행으로부터의 근거”은 보건의료체계의 회복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지역사회 참여(Community engagement)를 강조한다. 여기에서 지역사회 참여란, 인구집단 건강 증진과 건강불평등 해소를 위한 의사결정, 기획, 서비스 제공 등에 지역사회 스스로가 관여하는 행위를 말한다. 연구팀은 지역사회 참여에 관한 기존 이론을 이용하여, 서아프리카 라이베리아 공화국에서 발생한 2014-15년 에볼라 유행에 대한 사회적 대응 과정을 분석했다. 논문은 지역사회 참여가 보건의료체계의 기능을 향상시킨다는 근거가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 참여와 그 기반이 되는 신뢰는 어떻게 구축해야 할지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고, 그 결과 지역사회 참여가 서툴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라이베리아의 보건의료 제공자, 지역사회 지도자, 광역자치단체와 국가 정책 결정자, 부족 족장, 목사, 노동조합 지도자, 비정부기구 종사자 등 다양한 사람들과 심층면담을 시행했다. 이를 통해 어떤 종류의 지역사회 참여와 신뢰 구축 작업이 이루어졌는지, 어떤 요인이 보건의료체계의 회복력을 강화하거나 저해하는지 살펴보았다.

라이베리아의 경험에서 가장 흔한 지역사회 참여 유형은 ‘정보 제공’이었다. 그런데 정보를 어떻게 제공하는지에 따라 그 효과가 달라졌다. 유행 초기에 ‘에볼라는 치명적’이라는 제한된 정보만 제공한 경우 되려 공포와 불신이 확산되는데 일조했고, 여기에 보건의료 주체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아 혼란이 가중되었다. 제공된 정보에 대한 후속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행이 진행되면서 라이베리아 사회는 지역사회 구성원과 보건의료체계 구성원의 면대면 의사소통과 지역사회 지도자를 통한 정보 공유가 더 효과적인 정보제공 방법이라는 경험을 얻게 되었다. 한 중앙 정부 관료는 ‘많은 사람에게 정보는 곧 정보 전달자와 같으며, 정보 전달자를 믿지 못하면 정보를 믿지 않는다’는 평가를 남기기도 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사회의 의견 수렴이 이루어졌다. 한 지역 조사관은 의료종사자들이 에볼라에 대한 지식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우리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지역 주민에게 묻고 지역 지도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이를 실현할 수 있는지 논의하는 모임을 덧붙여 조직한 것이 의견 수렴에 도움이 되었다고 밝혔다. 한 보건부 관계자는 ‘지역 사람들과 둘러앉아서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지 알려주거나, 의논하거나,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의견을 모으다 보면 거의 항상 지역에 필요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유행이 확산되면서 보건의료 종사자만으로는 질병 감시나 접촉자 추적을 할 수 없게 되자, 보건의료체계는 지역사회와 협력하여 지역사회기반 감시 조직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떤 곳에서는 지역사회 자원봉사자가 아픈 사람이 있는지 점검하는 등 감시 활동을 하게 했고, 또 다른 지역 보건 당국은 지역사회가 필요한 인원을 스스로 조직하면 보건당국이 교육을 보조하는 형식으로 지역사회에 상당한 자율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비록 수는 적지만 정치적 지지를 바탕으로 한 지역사회로의 의사결정 권한 이양 사례는 높은 수준의 참여가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때 지역사회 구성원은 어떤 조처를 할지 스스로 결정하고,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동시에 지역 보건 당국과 협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연구팀은 이러한 지역사회 참여 사례에서 최선의 실천을 만들어내는 두 가지 요소를 제시했다. 한 가지는 지역사회를 수혜자가 아닌 동반자로 여기는 태도다. 보건당국이 지역사회 구성원에게 정보를 완전히 개방하는 것과 동시에, 기존 지역사회에서 해오던 일, 사회 구조, 자원을 이해하고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한 비정부기구 대표는 “스마트폰이나 비디오 같은 신기술은 정답이 아니었다. 라디오, 확성기 달린 트럭, 지역 지도자가 두려움에 떠는 사람을 달래는 것이 답이었고, 지역사회와의 구식 의사소통이 답이었다”고 언급했다. 또한 연구팀은 중앙정부의 프로그램이 지역 상황과 맞지 않을 때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어떤 마을에서는 한 달에 백만 달러를 들여 에볼라 처치 시설을 지었지만 한 명도 진료를 받지 않은 사례가 있었다. 이는 지역사회에 부정적인 인식을 주기 충분했다. 한 보건부 관계자는 그 예산을 다른 필요한 곳에 유연하게 썼어야 한다고 평가했다.

 

또다른 요소는 지역사회 협력을 위한 플랫폼을 위기 이전에 구축해 두는 것이다. 많은 연구 참여자들이 응급 상황이 아닐 때 지역 사회 기관을 강화하고 함께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한 지역사회 보건국장은 ‘또 다른 질병이 유행하지 않더라도 대응팀을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역의 보건당국과 지역사회를 이을 의사소통 전략이 건강 위기 상황 이전에 미리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라이베리아에서는 에볼라 유행 이전에 구역 지도자와 협력관계를 만들어 둔 지역이 유행에 더 효과적인 대응을 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지역사회 참여와 신뢰 구축은 에볼라 유행을 끝내는 데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지역사회 수준에서 사람들을 조직하고 대응해야 지역사회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유행이 끝난다는 것은 지역의 모든 상황이 종료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지역사회 참여는 보건의료 주체들의 활동을 이해하게 함으로써 성공적인 방역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지역사회 구성원과 보건의료 체계 주체들 간에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데 기여할 수 있었다. 연구 참여자들은 지역사회 참여와 신뢰 구축을 위해서는 위기가 발생하고 나서 임기응변으로 대응하기보다 사전에 지속적인 노력과 상호 관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연구팀은 최선의 지역사회 참여를 위해서는 지역사회 역량 강화를 통해 지역이 스스로 건강 필요를 분석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해야 하며, 이 같은 능력이 또다른 질병 유행에 맞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2월 23일 정부는 감염병 위기 경보 단계를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격상했다(☞바로가기: 정부, ‘코로나19’ 위기 경보 ‘심각’ 단계로 격상). 관련 학회들도 그동안 취해왔던 격리와 봉쇄 전략이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우며, 지역사회 차원의 대응이 중요한 시점이 되었다고 공표했다(☞바로가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지역사회 확산」 대비ㆍ대응 범학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책위원회 대정부ㆍ국민 권고안). 그러나 과연 우리는 지역사회 차원의 대응에 대한 준비가 되었는가? 당분간 보건 당국은 정보 제공과 더불어 지역사회에 더 많은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지금 무엇이 가장 힘듭니까? 무엇이 가장 급합니까? 우리가 무엇을 같이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것이 지역사회 참여의 시작이다.

 

* 서지정보

Barker, K. M., Ling, E. J., Fallah, M., VanDeBogert, B., Kodl, Y., Macauley, R. J., . . . Kruk, M. E. (2020). Community engagement for health system resilience: evidence from Liberia’s Ebola epidemic. Health Policy and Planning. doi:10.1093/heapol/czz174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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