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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당국과 시민의 정치적 동맹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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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민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요즘 TV에서 가장 자주 보이는 얼굴은 유명 연예인도 아니고, 곧 있을 총선의 주요 인사도 아닌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일 것이다. 정부는 국내 첫 코로나19 환자 발생 시점부터 매일 중앙방역대책본부를 통해 국내 감염 발생 현황을 발표하고 있다. 이런 발 빠른 움직임은 지난 2015년 메르스 유행 당시 부적절했던 위기소통으로부터 깨달은 교훈이기도 하다. 메르스 유행 이후 정부는 “공중보건 위험소통 표준운영절차”를 마련했고, 이를 따르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비슷한 경험이 다른 나라에서도 있었다. 2009년 전 세계적으로 신종플루가 유행할 즈음, 독일은 소통 문제로 인한 ‘백신 차별’ 논란에 휘말렸다. 당시 독일에 공급된 신종플루 백신은 두 종류였다. 내무부 계약에 따라 군대, 정치인, 정부 구성원에게는 박스터 사의 셀바판이라는 백신을, 그 외 일반 시민들에게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 사의 판뎀릭스라는 백신을 공급했다. 그런데 판뎀릭스에는 셀바판에 포함되지 않은 면역증강제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판뎀릭스에 포함된 면역증강제가 만성피로, 섬유근육통 등의 증상을 나타내는 걸프전 증후군을 일으킨다”는 메일이 독일 전역에 퍼져 나간 것이다. 언론 매체들도 백신 공급의 차이에 대해 정부를 비판했다. 뒤늦게 정부가 두 백신의 품질에는 차이가 없다고 반박했지만, 이미 많은 대중은 ‘VIP 백신’과 질 나쁜 ‘일반인 백신’의 차별에 실망한 이후였다. 이는 신종플루 예방접종 캠페인에 악영향을 미쳤다. 독일 정부는 이러한 ‘백신 스캔들’의 뼈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 판데믹 계획’을 개정할 때에 “정책 입안자, 전문가, 일반 대중 및 대중매체를 위한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적절한 시점에 제공한다”는 내용을 네 가지 주요 목표 중 하나로 포함시켰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독일 연구자들은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관련자들의 위기 소통 인식이 어떠했는지 분석하여 국제 학술지에 발표했다 (논문 바로가기: “누구의 위기인가? 판데믹 독감, ‘소통 재난’과 헤게모니 투쟁”). 연구자들은 신종플루 백신 스캔들 시기에 일했던 보건 전문가, 의료인, 국가기간산업 종사자, 구급대원 등 31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여 그들이 겪은 ‘소통 재난’의 경험과 감염병 대유행 발생 상황에서 예상되는 대중의 반응에 대해 질문했다. 그리고 응답자들의 인식을 어떤 ‘건강 소통 모델’로 설명할 수 있을지 분석했다.

 

면담 참여자들의 답변은 한국에서 메르스 직후 거론되었던 소통의 문제점들과 유사했다. 이들은 감염병 대유행 시 대중은 공포를 느끼고 과도한 반응을 보이며, 공포는 지식 부족과 선정적인 매스컴 보도의 영향을 받는다고 대답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를 일반 대중이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제공하여 지식의 간극을 줄여야 하며, 위기 소통 통로를 일원화하여 대중이 혼란스럽지 않게 만들고, 대중 매체들이 상황을 망치는 일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전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연구자들의 분석 결과는 몇 가지 지점에서 흥미롭다. 참여자들의 위기 소통 전략에 대한 인식은 “전문가가 지식을 생성하면, 매체는 이를 쉽게 번역하여 전달하고, 대중은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생의학적 권위 모형’이라 할 수 있었다. 다수의 인터뷰 참여자들은 당시 대중매체의 보도와 반대자들 때문에 백신 접종률이 낮아졌다고 비난하면서, 대중매체를 함께 일할 파트너가 아니라 “적”이나 소통 과정에서의 골칫거리로 인식했다. 일부 참여자들은 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서 대중과 매체는 ‘과도한 히스테리’를 보이며, 그 ‘히스테리를 통제’해야 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는 방역 관련자들이 대중과 매체에 대해 갖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태도는 정부의 소통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보건당국이 대중매체를 ‘적’이라고 인식한다면, ‘적’의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을까? 시민이 과도한 히스테리에 빠진 대중이라고 간주하는 보건당국이라면 과연 시민의 의견과 인권을 존중하는 정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연구자들은 건강정보 전달의 형태가 점차 달라지고 있음에 주목했다. 의학 전문가의 권위가 예전 같지 않고 의학적 문제에 대해 모두가 토론할 수 있는 ‘정치적 동맹’의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보건 전문가들은 전문가와 보건당국이 대중 매체를 비롯한 다른 소통의 요소들과 경쟁하는 헤게모니 싸움으로 인식하고, 정치적 동맹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현재 국내에서 코로나19 관련 정보전달에 대한 보건당국, 의료 전문가들의 인식 또한 이 연구에서 지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건강정보 전달의 형식이 변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본다면, 일반 대중을 보건당국과 전문가의 지시를 따르기만 하는 수동적 대상으로 간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보다는 대중, 매체와 이어지는 정치적 동맹을 잘 활용함으로써 보다 효과적인 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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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한국의 전문가들은 모두 소통 과정에서의 투명성을 강조한다. 이는 우리 사회가 점차 정치적 동맹을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메르스 때 ‘과민한 대중에게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우리는 이미 확인한 바 있다. 새로운 질병에 대한 지식의 한계를 방역당국과 전문가, 시민이 함께 인정하고, 소통의 민주주의와 정치적 동맹을 활용해나갈 때가 되었다. 위기 소통 또한 가장 민주적일 때 가장 효과적이다.

 

* 서지정보

 

Hall K, Wolf M.Whose crisis? Pandemic flu, ‘communication disasters’ and the struggle for hegemony. Health (London). 2019 Nov 20 [Epub ahead of pr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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